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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창세 15,5-12.17-18/ 필리피 3,17-4,1/루카 9,28-36)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부활을 미리 보여주시는 거룩한 변모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묵상할 주제가 많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 오늘 복음을 묵상해봅시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산과 구름은 하느님 현존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애동안 늘 기도하셨는데, 기도하실 때는 한적한 곳이나 이른 새벽에 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고 가르치십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속에 들어가 그 속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고요함 속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기도를 통해 늘 하느님의 현존 속에 머무셨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너무나 분주하게 삽니다. 기도하기 위해 우리도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산에 오르신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자 자신의 모습, 즉 주님의 모습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 복음서는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라고만 표현합니다. 그런 분이 세상사에 들어오실 때는 여느 인간처럼 초라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산에 올라 주님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는 그분이 모세와 엘리아와 나누시는 대화의 내용은 십자가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영광은 이 세상적인 이해의 도구로 보면 너무나 큰 역설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는 논리는 그리스도교의 불변의 역설이고, 모든 교리의 핵심이요 중심입니다. (필리피서 2,5-11참조)
거룩한 변모 현장에 있었던 세 제자의 모습에도 묵상거리가 있습니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제자로 뽑은 바로 그들이고(루카 5,1이하), 예수님의 생애 중 중대한 사건과 관련될 때 늘 예수님 지척거리에 있었습니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랬습니다(마태 26,37 병행 참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당신의 죽음에 관한 대화를 나누실 때 세 제자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역시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계될 때만 깊은 잠에 빠지는 것입니까? 주님은 죽으시러 예루살렘을 향하시는데 잠에서 깨어난 베드로는 휘황찬란한 주님 모습에 도취되어 초막 셋을 지어 그곳에서 천년만년 살고파합니다. 제자들은 고난과 십자가의 과정은 건너뛰고 오로지 영광 속에서만 살고파하기 때문에 십자가와 고난 앞에선 깊은 잠에 빠졌나봅니다. 잠에 빠진 제자들은 주님과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쉽게 살고파하는 인간의 본능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토해집니다만,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이 꼭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일이 벌어질 때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그 유혹은 우리 모두가 언제나 대면하는 바로 그 유혹이고,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지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우린 십자가를 외면하고픈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한다면 비록 그것이 십자가라 할지라도 그 십자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하게 낮추고 나를 비우면 비울수록 부활의 영광에 가까워진다는 가르침을 우린 삶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과정은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주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주님 가까이에 다가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도 묵상하여야 합니다. 주님 가까이에 있던 그 제자들은 잠에서 깨어나 주님이 가신 그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랐습니다. 주님 가까이에 가고파하면서도 주님이 맡기시려는 봉사직무를 피하고 싶어 하는 분들은 크게 각성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일이나 봉사직무를 회피하여 도망가시는 분들은 주님과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주일신자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 교회가 요구할 때 “예,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하는 응답을 서슴없이 하여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기도한다면 우린 하느님의 현존 속에 머무르게 되고, 그때만이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됩니다. 진리를 따른다는 것은 언제나 힘이 들게 마련인가 봅니다. |
사순 제2주일/거룩한 변모 - 하성호 신부님
2007. 3. 5. 오전 9: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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