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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6 주간 수요일. 2007. 2. 14. 토평동.
창세 8, 6-13.20-22. 마르 8, 22-26.
예수께서는 특별히 당신 곁에 두신 제자들이 바리사이들이나 헤로데처럼,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는 상태를 개탄해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에 대한 실망감은 ‘바리사이들을 버리고 떠났다’(마르 8, 13)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잘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예수를 시험하지 않으면 예수님 곁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예수께서는 바로 뒤에 배우는 이의 자세가 아닌 가르치는 이의 자세가 된 베드로를 심하게 꾸짖으신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것, 들려주시는 것을 잘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 21)는 예수님의 말씀 후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치유 기적을 배치시켜 놓고 있습니다. 눈 먼 이를 보게 해주는 주님. 그런데 특이하게도 권능을 가지신 예수께서 단 한 번에 그를 완전히 치유하시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보면서 치유의 단계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께 인도하는 마르코의 신학적 작업입니다.
눈 먼 이를 치유하는 예수님의 두 번째 접촉. 눈 먼 이를 치유하는 예수님의 두 번째 손길은 삶에서 두 번의 접촉이 있은 이후 완전히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소경의 치유와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우리의 경우를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현재 제자들과 일차 접촉 즉 만남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즉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희미하게 볼뿐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지만, 제자들은 희미하게 볼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두 번째의 접촉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체험하고 고백할 것입니다. 완전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고 있는 우리이지만, 지금은 희미하게 볼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완전히 볼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예수께서는 눈 먼 이를 치유하시며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침을 바르십니다. 침은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다 사회에서 치유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침은 귀신과 질병을 물리치는 기능을 지닌다고 합니다.(갈라 4, 14) 예수께서는 당시 주술적인 치유법이지만, 그들의 문화로 말하고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치유된 것은 예수님의 안수에 의해서였습니다.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던 것”(마르 8, 25)입니다. 주님의 손이 치유의 도구입니다. 엄마 손이 약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이 약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손에 나를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똑똑히 보게 되는 것은 그분의 손에 나를 내맡길 때입니다. 연거푸, 몇 번씩이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습니다. 메시아의 비밀과도 연관 시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집이 하늘의 집을 의미한다는 데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즉 볼 수 없었던 마을이 아니라 볼 수 있는 눈으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당신을 잡아 마을 밖으로 끌고 가 죽였지만, 당신께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볼 수 있게 된 그도 역시 예수처럼 이 마을(세상)을 떠나 영적인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2007.02.15 /메시아의 비밀 - 조성호 신부님
2007. 2. 15. 오전 9: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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