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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음 : 마르코 1,7-11
그때에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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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의 사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책을 나갑니다. 우리 수녀원 뒷산을 다니다보면 다른 사람과 스쳐 지나갑니다. 이 순간은 바로 극단적인 ‘일순간의 사귐’입니다. 미소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 봅니다. “안녕하세요?” 반응이 어떨까요? ‘뭐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의가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로의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제가 병원 복도를 지나갑니다. 멀리서 수녀님 한 분이 오십니다. 오시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러자 제 앞에 가는 아저씨 한 분이 덩달아 고개를 숙입니다. 뒤에서 보는 저는 두 분의 그 상황을 다 압니다. 수녀님은 저를 보고 아는 척을 했는데, 그 아저씨는 수녀님이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하니 당황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해서 같이 인사를 합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론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일순간의 사귐’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들 인생 전체가 ‘일순간의 사귐’입니다. ‘일순간의 사귐’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일순간의 사귐’에 능숙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도 능숙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는 또한 이웃에게, 타인에게, 공동체의 동료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회는 늘 주어지지만 막상 실행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순간의 사귐’을 통하여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속이 될 때, 우리의 모든 삶은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는 그러한 사귐을 행할 수 있기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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