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소년 애국자

2007. 1. 18. 오전 9:33:59

글자

[묵상] 소년 애국자

 

 

 

 

스페인의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가는 기선이

이윽고 출발을 했다.

 

그 배는 마치 인종 대회라도 하는 듯,

프랑스 사람, 이탈리아 사람, 스페인 사람, 스위스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옷차림으로 넉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대번에 구별 되었다.

그 중에 누구보다도 더럽고 초라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열 한살?

아니면 그보다 한 살 아래거나 위일지 모른다.

 

웬일인지 소년은 힐끔힐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안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

그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의 지난 과거이야기를 듣는다면

'아, 그래서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소년은 2년 전에 서커스단에 팔려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서커스 생활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배우는 일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수없이 발길에 걷어채이는 게 다였다.

손님이 없어 수입이 줄면 으례 소년부터 굶어야 했다.

 

채찍과 발길질로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든 소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이르러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줄타기를 배우다가 죽으나...

 아니면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고 매 맞아 죽으나...

 탈출했다가 붙잡혀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어느 날,

눈을 피해 서커스단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소년은 막바로

이탈리아 영사관을 찾아갔다.

 

"저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고향나라로 저를 보내 주십시오."

 

영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두 말 않고 소년을 위해 배표를 끊어 주었다.

 

기선은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건만,

소년은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연신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소년 곁에는 함께 여행중인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 눈에는 그 소년이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다.

 

그들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질문을 해대었다.

 

"넌 어디로 가는 아이지?"

"스페인에는 어떻게 왔지?"

"눈 가에 어째서 멍이 들어 있지?"

"왜 사람들 눈치를 그렇게 보는 거지?"

 

소년은 그들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마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세 사람은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제법 큰 돈을 쥐어 주면서 자꾸 말을 걸었다.

세 사람의 넘치는 친절에 소년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부모가 자신을 서커스단에 팔아 넘긴 이야기,

서커스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얼마나 심하게 매를 맞았는지.

이 배는 어떻게 타게 되었는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털어 놓았다.

 

세 명의 신사는 소년의 이야기를 듣더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아주 가여운 아이로구나."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 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우리 이 소년을 위해 돈을 조금 더 걷어 줍시다."

 

세 신사는 소년이 두 손을 모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은 동전과

은전과 종이 돈까지 거두어 건네 주었다.

소년은 이제껏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소년은 이층 침대에 누워 거튼을 쳤다.

혼자 오붓하게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이다.

 

'먹을 게 없어 엄마와 아빠는 나를 서커스단에 팔았지만,

 내가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나타나면 볼에 키스를 해주면서

 맞아 줄 꺼야....'

 

소년은 안주머니에 넣었던 돈을 꺼내 다시 한 푼 한 푼 세어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인심 좋은 신사 분들을 만나서 난 횡재를 한 거야,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드려야지...'

 

그때 커튼 밖의 세 신사는 포도주를 마시며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제법 취한 듯 일행 중 한 사람이 제법 혀가 꼬부라져 말했다.

 

"난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질색이라구,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건 속이고 훔치는 사기꾼이나 깡패뿐이라니까!"

 

다른 신사가 끼어들었다.

 

"이탈리아가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구,

 왜들 그렇게 떠들어대는지, 글도 못 읽는 까막눈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심지어 공무원 중에도 글 못읽는 자가 있다는군,

 참, 한심한 나라야!"

 

"한마디로 이탈리아는 도둑놈 천지라구,

 그리고......,"

 

세 번째 신사가 이탈리아 흉을 더 늘어놓으려는 순간!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동전과 은전이 와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냣!"

 

세 신사는 고개를 들어 이층 침대를 올려다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들의 머리 위에 동전을 집어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이 동정하여 돈을 모아 준 바로 그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예끼, 고약한 놈!

 불쌍해서 도와 주었더니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소년은 아직 남아 있는 나머지 동전을 집어 던지며 성난 얼굴로 외쳤다.

 

"잘 들어 두세요,

 난 우리나라를 흉보는 사람의 돈은 한 푼도 갖고 싶지 않단 말예요.

 자, 다 가져 가세요!"

 

 

 

- 우리를 감동시킨 이야기 [하느님은 바보야] 중에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
[묵상] 큰무리가 그분께 몰려 왔다[유광수신부님] /2007.01.1807.01.23조회 312007.1.17 수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강론] 지혜와 용기의 원천[이수철신부님]07.01.18조회 32[묵상] 소년 애국자07.01.18조회 32[묵상]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송봉모신부님]07.01.18조회 31[묵상] 달콤한 거래 /2007.01.1807.01.18조회 32[강론] 양가집 자녀들[윤병훈신부님]07.01.18조회 31강론] 평생의 갈증을 채워주는 교회[양승국신부님] /2007.01.1807.01.18조회 30[동영상] TV 매일미사 2007년 1월 18일 연중 제 2주간 목요일07.01.18조회 30하느님께 의탁하고 받아 드리는 삶 - 정우석 신부님07.01.18조회 30다해 연중 2주간 목 - 아파본 적이 있으십니까? - 이찬홍 신부님07.01.18조회 30거룩한 쪼갬, 그 의미 - 허윤석 신부님 /2007.01.1807.01.18조회 30연중 제2주간 수요일/사제 그는 누구인가 - 하성호 신부님07.01.18조회 30오빠부대 처럼 주님도 - 이기정 신부님 / 2007.01.1807.01.18조회 30<연중 제2주간 목요일>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 이기양 신부님07.01.18조회 302007-1-18 목/기적, 상처받은 마음의 반응 - 이중섭 신부님07.01.18조회 302007년 1월 18일 연중 제 2주간 목요일(다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07.01.18조회 30연중 제2주간 목요일 2007-1-18/'“그러나 예수님께서는”(마르 3,12)' - 이수정07.01.18조회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