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미니크회 신부인 브라이언 피어스라는 신부가 쓴 <We walk the path together>라는 책을 번역하기로 했지요. 틱낫한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통해 종교 간의 만남을 시도한 책인데 어렵지만 흥미 있어 시작했습니다. 제가 조금씩 번역하는 대로 이곳에 올리겠습니다. 함께 읽으며 생각하고 의견도 주시기 바랍니다.
서문
일류 요리사이기도 한 틱낫한은 탁월한 요리사가 지니고 있는 단순성과 예술적인 감각을 조화시키면서 자신의 저서 <귀향: 형제로서의 예수와 부처>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예수와 부처는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매 순간 서로 만나야 한다. 우리 각자의 매일의 수행에서 예수의 정신과 부처의 정신이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빛이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먹는 요리와 같다. 그대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중국 요리를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그대가 사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대가 망고를 좋아하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사과와 망고, 예수와 부처.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위대한 스승이며 종교의 창시자인 예수와 부처는 그들의 전통 안에서 제자들에게 풍부한 유산과 영적 가르침을 남겼다. 그들의 제자 중에서 탁월한 두 제자가 있다. 바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틱낫한이다. 이 책에서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려는 것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1260년, 독일의 혹헤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20살이 되기 전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했다. 중세기의 개혁 바람을 타고 설립된 도미니크 수도회는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신비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수도회였다. 젊은 수사였던 에크하르트는 도미니크회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 앨버트의 영향 아래 신비주의 사상에 몰입하게 되었다. 곧 에크하르트는 신비적인 체험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마이스터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과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마이스터를 붙이게 된 것이다. 이 때 에크하르트를 포함한 많은 도미니크 회원들은 새롭고 혁신적이며 신비주의적 경향이 짙은 영적 운동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이러한 영적 운동에 깊숙이 관련된 단체로 12세기에 벨기에에서 창설되었으며 사유재산을 소유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베긴회와 하느님의 친구회 등이 있다.
얼마 후 에크하르트는 스트라스베르그에 있는 도미니크 수녀회의 영적 지도 신부로 파견되었다. 그곳은 신비주의적 경향 아래 쇄신과 영적 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새로운 영적 운동은 신비적 체험만을 중요시했다. 그들은 제도 교회로부터 신비 체험에 대한 승인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에크하르트의 사상이 당시 제도 교회에서 받아들여질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용감한 도미니크회 수녀들 덕분이었다. 에크하르트는 교회의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조사를 받았고 해명을 해야 했다. 도미니크회의 수녀들은 에크하르트의 강론을 정성들여 글로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 기록들을 보존해왔다.
에크하르트의 신비 체험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그의 ‘역설과 부인’의 신학에서 완결된다. 당시 그의 신비주의적 성향은 제도 교회에게는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졌다. 오늘날도 그렇듯이 그 당시에도 신비주의적 영성은 논리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져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놀라운 영적 체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은총의 빛을 비쳐준다. 특히 다른 종교 간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중대한 유산이 되었다. 1968년 작고한 탁월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은 에크하르트를 일러 이렇게 말했다.
“그는 놀라운 열정으로 정통 신학의 메마른 형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때문에 일반인들도 기쁜 마음으로 신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틱낫한은 우리 시대의 영적 스승이며 신비가이다. 그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자신이 마련한 영적 식탁의 축제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수행의 열매를 나누어준다. 베트남의 승려인 틱낫한은 1966년 미국에서 첫 강연을 하기 전까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의 첫 강연은 내전으로 난민이 된 베트남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 그는 반전운동과 함께 평화를 위한 강연을 계속하면서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귀국 금지 명령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4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플럼빌리지를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에 불교 사원을 설립해 많은 영적 순례자들의 수행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또한 서구에서 불교의 사상을 사회적인 연대에 통합시키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 책은 주로 두 영적인 스승, 틱낫한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스승과 친구들의 목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주로 다음과 같은 책들에서 왔다. 웰쉬가 번역하고 편집한 3권으로 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강론과 논문전집>과 틱낫한의 책 <살아 있는 부처, 살아 있는 예수>와 <귀향: 형제로서의 예수와 부처> 2권이다.
