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은 우스개 소리로 지금도 제가 수도회에 들어가게 된 것이 여자 친구에게 실연을 당해서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흔히 보이는 것 혹은 결과적인 것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에게 신앙에 대해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특히 고2를 담당할 때 학생들에게 7주간 가르쳐야 했던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 교안을 만들고 교리수업을 하면서부터 그러했습니다. 주일학생들에게 저도 잘 모르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너희도 또한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는 너(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데?” 하는 질문이 뒤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착한 일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돌아본 자신의 모습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많이 달랐던 것이죠. 흔히 신자들이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돕는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벳사이다의 눈먼 소경을 고쳐줄 때 눈먼 소경이 두 번에 걸쳐 치유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처음에 그의 눈에 손을 대었을 때, 그는 “사람들이 보이기는 하는데 걸어 다니는 나무”같다고 말합니다.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알면서 이야기하는 신앙이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알고 무엇인가 청할 줄 아는 신앙이긴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한 사람이 아닌 걸어 다니는 나무같이 느껴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관심도 애정도 없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무의미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고백을 한다해도 “그러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고 물으며 생각과 말로만이 아닌 땀과 노력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비록 눈을 뜨고 보기는 하더라도 사람들을 걸어다니는 나무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의 두 눈을 당신 따스한 손으로 덮어주십니다. 메마르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예수님처럼 손을 움직여 봅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주님, 당신처럼 저도 사람들을 향해 따스한 손을 뻗어 사랑하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
걸어 다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 이회진 신부님 / 2007.02.14
2007. 2. 15. 오전 9:21:45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