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토요일 2007-03-24 /예수님 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 방선도 신부님

2007. 3. 24. 오후 1:15:40

글자

사순 제4주간 토요일  2007-03-24 
 
    복      음   

 

 

요한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강      론   

 

예언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 함락되기 전인 기원전 626년경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홀로 고독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과정에서 숱한 비방과 박해를 겪는 점이 비슷합니다. “저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예레 11,19)라는 이 한 문장이 고난에 찬 예언자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왜 박해를 당하고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것일까요?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칭찬하고 서로 스승으로 모시고자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다니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세상이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을 바로잡고 또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에 대하여 도전하고 영적인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전에 직면하여 신앙이 살아있고 영적 눈이 뜨인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뵙고 회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회개를 거부하거나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자들을 폭력으로 박해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자유인으로서 스스로의 믿음과 사랑으로 당신을 섬기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당장은 예언자들이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맙니다만 하느님의 말씀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참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끝내 세상을 이기고 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죽기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드러냅니다. 모세가 일찍이 자신과 같은 예언자가 동족 가운데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는데 (신명 18,15-20) 군중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모세가 말한 그 예언자라고 여기기도 하고, 메시아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메시아에 관한 성경구절을 알면서도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을 모릅니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 되돌아갑니다. 아직 주님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어쩌지 못합니다. 그리고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니코데모는 주님의 기적과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이 참으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유대인들이 볼까봐 밤중에 몰래 주님을 찾아보았고, 주님께서는 세상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 당신의 사명임을 니코데모에게 알려주셨습니다(요한 3,1-21). 니코데모는 다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할 때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못합니다. 단지 율법에 따라 사실을 알아보고 나서 신중하게 심판하자고 말할 뿐입니다. 다른 바리사이들이 비난하자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집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제 우리들은 주님을 앞에 모시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몰라서 그렇다 치고 지금 우리들은 주님이 누구신지, 그분에 관한 성경말씀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나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내 삶 안에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지, 얼마나 나의 존재를 변화시키고 있는지 느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몰랐을 때에는 그 분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인으로서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슨 이론이나 사상이아니라 생생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이름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기쁨 가운데 회개의 삶을 살아갈 때,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을 믿고 마음 든든히 살아갈 때, 가난한 이웃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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