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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공현 전 토요일. 2007. 1. 6. 토평동.
1요한 5, 5-13. 마르 1, 7-11.
우리는 농담으로 누군가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갖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더 뛰어난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겸손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에게 합당한 공경을 보내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세계에서는 종이 주인의 신발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만큼 신발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비천함의 상징이요, 신발끈을 푼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격입니까? 비천한 중에 비천한 행동인 것을 그것도 자격이라 합니까?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의 겸손함에 고개를 숙이지만, 그것보다 더 감탄하는 것은 구세주 메시아를 제대로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 내 앞에 서 있는 분이 구세주이신데, 내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아니 주님을 만났는데 어찌 내가 그분 앞에서 자격 운운하겠습니까? 진정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 예수님을 구세주로 안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세상에 승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오늘 독서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1요한 5, 5)
세상을 이기는 사람,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보십시오. 그는 세상에 당당했습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 주님의 뜻대로 사는 이들이 아니면 독설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당하던 요한이 우리 주 예수 앞에서는 한 없이 낮아집니다. “몸을 굽혀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노라”(마르 1, 7)고 말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당당해지십시오.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왜 세상에 비굴합니까? 왜 세상에서 고개 숙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세상이 나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끊임없이 나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그러나 그 세상에 당당하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한 없이 낮아지십시오. 세례자 요한처럼 나는 낮은 자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당신의 뜻대로 하겠노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것이 용기입니다. 세상엔 고개를 숙이면서도 주님 앞에서는 고개를 세우는 당신, 세상엔 그럴싸하게 후퇴하며 타협하는 당신이 주님 앞에 와서는 마치도 주님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양 한다면 그것이 과연 신앙인이겠습니까?
승리자는 주님이시고, 주님을 믿는 바로 우리 아니 나입니다. 주님을 믿는 나, 좀더 세상에 당당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 앞에 겸손되이 나아와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께 올인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더 낮은 자세로 말입니다. 그 주님과 함께 나도 세상을 이겼습니다. 아멘. |
다해 주님 공현 전 토요일./세상을 이기는 사람 - 조성호 신부님
2007. 1. 6. 오전 9: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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