때로 이들의 목소리는 매우 상반된 것이어서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간 대화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서로 다른 전통의 고유한 사상이 인위적으로 조화를 이루거나 억지 화음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점차 절묘한 화음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 순간 가만히 멈추어 서서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깊은 감사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종교간 대화의 전문가는 아니다. 오늘의 세계를 사는 많은 사람들처럼 영적인 가르침을 배우려는 열망에 가득 찬 수행자일 뿐이다. 나는 각 종교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차이점보다는 우리를 한 길로 이끄는 공통점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축제에 참여하고자 한다. 또한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이 분야의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지혜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감사드린다. 베데 그리피스 신부, 달라이 라마, 토머스 머튼, 아브히쉬타난다, 루벤 헤비토, 그리고 틱낫한이 바로 그들이다.
앞으로 틱낫한을 ‘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타이는 공경하올 스승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파크칼린 수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수녀님은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세계의 종교 전통의 지혜 속에서 샘물을 발견하고 그 샘물로 가는 여정에서 신실한 협력자가 되어주셨다. 위에 언급한 분들 외에도 다른 많은 영적인 스승과 예언자들이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 다리를 기초로 우리는 타 종교로부터 오는 영적 유산의 빛을 받게 되었다. 그 빛이 우리에게 우리 고유의 전통 속에서 풍부한 보물을 찾게 했다. 이들 영적 스승의 지혜와 그들의 전통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오늘날 종교간의 대화의 장은 ‘물기 없고 메마른’(시편 63, 1) 것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이 책에서 내가 함께 나누려는 성찰은 친구인 쉐일라 프로벤쳐와 함께 타이의 책 <귀향:형제로서의 예수와 부처>를 읽은 후 싹튼 것이다. 당시 나는 중남미에 있었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 사이의 다리를 놓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이버 공간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우리를 연결시켜 주었고 두 종교 사이의 대화에 좋은 이미지를 주었다. 오르비스 출판사에서 이 두 영적인 스승들에 대한 성찰을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우선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가, 대화에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다리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밝혀 둘 것은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종교 간의 대화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틱낫한의 사상이나 불교 전통에 대해 성찰하고 그들이 구현하고 있는 지혜에 존경심을 지닌다고 해도 나는 변함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내가 불교 전통의 빛 속에서 바라본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해 얼마나 커다란 기쁨을 맛보았는지를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주려는 것이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불교의 영적 서적들을 읽었다. 선(禪) 불교의 전통에 따른 수행을 접하면서 나는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에 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 만남을 통해 내가 더 나은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유산(遺産)에 대한 나의 사랑을 불교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이 영적 수행의 여정을 소박한 마음으로 떠나고자 한다. 나는 서두를 타이가 언급한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에 대한 비유로 시작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타이와 같은 대단한 요리사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서투른 요리사가 친밀한 벗에게 새로 발견한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는 수 세기의 시대적 간극 때문에 결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타이와는 직접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타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피정이나 만남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현되기 직전에서 엉켜버리곤 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 타이와 만나리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책을 집필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2003년 가을이었다.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베트남의 손과 안나 레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어 파크 사원에서 타이가 2주 동안 제자들에게 베푸는 동안거(冬安居) 피정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어떤 장애 없이 그 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꿈이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 체험은 실로 멋지고 놀라운 것이었다. 타이와의 만남과 그 사원에서의 영적 수행의 체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그 수행에서 나는 시공을 초월해 에크하르트와도 만나는 체험을 가질 수 있었다. 타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는 존경하는 두 스승의 발치에 앉아 그들의 샘물에서 퍼 올린 감로수를 실컷 맛볼 수 있었다.
진정으로 타이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수행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동안거 피정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수행에 참여하지 않고 책을 통한 연구로는 결코 불교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 대해 책을 통해 읽는 것과 직접 그 안에 머물면서 정원의 향기를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영적 수행에 관한 타이의 가르침은 단순히 지적인 차원에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놀라운 체험을 한 이후 나는 ‘영적인 수행’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안거 피정이 특히 은혜로웠던 까닭은 함께 수행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불교도들의 열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꺼이 두 다른 종교가 지닌 영적 수행과 통찰에 대해 나누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 만남이 그들과 영원히 지속될 우정의 시작이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