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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9.금
마르코 복음 3장 13-19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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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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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과 사명 이중섭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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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 산으로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루카 6,12 참조). 그렇게 기도하신 다음 뽑은 사람들을 사도라 이름하고,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고, 그들을 파견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무릇 소명에는 사명이 따르는 법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생명이라 합니다. 생명(生命)은 살라는 명령입니다. 생명체(生命體)는 살라는 명령이 몸을 이룬 것입니다. 생명에는 반드시 사명(使命)이 있습니다. 사명이란 살아 있는 생명이 이루어야 할 어떤 것입니다. 사명이 없다면 생명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명은 살되,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소명과 더불어 사명을 받고, 새로운 생명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사명을 가진 인생, 사명을 가진 생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사는 것인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 역시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을 충실히 따르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열두 사도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사명도 주십니다. 우리 생명에 새로운 의미를 주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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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첫월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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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빠 옆에서 일을 도와드리다가 문득 아빠가 누군가에게 쓴 작은 쪽지를 읽게 되었다.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을 하실 때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도움을 받으셔야만 했다. ‘망막색소변조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직장과 명예 그리고 친구들을 잃으셔야만 했던 아버지. 많은 이들이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는 이 병으로 인해 삶을 자포자기 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3남매를 기르시기 위해서였을까. 아빤 달랐다. 아빠는 나빠지는 시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일과 사람을 찾아 몸을 움직이셨다. 점점 엷어져 가는 시력으로 익숙치 않은 새로운 삶들에 적응하셔야 했기에 두려움과 절망이 크셨으리라. 그 시절 매일 아침이면 조용히 십자성호를 그으시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던 아빠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꾸준히 점자와 안마 기술을 익히시며 당신의 삶을 알차게 채워가셨던 분. 당신이 갖고 계신 것으로 누군가를 돕고 싶으시다며 봉사활동도 다니시고,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도 하시고, 테이프를 들으시며 좋아하는 책과 음악도 접하시고, 성경공부도 꾸준히 하시며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사시는 우리 아버지. 내겐 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그런 아빠가 지난달에는 직장에 취직하셨다며 좋아하시더니 오늘은 20년만에 타본 월급이라시며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내의 한 벌 사주고 싶으시다고. 이젠 절대로 월급 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셨을 텐데…. 그 월급은 아빠에게 ‘돈’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였으리라. 빨간 내의 대신 우린 빨간 아구찜을 먹으며 축하해드렸다. 아빠 마음속의 커다란 빛! 아빠는 오늘도 그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신다. “아빠, 파이팅!” 정 바르톨로매오 수녀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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