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 가톨릭 입교기

2006. 8. 14. 오후 1:11:44

2
글자

2003년 10월 예비자 교육에 들어가게 된 저희부부 입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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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퇴근한 제게 집사람이 말 했습니다.

 

 

"내일 막내동생 부제 서품행사가 있대요?"


"뭐... 부제 소풍행사? 신부가 아니고 부제? 그게 뭔데...? 이상한 말을 하는군?"


"잘은 모르겠어요, 소풍은 무슨..? 동생이 신부님이 되기전에 그걸 먼저 해야 한다던가 그렇다나 봐요..."


"그래? 아 그럼 '부 신부'가 된다 그건가? 그렇단 말이지! 천주교도 여느 직장과 비슷한 모양이구먼..."

 

 

그 동생이 제겐 처남이지만,

신학대학교 과정이 매우 길어 보기 어렵다 보니, 솔직히 잊고 지내며 관심을 두지 않았었습니다.
오래전 대학교 졸업후 통 볼 수 없어 물으니까, 또 7년짜리 신학대학에 갔다고 하여 알고는 있었지요.
아무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럼 뭐 그런거지 당신 얼굴이 왜 그러냐? 하며 넘기려는데.

 

 

"내일...당신 시간 낼수 있어요?"


"그런 일로 시간은 왜? 난 항상 바쁘다는 거 잘 알잖아?"

 

 

별로 관심 없다는 저의 태도에, 필경 집사람은 포기해 버린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 앞에선 천주교의 천자 소리도 꺼내지 말라고, 내가 쌓은 철옹성 옹고집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집사람은 큰 누나이므로 모른체 할 수 없었겠지요.
처갓집 식구들 모두가 성당에 나가고 있었지만, 저희 부부만 유일하게 단호히 거부하며 잘 버티고 있었습니다.
출가한 다른 딸들은 나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집사람은 2남 4녀중 제일 위 장녀인데도, 제가 워낙 그래서인지, 제 핑게를 대며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처가는 원래 불교 집안이었는데, 막내 때문에 천주교로 개종했습니다.
처남이 신학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입교를 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장모님 파워가 워낙 막강하신지라, 출가한 처제들까지 따르도록 하셨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런 장모님도,

제 옹고집은 어쩔 수 없으셨던지, 몇번 말씀 하시다 포기하시고 알아서 하라 봐? 주셨었는데.
집사람은 귀찮은데 아주 잘 되었다고, 저와 보조를 맞추며 행동을 같이 한 것이지요.

 

 

그랬는데.....
그 부제행사인가 뭔가를 했는지 어쨌는지, 까마득히 잊은체 1년이 지난 모양입니다.
어느날 저녁에 집사람이 또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모래가('03년 5월24일) 동생이 진짜로 신부님 되는 날인데 당신 어쩔 거에요?"


"어? 벌써 그리 되었나? 그럼 부젠가 하는 꼬리를 떼어내고, 정식 신부님으로 승진한다 그 말 아닌가?"


"그렇대요. 아무튼 이번엔 꼭 참석하라시는 엄마의 강력한 말씀이고?"


"뭐..? 장모님이 강력하게? 거참, 그래? 그럼 장소는 어디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아나?"


"장소는 김대건 기념관이라던가? 시간은 아마...하루종일 걸린다던가...확실히는 잘 모르겠어요."

 

 

김대건 기념관이라.....
물론 그분이 어떤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기념관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여하튼 작년에 그 처남에게 좀 미안 했었는데다, 마침 일정도 괜찮을 듯 하여 참석 하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처가에선 준비하느라 온종일 부산을 떨며 난리가 아니어서,

어딘지 만만치 않은 분위기에 심상치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상황이 그렇고 도망갈 수 없다면, 화끈하게 써비스 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대구 성 김대건 기념관!
아니, 그동안 전 그 흔한 성당들 문턱을 한번도 넘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너무나 낮 설고 어색하여, 여엉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당연한 노릇....

 


마음 같아선 얼굴도장은 찍었으니, 많은 신자들 틈에 끼어 은근슬적 도망을 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맨 앞줄 의자 서품자 가족석,

그것도 중앙의 이문희 대주교님 바로 앞에 앉아 꼼짝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중압감이랄까, 여하튼 슬쩍 도망가선 안 되겠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기도가 그리도 많으며 걸핏하면 우루루 일어서고, 끝났다고 또 앉고....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데.....

 


더욱 난처한 일은 맨 앞줄에 있으면서,

남들 다 부르는 성가를 부르지 못하고, 그냥 멍청히 서 있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어색하여 뭘 모르고 참석한 것이 후회스러웠으며, 전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또 도둑이 제발 저려서인가?

아래 윗층의 많은 사람들이, 꼭 저만 바라보며 흉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 그래도 좀 나은 편, 서품자 큰 누나인 집사람,

미사보도 안 쓴체 제 옆에 앉아 있었으니 더 말해 뭣 하겠습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집사람도 너무 민망스러워서, 저 보다 더 크게 혼이 났던 모양이더군요.
그렇게 거의 세시간동안....,

무비 카메라는 쉴사이 없이 계속 저희의 흉물스런 모습을 찍으며 돌아 갔습니다.

