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2007.1.7. /암흑의 세계를 비추시는 찬란한 빛 - 하성호 신부님

2007. 1. 7. 오전 10:04:28

글자
주님 공현 대축일2007.1.7. (이사 60,1-6/ 에페 3,2.3.5-6/ 마태 2,1-12)

우린 어린 시절 밤하늘의 고요와 수많은 별빛과 신비스런 달빛, 그리고 여명의 아름다움을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도회지 생활에 파묻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공현 대축일을 묵상하며 시나이 산의 하룻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칠흑 같은 밤에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빛 무대, 어두움이 짙고도 짙었던 그 밤에 펼쳐진 별들의 무대는 더욱 신비로웠습니다. 초막 찻집에서 새벽에 미사를 봉헌하였던 일, 여명이 밝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던 순간들, 여명이 시작되고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광야의 한 가운데 찬란히 솟아오르던 그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듯하였고, 그때 “위대한 백성은 결코 평탄한 역사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저의 뇌뢰를 스쳤습니다.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인간은 빛을 애타게 찾게 마련입니다. 노예생활을 비롯해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던 민족사를 지닌 불운한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민족에게 덮치는 암흑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하늘을 우러러볼 줄 알았고, 하늘이 비추는 빛 없이는 이 세상의 암흑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 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희망을 오로지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시는 주님께만 두었고, 주님의 빛을 학수고대(鶴首苦待) 하였습니다.

오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께서 암흑의 세계를 비추시는 찬란한 빛처럼 만 만천하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암흑과 같은 밤을 밀치고 태양이 찬란히 솟아올라 온 대지를 비추듯이, 그리스도께서 이제 죄악의 암흑을 몰아내시고 인류의 구원의 참 빛으로 인류를 비추십니다. 별빛을 보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아기 예수님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받으심으로써 그가 참된 인류의 왕이시고 하느님과 인간을 중개할 사제이시며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사하실 주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인류의 참 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오늘이 우리에게 있어선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빛이 아무리 찬란하다 해도 어둠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합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치던 초라한 목동들과 수 천리 떨어진 동방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았지만, 권력과 쾌락과 재물에 도취되어 있던 권력자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둠을 깨닫는 자만이 빛을 볼 눈을 가집니다. 권력과 쾌락에 잠겨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암흑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 아닐지 심히 두려워집니다. 이 세상에 판을 치는 온갖 부조리와 부패와 함께 뒤엉켜 살면서도 그것이 무서운 재앙의 암흑임을 우린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허다합니다. 주님의 적대 무리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하여야 합니다. 권력과 쾌락과 재물에 도취되어 있던 예루살렘 시민들은 구세주의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고 말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통한 계시로써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하느님의 신비는 다름 아닌 하느님 당신 자신이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이 신비는 원래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가, 히브 1,1-2을 말씀처럼,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금씩 드러나게 되었고, 이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콜로 2,2은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세상에 강생하시어 오늘 세상에 공개되신 바로 그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인류의 참 빛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암흑의 어둠을 물리치시기 위해 구원의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암흑 속에 갇혀 암흑을 즐기던 세속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시민들처럼 그 빛을 알아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빛을 자기들 힘으로 제거하려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암흑의 두려움을 깊이 깨달았던 현자들은 인류의 참 빛을 알아보았고, 그 빛을 만났으며, 주님께 대한 신앙의 삶으로 돌아섰습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은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라고 전합니다. 주님의 공현 대축일을 기쁨 가운데 보내는 우리도 진정한 회개의 삶, 다른 길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암흑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돌아서서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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