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1주간 금요일 강론
복음 : 마태오 5, 20ㄴ - 26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화해’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의 법인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율법을 가르치며 율법에 정해진 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살려고 노력하는 거룩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 정해진 대로 복잡하고 어려운 여러 가지 예식과 전통들을 지키며 그것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지켜나갔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따르는데 누구보다도 열심하다고 자신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의로워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들보다 더 의롭게 살 수 있을까요? 율법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율법 학자들이나 온갖 율법의 규정들을 하나하나 다 지키며 사는 바리사이들보다 우리가 더 잘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정말 우리가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율법 규정들이 아닌 ‘화해’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두 아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효심이 지극한 아들들이라고 해도 아들들끼리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티격태격 싸우고 산다면 그 두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불편하고 안타까울까요?
형제들과 화해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아들들이 아무리 아버지를 잘 모시고 공경한다 해도, 사람들이 아무리 하느님께 좋은 예물을 바친다 해도 그것들이 아버지와 하느님께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아들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해도 그 사랑이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할 만큼 클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예물을 바쳐도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예물을 바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하느님께서는 좋은 제물이 아닌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바라셨습니다. 이렇게 예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정성을 보시는 하느님이신데, 형제에게 원망을 산 사람이 올리는 예물을 하느님께서 어찌 기쁘게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를 거론하시면서 그들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법인 율법에는 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그 율법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에만 집착해서 그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위의 이웃과는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 율법에 맞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였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이웃들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학자들보다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 정신을 실천할 때, 율법 그 자체에 매이기보다는 그 율법을 만드신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정신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은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정신에 맞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형제간에 원망을 품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며 산다면 우리는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더 의로운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사순 제1주간 금요일 강론-화해 - 김윤복 신부님
2007. 3. 3. 오전 8:26:59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