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 5 주일/가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 조성호 신부님

2007. 3. 27. 오전 8:22:20

글자

다해 사순 제 5 주일

2007. 3. 25.

토평동.

 

이사 43, 16-21.

필리 3, 8-14.

요한 8, 1-11.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는, 6계명을 저지른 명백한 죄가 얽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이 죄를 지은 여인을 너무도 쉽게 용서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복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읽다보면 쉽게 용서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회개시키는 예수님의 탁월한 방법과 새로운 삶의 시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귀한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옵니다. 현장에서 그 여인을 벌할 수 있었음에도 이들은 예수를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께 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닦달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땅바닥에 앉으셔서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기나긴 침묵.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상황에서의 이 침묵은 주동자들을 안달나게 하지만, 얼결에 동참하게 된 이들은 긴 침묵 속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게 됩니다. 사실 군중 심리라는 것은 자신의 이성을 잃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심보를 아십니다. 그렇기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신 채 긴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예수님의 테크닉입니다.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나도 흥분해서 그 어느 편에 서게 되고, 이내 싸움을 하는 주체가 되고 맙니다. 만일 곧바로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자신은 아닌 채 돌을 던졌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 속에 사람들은 자신을 익명으로 만들고 아닌 척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죠. 예수께서는 긴 침묵을 통해 나를 바라보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이 긴 침묵은 사람들을 회개시켰습니다. 그리고 돌을 놓고 슬그머니 떠납니다. 이제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여인. 그 여인이 자신의 상황을 낙담했을까요? 포기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 여인은 예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그 상황 속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갈 수도 있었지만, 이 여인은 오로지 예수께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집중은 나를 치유시킵니다. 피정을 떠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에서 벗어나, 내가 바라보던 것들에서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침묵 가운데서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치유를 얻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지만, 한 곳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것을 만나게 되는 시간입니다.(성서를 읽을 때 한 단어에만 집착하기보다 주님의 삶, 그분의 마음, 그분의 느낌을 만나려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에게 친근하게 다가섭니다. “여인아!”(요한 8, 10) 이 말은 성서에서 성모 마리아와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썼던 말입니다. 친근하게,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그녀를 자신들의 도구로 사용했지만, 당신께서는 한 인격체로 여겨주면서 그 여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여전히 이 여인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지만, 이 여인은 분명 힘을 얻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에는 예수만이 남게 됩니다. 단죄한 자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죄도 없습니다. 그 여인이 죄를 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의 죄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녀와 예수님만이 남은 삶에서 그 어느 것도 자리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지나간 것을 쓰레기로 여긴다고 하면서(필리 3, 8),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다”(필리 3, 13)고 말합니다. 예수를 알기에 지나간 모든 것은 새로운 것 안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최고의 가치를 두던 것을 포함하여 자신이 예수를 박해했던 일들과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현재와 목표를 향한 열정만이 중요한 것이죠.

 

“가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

 

가라! 가서 현재를 살아라. 예수께서는 현재형을 즐겨 쓰십니다. 지금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과거에 매여 살아가지만, 그분께서는 현재를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말고, 매여 있지도 말고, 미래에 네가 오른 편에 앉을지 왼편에 앉을지 신경 쓰지도 말고, 그저 현재를 잘 살아라. ‘예수께 용서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살아 있게 되는 것은 가는 것입니다. 가서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용서를 체험했다면, 가서 죄를 짓지 않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묻혀 이리저리 휩쓸려 왔다면 침묵 중에 자신을 돌아보고 통찰하며 통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 중에서 자신의 잘못을 통찰했던 군중들처럼, 예수와의 단독 대면 속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았던 이 여인처럼, 우리도 그렇게 침묵 속에서 예수와 함께 하며 나를 돌아보고 용서받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잘되지 않더라도,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붙들려고 애쓰며 달음질 한다면 분명 우리는 그분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이고, 지금 나의 삶에서 자비로우신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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