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참 딱한 처지에 놓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어떤 율법과 예언서보다 더 정확하게 하느님을 알려주고 있으니 신기할 뿐입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이렇게 감동적일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어긋난 생각들을 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말씀은 그 내용이 놀랍다는 것에는 일치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순수하게 그 내용만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틀에 얽매인 사람들의 태도로 나뉩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의 감동은 별 힘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늘 그런 취급을 받듯이 오늘도 예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 사람들은 별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저분은 분명히 그 예언자이시다.'
'저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저희는 이제까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옳고 바른 소리만 하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일하시니 예언자요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분의 진심과 상관 없는 그분의 조건에 모든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있겠는가? 성서에도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이 살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마저 속아 넘어갔느냐? 우리 지도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믿는 사람을 보았느냐? 도대체 율법도 모르는 이 따위 무리는 저주받을 족속이다.'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란 말이오? 성서를 샅샅이 뒤져 보시오.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과 예언서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려고도 들지 않았고 그분이 오셨다는 갈릴래아 지방 사람으로만 예수님을 단정하고 그런 이유로 그분의 모든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들과 같은 학자로써 예수님을 마음으로 따르고 있는 니고데모의 증언마저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란 말이오? 성서를 샅샅이 뒤져 보시오.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소.’라는 말로 당신도 학자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 정도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틀은 이렇게도 무섭습니다. 사랑하라는 하느님 계명이 담겨 있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의 사랑은 이렇게 무서운 편견 속에 숨이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갈릴래아에서는 사랑도 불가능하고 하느님의 일도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 그 속에서 예루살렘 만이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틀. 그것은 하느님도 가둘 수 있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은 분명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지만 그 틀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무수한 질시와 오해를 받고 죽음으로 내 몰리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에게 이런 틀은 없는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나라는 틀에 하느님을 얽매지 맙시다.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