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25 /[강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l 서공석 신부님

2007. 3. 27. 오전 8:26:56

글자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오늘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의 무대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앉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시골 나자렛 출신 젊은이로서 사실은 성전에서 가르칠 수 없는 신분의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하느님 아들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입니다. 이 복음서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신다고 말함으로써 그분이 당신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에 대해 가르치신다는 것을 말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율법(신명 22,22-24 참조)을 내세워 한 여인을 돌로 치려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그들의 손에서 구해 내십니다. 오늘 복음의 말미에 나오는 예수님과 그 여인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부인, 그들이 어디 있소? 아무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았지요?’ 그 여자가 ‘아무도 안했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합니다.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가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

사람들은 하느님과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단죄하고 죽이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용서하고 살리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셨다는 사실을 대조해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인간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생각할 때, 우리의 잘못을 잊어버립니다. 복음서는 “형제 눈 속의 티는 보면서도 자기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마태 7,3)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단편적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면, 이웃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약 70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계셨다는 것을 알아들은 그리스도 공동체가 그 생명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유대교가 하느님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유대교는 이제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서 하느님이 주신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살리시는 분인데, 유대교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사람을 살리지 않고,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만 믿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느님이 구원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하느님이 벌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인류역사에 제일 먼저 집필된 법전이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가 집필하게 한 법전입니다. 그 법전이 법질서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 ‘눈에는 눈으로 갚고,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소위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입니다. 상대가 잘못한 그만큼 앙갚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 사회가 제정하는 법들은 함무라비의 것보다는 많이 세련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본 정신은 역시 동태복수법적입니다. 다만 개인 각자가 잘못한 이에게 복수하는 대신 국가공권력이 잘못한 이를 잘못한 그만큼 벌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예나 오늘이나 같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사회의 기본 질서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라 부르신 하느님은 우리가 만든 질서에 준해서 행동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벌하고 복수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베풀고 용서하고 살리는 자비의 질서 안에 계십니다. 요한복음서는 그 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다.”(1,4). 그 생명이 보여주는 바를 빛으로 받아들여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빛을 받아들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오늘 우리가 들은 이야기에 이어 예수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내 말속에 머물러 있으면 참으로 내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는 당신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8,32). 예수님의 말속에 머물러서 그분이 가르치신 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진리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단죄하여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용서하고 살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고, 그 노력은 인간 세계의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끊어서 인간을 참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간 사회가 만든 질서 따라 삽니다. 그래서 재물을 좋아하고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해지고, 약자 앞에서는 강하게 행동합니다. 나 한 사람 잘되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하고 허세도 부리며 이웃에게 무자비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멀리합니다. 이런 삶의 현상은 동물들 안에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종족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가진 성향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구약성서의 말씀이나,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이 만든 질서에서 하느님의 질서에로 사람을 불러냅니다. 자비와 용서의 질서를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동태복수법을 기본으로 한 우리의 질서는 악에 대해 악으로 갚는 질서입니다.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악,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악의 순환에 말려들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워서 참으로 자유로우십니다. 그 자유를 배워 사는 사람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유대인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율법만을 확대해 보면서 자유와 구원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로우시다는 사실을 잊으면서 하느님을 잃었습니다.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자유가 사라지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돌로 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하느님은 복수라는 악순환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하고 살리면서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악순환을 벗어나 자유롭다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우리가 만든 악순환을 벗어나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서, 참으로 자유로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복음은 우리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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