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인으로 그리고 수도자로 살아가면서 때로 하느님 체험을 한 사람, 혹은 예언자 시메온이나 한나처럼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을 식별할 수 있는 분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내심 그분들의 통찰력에 대해 부러움과 신비로움과 함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여러 복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은 결과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상 안에서 혹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힘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일까요? 한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간 예언자였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50년 이상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나의 이러한 항구한 기도는 그녀를 하느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이끌었고, 이러한 친밀함은 주님에 대한 내적 지혜를 갖도록 그녀를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항구한 기도가 가능할까요? 우리 자신은 세상 안에 있습니다. 온갖 경쟁과 유혹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항구한 기도는 가능할 것일까요? 성 이냐시오를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활동 안에서 관상”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활동 안에서의 관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의 여러 활동 안에 자신의 삶을 하느님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인들은 사람들이 활동에 집중하거나 속박되는 것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안에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활동하기를 원했으나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이 되는 한편, 세상과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항구한 인식을 동시에 갖는 것입니다. “활동 안에서의 관상”은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께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항구한 기도”가 필요한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 한나 예언자는 하느님께 “항구한 기도”를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년이 넘는 동안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인식을 갖았기에 그녀는 세상 안에서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식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이 있어서 기도할 시간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난 성탄 때 수도원에서 "말씀 사탕 뽑기“를 하였습니다. 새해에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을 말씀을 하나씩 뽑는 것이죠. 그때 제가 뽑게 된 것은 에페 6,18c의 말씀이었습니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2006년 한 해 동안 기도에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가만히 타이르시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길 원하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삶 속에서 한나 예언자처럼 “항구한 기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런 능력을 지닌 이들을 부러워하거나 질시할 필요도 없겠죠. 왜냐하면 항구한 기도 안에서 이미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식별하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 주님께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 청합시다. “주님, 기도하는 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 기도하는 것이 보상받을 것이 있음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데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참조 : dailyhomily@gmail.com(2006.12.30) on the internet |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 이회진 신부님 /2006.12.30
2006. 12. 30. 오전 1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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