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슬라브 민족에게 내린 주님의 섭리 - 이기양 신부님

2007. 2. 14. 오전 9:27:35

글자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슬라브 민족에게 내린 주님의 섭리




   이방인의 사도로는 바오로가 있고, 동양 선교의 사도로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슬라브인들의 사도로는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을 꼽습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은 9세기 교회의 탁월한 인물로, 토착화된 방식으로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한 성인들이지요.


   슬라브인들의 사도라 불리는 치릴로 수도자와 메토디오 대주교는 형제입니다. 치릴로는 826년경, 메토디오는 825년경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고관의 아들들로 태어났고, 세례명은 동생이 콘스탄티노, 형이 미카엘이었습니다. 부친의 높은 직위 덕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둘은 철학과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등 어학과 원시 슬라브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학업을 마친 후 치릴로 성인은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지방의 총독직을 제의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사제로 서품 되어 왕립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한편 메토디오 성인은(825-884) 훌륭한 재능을 인정받아 테살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속 생활을 싫어하여 관직을 은퇴하고 경건한 생활을 시작하였지요.

   형제는 863년 이후 동방교회로부터 파견되어 모라비아(현 체코 동부 지역) 지방의 슬라브족 전도에 종사합니다. 이유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이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 주민들이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나 교리에 무지하니 이를 인도하고 가르칠만한 지도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릴로와 메토디오는 황제의 명으로 파견되었지요. 형제는 슬라브족의 환영 속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슬라브족이 아직 글자를 가지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들이 창안한 치릴로식 알파벳을 사용하여 이것으로 성경과 전례서들을 번역하여 선교에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보기 드문 토착화된 전례와 신앙 생활의 시작이었지요. 물론 이로 인해 형제는 라틴어가 전례와 신앙 생활의 표준어였던 시절에 많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867년 동?서 교회의 분열로 인해 슬라브 세계가 양분화 됩니다. 불가리아는 비잔틴에, 모라비아는 로마에 귀속하게 되지요. 모라비아인들을 훌륭한 천주교 신자로 인도한 형제는 3년 간의 체류를 마치고 교황을 뵙기 위해 로마로 향합니다. 교황 아드리아노께서는 크리미아 반도에서 발견되었다는 클레멘스 교황의 유물을 가져온 두 분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이들이 전례에서 사용하는 슬라브어를 인가합니다. 그러나 치릴로는 얼마 후 로마에서 2월 14일 병사하였고, 메토디오만 주교로 서품됩니다. 메토디오는 주교로써 다시 모라비아로 돌아가지요. 아드리아노 교황은 모라비아와 판노니아를 독일교계에서 독립시켜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메토디오를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레라트에서 대주교로 착좌시킵니다.

   독일 주교들과의 관할권 분쟁에 빠져든 메토디오 대주교는 870년 독일 황제 루드비히 2세와 독일 주교들의 추방 결정에 따라 스바비아로 귀양을 가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는 2년 후 교황 요한 8세에 의해 석방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적대적인 시선으로 메토디오 대주교를 감시하다가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이단자로 고발하였고 성인은  878년 재차 로마로 송환됩니다. 그러나 교황은 교서를 통해 그의 정통성을 인정해주고,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해줍니다. 그 후 메토디오 대주교는 치릴로와 함께 시작했던 슬라브어 성경 번역을 계속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마카베오서를 제외한 성경 전체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합니다.


   이러한 슬라브어 사용을 통한 토착화 시도는 라틴어만을 전례어로 고집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낳았고 그 갈등은 성인의 일생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든 투쟁은 그가 885년 4월 모라비아 지방에서 서거할 때까지 계속 되었지요. 참으로 힘든 생애를 사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그를 슬라브족의 사도로 추앙받게 하였고, 그의 전례는 오늘의 러시아 전례가 되었으며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라비아의 수호 성인인 치릴로와 메토디오는 특히 체코, 슬로바키아 등의 가톨릭 교회에서 그리고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의 그리스 정교회에서 공경 받고 있습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 축일은 사망직후부터 모라비아 지방에서 기념되기 시작하였으며, 교황 레오13세는 회칙『그란데 무누스』(Grande Munus)를 통해 이 축일을 교회의 보편 축일로 선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요한 8세 교황은 880년 슬라브어 전례를 칭찬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를 창안하신 우리의 주 하느님 바로 그분께서 또한 다른 언어들을 창안하시어 그로 하여금 당신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


   오늘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 기념일을 지내면서 성인들이 어려움 중에서도 노력했던 신앙의 토착화와 복음선포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특히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이 평생을 바쳐온 토착화 문제를 살펴보면, 천주교 신앙의 토착화는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전까지는 교회의 전례용어는 라틴어였고, 신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신앙생활을 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고, 미사참례도 마치 구경꾼처럼 ??미사 보러간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지요. 그러나 2차 바티칸 이후 교회는 그 나라 언어와 문화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허락하였고 ??미사를 올리고 성사를 주는데 있어, 그리고 또 전례의 다른 분야에서 각기 그 나라의 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경우가 많으므로 널리 국어를 쓸 수 있다.??(전례헌장 36) 지금은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중입니다.

    ??교회는 신앙이나 공동체 전체의 선익에 관련되지 않는 일에서, 엄격한 형식의 통일성을 적어도 전례에서는 강요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민족과 인종의 정신적 유산과 자질을 계발하고 향상시킨다. 그리고 민족들의 풍습에서 미신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호의로 존중하고, 또 할 수 있다면, 고스란히 보존하며, 더욱이 참되고 올바른 전례 정신에 부합하기만 하면 때때로 전례 자체에 받아들인다.??(전례헌장 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천주교회는 서양 종교라는 소리를 지금도 듣고 있으며 처음 신앙을 접하는 예비신자들은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정서와 문화에 맞는 토착화의 노력이 다양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불교나 유교가 마치 우리의 종교인 양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지요.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유교 역시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입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와 생활에 토착화되어 있기에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신앙의 토착화는 대단히 중요한 우리시대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오늘 우리가 깊이 묵상해볼 것은 복음선포에 관한 것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제일 큰 도시였던 테살로니카는 바오로 사도께서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셨던 지역으로 시작은 무척 척박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실바누스와 티모테오를 데리고 필립피를 떠나 테살로니카로 간(사도17,1-10) 바오로 사도는 생활을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하였고(1테살2,9) 필립피 신자들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도움을 받았으며(필립4,16), 유다인들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특히 이방 민족 사람들을 복음을 중심으로 한데 모으는 등(1테살1,9) 짧지 않은 기간을 테살로니카에서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사는 유다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바오로 사도는 활동을 멈추고 서둘러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밤을 틈타 바오로와 실바누스를 베로이아로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은 그 곳까지 쫓아가 바오로의 설교를 방해했지요.

   이렇게 받아들여진 복음의 씨앗은 자라나서 800여 년이 지나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에게까지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테살로니카에 뿌려진 그 복음의 씨앗은 다시 슬라브족에게로 이어졌지요. 놀라운 복음의 생명력입니다. 어떠한 역경도 무릅쓰고 슬라브족 선교를 위해 헌신한 사도들처럼 우리 또한 시련 중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데 소홀함이 없어야겠습니다. 아울러 신앙의 토착화에 힘썼던 치릴로와 메토디오 성인을 기억하며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토착화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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