 


급기야 나중엔...

거참!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고집 꺾고 성당에 나갔을 것을......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행사 후에 밀려드는 축하객들을 만날 수가 없어, 전 결국 슬그머니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저의 "운명"은, 그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작 큰 사고는, 다음날 동명성당(서품자 본당)에서 터졌습니다.
즉 처남의 본당 첫미사 집전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입니다.

 


그냥 바쁘다며 회사에 나갔으면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이왕 이리 된 것 처갓집에 선심 쓰자고 한 것이 그리 될 줄이야.....!

 

 

여기서야 뭐 별 일 없겠지...? 하고 본당으로 들어 갔습니다.
동명 본당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건물.

그래서 어제의 성 김대건 기념관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매우 작은 건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 맨 앞줄에 앉으라 하더군요.

그리고 한사람씩 일어나서 가족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처남 신부님이 일일이 찍어 가면서 가족 소개를 하는데......

 


그때 만일 저희 부부가 신자였다면,

그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우며 기쁜 자리였겠습니까?

 

 

"..... 저의 제일 큰 누님이시고, 저의 제일 큰 자형 되십니다"

 

 

사방에서 크게 박수소리가 들렸지만,

저에겐 축하가 아니라, 신자가 아님을 조소하고 야유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집사람은 미사보를 쓰지 않았으므로,

마치 제가 아내까지 못 다니게 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그 시간이 어찌나 창피하고 민망스러웠으며, 처남 신부에게 얼마나 미안 했던지요...
그때 받은 충격과 심적부담이 컸던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만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 ~ 여기 계셨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미카엘 신부님 큰 자형 되신다고요?"


"아!..예~, 본당 신부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가능한 빨리 성당에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지금 신부님께 무슨 말씀을 드린 것입니까?
본당 신부님께선 저를 보시고 반갑다 하시며, 축하인사와 함께 악수를 청 하신 것 뿐입니다.
분명 저에게 성당 나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에혀 ~ 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도, 제 자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신부님에게 함부로 허튼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닙니다.

 


중년 이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평소 특히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던 저였습니다.
별 부담 없는 장소에선 마냥 편하게 행동하여, 더러 철 없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말 입니다.

 

 

그런데 여긴 성당이고, 상대가 본당 주임 신부님인 것입니다.
게다가 먼저 약속을 드렸으니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전 어쨌던 한번 한 약속은 칼 같이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터 입니다.
오직 그 하나로 한평생을 살아 왔기에, 그것이 제 트레이드 마크이며 자산이기도 합니다.

 

 

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서 있는데,
문득 처남 신부님의 이상한 기도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천주교에는 저런 모습의 기도도 있는가?

 


연세 많으신 노인들께서 줄 지어 서 계시고,

그 한분 한분마다 조용히 이마를 마주 대어 기도를 합니다.
그 노인들은 물론 처남 신부님 역시도, 매우 진지하고 숙연한 자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오늘부터는 이제 막내처남이 아니구나!
내 아직 잘 모르지만 장모님 말씀대로, 하느님에게 시집을 간 신부가 된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잔치를 혼인잔치라 하는 것인가!

 


33살 저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하느님만을 모시며 의지하겠다고!.
마음 한쪽에선 그런 처남이 매우 딱하고 불쌍하다 생각 되면서도,

그러나 또 한쪽에선 가슴 뭉클한 감동도 느껴졌습니다.

 

 

상황이 순식간에 이렇게 달라지고 보니,

저의 그 유명한 옹고집인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무엇 보다 본당 신부님께 자청하여 드린 약속이 제일 크게 마음을 짖 누릅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우리 부부는 꼼짝 없이 하느님께 붙잡히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역사 앞에선 58년짜리 천하의 옹고집도, 전혀 별무신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부부의 신자생활은 이렇게 시작 되었답니다....

 

 

전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넘어져 다시 일어날 시간이 아까워,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걷고자 합니다.


저희 부부에게,

선배 교우님 여러분의 격려와 가르침을 부탁드리며, 열심히 배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댓글 2

  • 2006년 8월 14일 오후 2:50

    두 분에게 기립 박수를... 짝짝짝. 흠~ 버티던 김에 좀 더 버텨 보시지 않구...ㅋㅋ. 가족 모두가 신자인데 홀로 버텨 본 사람만이 알지요. 그 심정. 이런 고백을 들을 때마다 주님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잘하셨습니다. 버티다 대세받는 것 보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선택하셨으니.

  • 2006년 8월 15일 오후 2:16

    전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왜 그런 약속을 덜컥 신부님께 드렸는지...그래서 약속드린 5월부터 예비교육 시작한 10월까지 엄청 말설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신부님에게, 내가 먼저 거짓말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어서 부담이 너무 커 그건 절대 안될 일이라 생각되더라구요..그래서 말 그대로 개 끌려 가듯이 끌려 가 교육을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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