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만춘 신부-
우리는 어제 연중 제 5 주일 복음에서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던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어부로써 일상에 지쳐있던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더 깊은 데로 배를 저어 나가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이라는 새로운 날에, 이제 더 깊은 데로 배를 저어 나가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더 깊은 데로 배를 저어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면서, 동시에 깊은 곳에 그물을 치는 일이기도 한 것은, 바로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던 그 모습, 바로 그 모습을 회복해 나가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 참 좋았던 이 세상은,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시기 좋았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은 데로 배를 저어 나가야 하고 또 그곳에 그물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주위에 병들어 있는 이웃들을 운반하고 인도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았고, 그분의 부르심이 응답해 세상의 깊숙한 곳으로 배를 저어나가 사람을 낚는 새 사명을 성실히 수행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병든 이들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함께 주님을 찬미하길 간절히 바라는 우리의 착한 이웃이며, 또한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녀를 공경하는 이유는 로마 원로원의 의원의 유혹을 뿌리치고, 251년 순교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녀 아가타에 대해 자세한 삶은 전해지지 않지만, 6세기에 전해지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지방의 집정관이며 원로원 의원이었던 퀸타니오가 성녀를 탐하다가,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습니다. 성녀 아가타가 퀸타니오의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여, 매음굴로 보냈으며, 또 앞가슴을 도려내는 잔인한 고문의 방법으로까지 성녀를 굴복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자 그는 성녀를 석탄이 벌겋게 이글거리는 불 속에 던졌다고 합니다. 그 순간 지진이 도시를 강타하였고, 백성들의 소요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그가 성녀를 감옥으로 돌려보냈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아가타 성녀가 앞가슴을 도려내는 고통 중에서도 “구세주님, 고통을 참아 받을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라고 주님께 간청하며 그 고통을 참아 이겨낸 것도, 퀸타니오의 병든 마음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된 사랑의 마음, 주님 사랑의 마음에 병든 마음을 비추어 보여주고픈 마음이며, 목숨을 내어놓는 주님 사랑의 몸짓을 대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란 호숫가에서 ‘오늘’이라는 새 날을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고, 깊은 곳으로 노를 저어 가는 시작에 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힘을 먼저 알아보는 은총을 선물로 받았기에, 이젠 버려지고 소외된 병든 이웃을 주님 앞에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것이 육체적 병이든, 또 오늘날 육체적 병보다 더 큰 아픔을 드러내는 영혼의 병이든,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주님께로 데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제자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명을 완수할 때, 주님께서 병든 이웃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그리고 당신의 온 몸으로 치유하시는 모습을 통해 그들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우리의 신앙은 더 굳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조 때의 모습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마다 병자들을 데려 왔던 오늘 복음의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