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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6.토
| 요한 복음 1장 43-5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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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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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선포 이중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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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에게 “나를 따라라”(요한 1,43)는 부르심의 말씀을 들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의 소명을 받자마자 나타나엘을 만나서 곧바로 전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요한 1,45). 안드레아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하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처럼, 필립보 역시 자신이 체험한 것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앙체험이란 본래 그런 것입니다. 내가 믿고 체험한 것을 전하지 않으면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필립보의 확신과 선포에도 나타나엘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합니다(요한 1,46). 이 초대는 이미 예수님께서 요한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만큼 첫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감동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타나엘도 감동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믿음과 선포, 이 둘은 함께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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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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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뛰어난 선생님이었다. 내가 묻기 전엔 본인이 먼저 나서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고 할 줄 아는 거라곤 ‘텃밭농사’ 따위의 책을 읽는 것밖엔 없으면서도 ‘자연농법’이랍시고 밭을 잡초투성이로 만드는 도시 여자를 흉잡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농사 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농사철마다 주의해야 할 몸가짐도 알려줬다. 늦은 봄까진 눈꼽파리나 깔다귀가 극성맞으니 반드시 긴팔 긴바지를 입고 목단추며 소매단추도 잠글 것, 여름철엔 말벌이 무서우니 풀섶을 헤칠 일이 있으면 조심할 것, 처서 전후론 뱀들이 땅속에 들어가기 전에 먹이를 많이 먹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반드시 장화를 신고 다닐 것 등등. 그러나 그 선생님은 학교교육이라곤 입김도 쐬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신을 책을 졸졸 읽는 다섯 살배기 손주만도 못하다 했다. 글을 모른 채 산다는 것. 그것은 학교를 스무 해 가까이 다니고 이날 이때까지 그 ‘글’이란 걸 끄적대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실감하기 어려운 생활이었을 테다. 하지만 내가 글이란 걸 배우고 그걸 읽어대며 사는 동안 형님은 호미를 쥐고 당신 몸으로 이 세계를 직접 체험했다. 내가 글로 세계를 읽어대며 무언가 점점 알게 된다고 착각하면서 어쭙잖은 이론으로 제 고집을 세우곤 우기고 으스대면서 저 혼자 들떴다 절망했다 하는 사이 형님은 구태여 모른다, 안다에 매달리지 않고 필요하면 한땀 한땀 잔누비질 하듯 이 세계를 경험해왔던 것이다. 형님은 일평생 그다지 희망에 부푼 적도 그다지 절망에 빠진 적도 없는 듯했다. … 형님은 배웠다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그 야릇한 자의식에 가득 찬 자존심이 아니라 어떤 요행도 바라지 않고 꾸준히 살아온 사람들의 자존심, 몸에 저절로 스며들어 자신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자기존중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형님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런’ 사람이었다.
유소림 | <녹색평론> 2006년 11-12월호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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