2007.03.24 /[강론] 사순 5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7. 3. 25. 오전 10:02:59

글자
오늘 제1 독서(이사 43,16-21)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상기시키면서
머지않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도
옛일처럼 회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 이집트에서의 탈출은
절대로 지워질 수 없는 사건이며,
반드시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기억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바로 하느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은 역사 안에서 미래를 바라보면서
바빌론의 유배생활을 곧 청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에는
광야에 샘을 파주시고 사막에 강을 내주시는 하느님을
들짐승과 승냥이와 타조들처럼 제멋대로 살아가던 이들도
제대로 공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제2 독서(필리 4,8-14)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단순한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를
잘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의로움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요약하면서(3,9: 로마서와 갈라티아서의 요약)
우리도 죽음을 겪으시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고,
고난을 받으시는 그분의 아픔에 동참해야 하고,
그분의 부활의 힘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직도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목표도 역시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어야 하며,
그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8,1-11)은
참으로 놀랄만한 지혜가 담긴 내용이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후대에 첨가된(최소한 4세기 이전에는 없었다) 자료라고 합니다.
그 양식은 루카복음과 매우 유사하지만(루카 21,37-38)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내용이 역사적 사실,

예수님의 실제 행위였지만(올리브 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
랍비 대신에 스승, 그리고 앉으셔서 가르치셨다는 용어와 형식에 있어서
요한복음과 다르다고 한다)
초기교회가 법적인 문제를 다룰 때 끼워 넣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아마도 예수님의 공생활 마지막 시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6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율법대로 한다면(레위 20,10; 신명 22,21.24)
자기들이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덫을 씌우기 위해 그 여인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율법대로 하라면 이제껏 가르쳐온 사랑의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고
로마법에도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율법을 무시하자니 이들의 시비 거리가 될 것이고,
율법대로 하자니 로마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여인을 가운데 세워놓고 있었고, 예수님은 앉아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돌로 맞아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을 처단한 후에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치워 버려야 한다.”(신명 22,21.24)는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여인에게 심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질문을 하면서 반응을 요구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르면서 모세의 법을 따를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벌기 위해,
혹은 당신께는 적합하지 않은 질문임을 들어내시기 위해
두 번씩이나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습니다.
교부들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예레 17,13)라는 말씀을
쓰셨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이 줄곧 물어대자 예수님께서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위선자처럼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주겠다는 것이냐?’(마태 7,1-6)라고 묻는 것보다
더 원색적이고
더 극렬한 방법으로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셨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이제껏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말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조차도 꾸미지 않았음을 동시에 생각하게 합니다.
하느님 앞에 아무도 의로운 이가 없다는 말씀(시편 14,1-4; 53,2-4; 로마 3,9.23)을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은
마치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님을 두고 물러갔다.”(마태 22,22)고 했듯이 서서히 떠나갔습니다.
성서저자의 표현은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고 합니다.

여자는 홀로 남았습니다.
스승님의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아직도 한 가운데 그냥 서 있으면서 아무도 자유스럽게 바라볼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예상을 뒤엎습니다. “그자들은 어디 있느냐?”
아무도 단죄하지 않고 떠나갔음에
예수님은 이제는 덫이 치워졌음이 분명함을 직감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스승님(didascale: 4절)이라고 불렀지만
홀로 남은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kyrie: 11절)으로 부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용서를 받았다고 선언하지 않으시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같은 입장에서 당신도 단죄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역시 죄인이시기 때문에 단죄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은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지 단죄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개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돌보다 더 단단한 죄 앞에 예수님은 서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단죄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자비하신 주님 앞에 홀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자유로워진 여인은
예수님께로 돌아서서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인의 상대는 잡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실제로 간음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언자들이 가르치듯이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상대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 남자란 그 여인이 섬기던 바알 신,
혹은 이방인들의 신들이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에서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잔치에 함께 하여 즐기고 기뻐하자는 초대에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복음도 역시 단죄 받지 않은 여인의 다음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독자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돌아서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던 여인이 이제 하느님께로 돌아선 것입니다.
회개란 바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
바로 사순절에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볼수록
하느님께 성실하지 않을 수 없듯이
바로 우리도 사순절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느님께 성실할 것을 약속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젖어들어야만 하느님께로 돌아설 수 있고,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를 깨달아야만
회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들짐승과 승냥이와 타조들처럼
제멋대로 살아가던 이들도 하느님을 공경할 수밖에 없고
신앙생황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오늘 화답송과 같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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