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만남 그리고 물길[류해욱신부님] /2007.01.05

2007. 1. 5. 오후 6:44:25

글자

만남, 그리고 물길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을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의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자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 종기 시인의 寓話의 강 1 (우화의 강 2라는 시도 있거든요)이라는 詩입니다. 제가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칠 때 수업 첫 시간 처음으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하던 시입니다. 만남. 그것보다 가슴 설레는 낱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 좋아하시지요?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제가 도전리에 사시는 여러분들과의 몇 년 만에 다시 만남은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에 다시 오면서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제 가슴은 설렜지요. 저에게 수업을 듣던 학생들과의 만남이 제 가슴을 설레게 했고 소중했듯이 여러분들과의 만남이 제게 소중했기에 다시 만날 생각으로 설렜지요.


  우리의 만남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만남일 수는 없습니다. 설령 여러분들에게 저와의 만남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들과 주님과의 만남은 그럴 수 없고 더없이 소중하지요. 우리는 늘 주님을 만나지만 특별히 미사에서 주님을 깊이 만납니다. 그 만남을 계속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길이 트이기 마련이지요.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하여 유장한 물길처럼 아주 편안할 수는 없겠지만 자주 만나 서로 물을 보내고 섞이다 보면 수려한 강물이 되는 것처럼 매일 미사에서 주님을 만나다보면 그 만남이 수려해지고 하루라도 섞이지 않으면 어색하고 허전하게 느껴지지요.


  오늘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과 두 제자의 만남 부분을 ‘우화의 강’과 함께 읽어봅니다.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서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 1, 35-39)


  요한의 제자 두 사람과 예수님과의 만남. 이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하여 몇 마디 주고받음에 그쳤지만 하루 밤을 머물면서 서로 사이에 물길이 트였고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만남이 됩니다.

  말없이 따라오는 두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돌아서셔서 묻습니다.

  “그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이 물음 안에는 예수님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이 있는 갈증을 아시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당신을 따르는 행위로 바뀌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는 그 한마디의 말씀은 마치 화살처럼 두 사람의 가슴을 꿰뚫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 묵고 계신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이 단순한 대답 안에는 아직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함께 머물면서 당신을 깊이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와서 보시오”라고 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묵으면서 당신을 만나보라는 초대입니다. 함께 묵는 가운데 당신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은 따라가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보고 거기서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함께 머물면서 내밀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고 복음사가가 전해 줍니다. 때는 단순히 시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이 이루어진 시간, 은총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 시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과의 첫 해후가 이루어진 시간이기에 깊이 마음에 새겨 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특별한 만남의 시간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지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그 순간부터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니게 됩니다. 단순히 따라다닐 뿐 만 아니라 처음에 초대받았던 그들이 이제 다른 사람을 초대하게 됩니다. 먼저 가까운 사람을 초대하게 마련이지요.

.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는데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찾아 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말하고는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이 모든 일이 기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들이 발견한 너무나 귀한 보물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늘 새롭게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여 그분과 함께 머무십시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지내는 시간, 그분과의 내밀한 만남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 그 만남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인지를 떨리는 가슴으로 체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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