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성탄 팔일축제 내 제6일>
믿음의 사람, 한나의 기쁨
제 1독서 : 1요한 2,12-17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복 음 : 루카 2,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신약의 네 복음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보통 1장~2장 사이에 잠깐 언급되어 있습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공생활을 시작하는 30세의 예수님이 바로 등장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33년을 사셨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상황을 잠시 언급할 뿐 바로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청년 예수님을 중점으로 전합니다.
얼마 되지 않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족보와 탄생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그 모두가 30세 이후의 공생활을 준비시켜 주는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특은을 받은 분임을 우리에게 준비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이 30세가 되어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에 수천 년 동안 예언되어 왔으며 하느님의 섭리 속에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마태오, 루카 복음서의 1,2장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2,39-40)
아기 예수님이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성경의 내용은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로 바로 이어집니다.
이천여 년 전 예수님의 거룩한 성탄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감격적으로 목격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전혀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하느님의 은총이 이 세상에 드러남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순진한 목동들과 진리를 찾아 나섰던 동방 박사들, 그리고 구세주를 기다리며 수십 년을 인내와 기도로 준비했던 시메온과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온 과부 한나 등입니다. 수천 년을 기다려온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 특은의 자리에 참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나’라는 여인은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홀로 살아왔는데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왔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어려움들을 하느님 안에 봉헌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한나를 은총의 자리에 초대함으로써 그 수고의 값을 얻게 해 주십니다.
과부 한나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아픔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삶으로 이어졌지요. 그런데 반대로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느냐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어려움에 처해야 되느냐고 자신을 절망의 늪에 던져 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련은 사람을 성숙시키기도 하고 나락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택은 그 사람 자신에 달려있습니다.
한나 예언자와 시메온, 그리고 성경을 통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한결같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헤쳐나가기 어려운 삶의 굴곡 속에서 오로지 하느님께 기도 드리고 봉헌하면서 흔들림 없이 살 때 어려움은 은총이 되어 성숙의 계기로 열매 맺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시련과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망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인간적으로 이겨내기 힘든 크고 작은 시련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은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유혹이 되어 더 큰 고통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그렇습니다. 늘 하느님 안에서 봉헌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십자가는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고 그 생명을 위하여 나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자임을 강조한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것을 권고하며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어떤 처지에도 감사할 수 있는 모습은 하느님을 모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일비일희(一悲一喜)하지요. 조금만 좋아도 웃고 조금만 나빠도 눈물지으며 밤낮 조바심을 내는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으며 마음에 흔들림이 없지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7)
오늘 한나라는 한 과부 예언자는 시련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생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거의 50여 년을 수도 생활을 하듯이 기도하면서 구세주 오심을 기다려온 이 여인은 긴 여정 끝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때 이 세상의 시련과 고통이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지 못한 아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하느님 안에서 승화시키며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 때 아픔이 고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결실로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면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