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에 대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계신 분들께-함세웅

2009. 5. 31. 오후 3:39:17

글자
찬미예수님,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과 특히 사제단에 대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계신 분들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설명을 드립니다.
며칠 전에 같은 사안으로 고민하고 교회공동체의 사목적 의견을 질문하신 미국 교포에게 제가 개인적으로 드린 설명과 <희망세상> 6월호에 실린 글을 올려드립니다.
읽어주시고 넓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서로 다르더라도 늘 같은 신앙 안에서, 하느님 안에서 인간애와 아름다운 공동선 실현을 위하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함께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함세웅 신부




- 미국의 교포에게 보낸 글 -

찬미예수님,

그레이스님, 보내주신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뜻밖에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며, 그분을 추모하는 국민들과 함께 그분의 뜻을 되새기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선택과 결단의 죽음입니다. 이를 자살로 이해하는 것은 단세포적 생각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전에는 교회법상 자살을 언급하며, 미사봉헌, 교회공동묘지 안장 등 을 명시적으로 금했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교회공동체는 사목상 개방적 자세를 취하여 이 모든 법규정을 폐지하고 그러한 분들 위해서도 미사봉헌과 교회공동묘지 안장을 모두 공인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내적, 은총의 관계이기에 그러한 분들을 배제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 교회공동체의 보편적 사랑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명이 귀중하고 최고의 가치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결행"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과 헌신, 투신의 원리입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15,13) 라는 성서말씀의 참뜻을 이해해야합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1) 일제 침략당시 선열들과 선비들은 일제의 무력 앞에 더 이상 맞설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저항했습니다.(자결의 의미) 최익현 선생, 이준 열사 등의 행적입니다.

2)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 등은 적극적으로 침략자 일본인들을 꾸짖으며 정당방위의 차원에서 침략자들을 사살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5계명이 있지만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는 이 계명을 넘어서는 정당방위의 원리가 있습니다.

3) 1967년, 구 소련공산국가가 자유를 원하는 체코를 탱크로 무자비하게 진압 했을 때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두 청년이 이에 항의하여 분신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교황바오로 6세는 낮 삼종기도 후에 바티칸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불의한 침략에 맞서 목숨 바친 두 젊은이의 고귀한 뜻을 기억하며 공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4) 한국에서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의권익을 위해 분신한 전태일을 우리는 '노동자의 선구자'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5) 1975년 4월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서울대생 김상진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6) 1989년 명동성당에서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해 조성만군이 투신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은 사적 동기기 아닌 공적 동기 곧 대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죽음에는 순교적 결단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선택과 결단입니다. 이 죽음은 불의한 정권에 대한 저항의 몸짓입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희망세상> 6월호에 실린 글 -

선택과 결단의 죽음

지난 5월 23일 김재규 장군 기일 하루 전, 이해학 목사님, 효림 스님 등 50여명과 함께 우리는 경기도 광주 삼성공원묘지에서 제29주기 추모제를 올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에서 침략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주살(誅殺)한지 꼭 70년이 되는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핵 박정희를 제거한 역사적 의미와 목숨을 걸고 결행한 "민주혁명" 그 미완의 뜻을 되새기며 "국민들이여, 민주주의를 만끽 하십시오" 라는 그의 유언을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추모제 직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밖의 죽음, 투신(投身)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묵묵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답답한 현실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들었습니다. 절제된 언어의 아름다운 시 구절이었습니다. 저는 장례기간 내내 기도하면서 그 유언의 깊은 뜻을 묵상했습니다.
한평생 거침없는 언행으로 살아왔던 그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말을 아끼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 대단한 용기입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는 자기초월의 경지에서 '침묵'에 버금가는 시적 언어로 자신의 삶을 종합하고 철학적 사색으로 압축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벗들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은인들과 고통 받은 벗들을 생각하며 심신(心身)의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사를 초월한 새로운 경지를 꿈꾸며 내적 자유와 신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모욕과 배신, 실망과 좌절, 고통과 절망을 넘어선 의지적 결단, 그리고 현실과 내세, 인생과 종교를 압축한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에서, 아니, 그 스스로 하늘의 명령을 오히려 앞당기며 삶과 죽음을 넘어 초탈의 경지에서 결단 했습니다.
선택이 바로 운명입니다. 운명은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낸 사랑(1코린13,6)과도 상통합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결단의 선택, 그것이 바로 운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운명은 운명자체를 넘어선 초월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도, 또한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 그 운명을 우리는 겸허하게 묵상합니다. 운명은 결코 포기가 아닌 새 하늘, 새 땅을 위한 목숨을 건 새로운 선택입니다. 이렇게 운명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가 펼쳐집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생명의 뿌리는 자연과 하늘이며 죽음이란 대자연과 하늘에로의 회귀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을 만큼 생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당부합니다. 물론 그에게도 부족함이 있고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최선의 노력이 이 모든 것을 보완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인간은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적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때 인간은 이 비참함을 용기 있게 껴안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재생이며 부활입니다. 부활은 고통의 수락, 십자가의 수렴입니다.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운명이 아닌, 비참한 현실을 껴안고 간 결단의 사람, 섭리의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6월 항쟁정신과 함께 그를 가슴에 품고 기억합니다. 그가 바로 6월항쟁의 한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도록 다시 다짐하며 6월 민주항쟁정신의 실천적 교훈을 되새깁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

  • 2009년 5월 31일 오후 3:42

    읽어보세요. 저는 그렇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을 두둔하고 자살까지 미화한 이 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독재 군사독재가 끝난 다음 제대했어야 할 단체입니다. 정말로 잠이 안 와서 날밤 샜습니다

◈◈종합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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