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두에게 성탄 축하 인사드립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포근한 날씨처럼 여러분 모두 마음이 따뜻한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탄 밤 미사 복음에서 우리는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는 말씀을 듭습니다. 인간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머물 방이 없어 말구유에 눕힙니다. 하느님의 기꺼이 자신을 우리 인간에게 내어주시는 관대함과 방 한 칸 내어드리지 못하는 인간의 야박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모두가 야박한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꺼이 나누려고 합니다. 밤을 새우며 양떼를 치던 목자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양떼를 둔 채 아기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우리는 ‘천사가 베들레헴 근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들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맨 처음으로 구세주의 탄생을 알려주는' 대목을 들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고 정결례나 손 씻는 예식 등의 율법의 규정들을 지킬 수 없는 처지이기에 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과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뵙기 위해 달려갔다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성탄은 모든 이들의 축제이겠지만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축제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의 축제일까요? 바로 예수께서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오셨고 가난한 목자들에게 당신 탄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으니까요. 목자들에게 아기 구세주를 알아보는 표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갓난아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해 주지요.
여러분, 구유가 무엇입니까? 구유는 쉬운 말로 하면 짐승의 밥통이지요. 저에게 구유는 예수께서 어떤 분으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으로 느껴집니다. 바로 다른 이들의 밥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탄생을 축하드리는 분은 바로 밥통 안에 밥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유를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지만 구유는 본디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요. 냄새나고 지저분한 짐승의 밥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실상은 그것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 눕혀진 구유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빵은 우리말로 바꾸면 바로 밥이지요. 밥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요.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우리의 밥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네요. 그렇지요.
누가 우리에게 '너, 나의 밥이야'라고 하면 어떻게 느낍니까? 기분 나쁘지요. 우리 안에서는 즉시 “내가 왜 너의 밥이냐? 네가 나의 밥이지.”라는 반응이 저절로 나오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의 밥이 되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 의미입니다. 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그분처럼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밥으로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아니, 예수님 때문에 남의 밥이 되기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성탄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