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설날이면 세뱃돈을 들고 만화가게에 가곤했었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뭔가 아쉬움이 있어 서점엘 가보았어요.
여기저기 둘러보다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해인 수녀님의 '희망은 깨어 있네'
수녀님의 시집은 이미 익숙한 터라 그저 들어서 한 두 페이지 넘겨보았는데,
시 한편 한편, 시어 하나 하나가
그렇게 생생하고도 깊게 가슴에 와 닿는거예요.
서서 읽다가 아예 자리 잡고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 가득 행복하였구요.
아시다시피
수녀님은 암으로 고통스런 투병 시간을 보내셨지요.
그 고통 가운데에서 삶의 깊은 시상들을 건져 올리셨는가봐요.
따뜻하고도 풍요롭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 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입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
유머를 즐기는 여유,
천천히 생각할 줄 아는 여유,
사물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는 여유,
책을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여유를 이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은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다시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다시 배워가는 날들입니다."
'자면서도 깨어 있는 희망, 죽어도 부활하는 희망'을 꿈꾸는
새해 새날, 어떠신지요?
희망은 깨어 있네
나는
늘 작아서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힘든 일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면서도
깨어 있습니다
- 이 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