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성지 순례

2006. 8. 12. 오후 6: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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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성지!

 

 

대구 팔공산(1,192m) 한티제 아래에 위치한 한티성지!
저의 신앙생활은 모두가 부끄러운 일들 뿐.....
그중에도 한티성지를 생각하면 더 없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본당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도,
1년반이 지났지만 한번도 가 본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건강상 등산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팔공산은 아마 수십회 이상일 것입니다.
팔공산은 산세가 매우 크고 넓으며 깊은 산이지요.
그런데 그 앞을 수없이 지나치면서 한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언젠가 부터 항상 그 일을 꺼림직 해 하다가,

마침 순교성월을 맞아, 두번째 주 미사가 끝난 후에 다녀 오기로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한티성지에 도착한 것은 9월11일(일요일) 정오쯤.....

 

 

전날 내린 비로, 성지 진입로와 도로가의 나무들이 산뜻한 느낌!
하지만 곧 쏟아질 듯한 시커먼 먹구름은, 숲속의 성지를 약간 어둡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성지 순례는 부끄럽게도 오늘이 처음.....

 

 

그런데도 순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간 것도 아닙니다.
또 숲속에 뭍혀 있는 그 성지가, 어떤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진작에 찾지 못한 것만 죄송해 하며, 무턱대고 찾아 간 것입니다.

 

 

어쩜 보통의 관광지처럼, 입구엔 관리 사무소와 관련 건물들이 있을 것이고.
순교자 묘소가 몇기인지는 모르나, 아마도 건물들 맨 뒷편의 산에 있지 않을런지...,,?
그곳엔 옛공소와 멋진 성당, 그 외에 여러체의 건물들이 있다는 건 듣고 있었지요.

 

 

그러나 뜻 밖에도, 입구를 통과 하자마자 좌측에 순교자 묘역이 있었습니다.
큰 입석의 묘역 이정표 옆에, 윗쪽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차를 한 후, 천천히 묘역을 향해 계단길을 올랐습니다.

 

 

약간 올라간 위치에 대형 십자고상이 보였고, 그곳이 바로 묘역인 줄 알았는데.
그곳은 넓은 잔디밭 광장이었으며, 십자고상 앞에 큰 석제단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순교자 묘소는 1기도 안 보였고, 순례객들도 없어 조용 했습니다.

 

 

그 석제단 오른편에, 산 위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보이는데...
그 길 안내판에 십자가의 길 제1처 가는 길이라고.....
저희 부부는 먼저 제대를 향해, 십자성호를 한 후 주님의 기도를 했습니다.

 

 

빗물에 젖은 습한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산소 1기가 있었으며 십자가의 길 제1처.....
안내판에 십자가의 길 기도와 주님의 기도, 그리고 성모송과 영광송을 기도하라 써 있어
우리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1처의 묘소는, 흔히 보았던 공원묘지의 그 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좀 더 깔끔하게 관리할 수는 없었을까?
약간 비탈진 그 곳에서 순교를 하셨더라도, 더 편안히 모실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음습한 숲속 그늘진 비탈에 비스듬히 누워 계신 순교자!
잔디 보다 잡초가 더 잘 자란 때문에, 더 을씨년스러워 보여 마음이 여엉 편치 않더군요.
그 바람에 분심이 생겨, 주님의 기도를 틀리기도 했습니다.

 

 

다음 제2처 안내표지를 따라 조금 더 올라 갔습니다.
그곳 역시 묘소 형태는 1처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늘이 짙어 잔디가 살기 어려워, 드러난 흙 때문에 마음이 더 우울해 지는데.....

 

 

이 분들을 이렇듯 죽인 자들은 누구인가.....?
하느님을 믿은 것이 그렇게도 큰 죄였으며, 이들의 목숨을 꼭 빼앗아야 했단 말인가...?
이 깊은 산중에서, 숨어사는 것으로 모른체 해서 안 되는 일이었던가.....!!

 

 

올라 가면서 계속 이어지는 제3처... 제4처...또 제5처.....
처음엔 묘소가 1기씩이더니, 4처 5처부턴 2기 또는 3~4기씩 무리지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후손들이 손질한 듯 깔끔한 묘소도 있었고.

 

 

그리고 2개소는 묘소도 없이 안내판만 세워져 있었는데, 아마도 그 자리는 처형을 당한
장소인 듯 합니다.
그중 한 곳은 잡초도 없이 흙이 많이 드러나 있어, 마음이 더욱 숙연해 지는 느낌...!

 

 

한티성지에 모셔진 분들은, 1815년 을해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5~6차례 교난시, 
대부분 이곳에서 숨어 살다 체포되어 처형 당한 분들 입니다.
그리고 일부 분들은, 타처에서 이곳으로 모셔 온 분들이라고 합니다.

 

 

제1처에서 제14처까지의 십자가 순교의 길.....
각처마다 1기에서 3~4기, 많은 곳은 6~7기까지.....
왼편에서 산을 계속 올라가, 우측으로 크게 한바퀴 돌아 내려 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약1시간 걸려 광장으로 돌아와, 근처 바위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때까지 간신히 참았다는 듯, 후두둑 거리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마음은 그대로 비를 맞고 싶은 심정.....!

 

 

인간들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 분들은 왜 이 곳에서 불편하게 숨어 살며, 그것을 지키려 고집 했는가?
저 멀리 보이는 대구 시내에서, 다른이들과 똑 같이 편히 살 수도 있었지 않았는가....!

 

 

배교 하겠다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다는데....!
더구나 공소회장 조가롤로의 가족들은, 당대의 명문거족 풍양조씨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분들은, 부귀영화를 마다하며 순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한티성지 순례!
이 분들의 크나 큰 믿음과 숭고한 순교 앞에서, 난 무엇을 얻었으며 버린 것은 무엇인가?
이 분들에 비하여, 한 웅큼도 못 되는 이 믿음을 어찌할 것인가........

 

 

돌아오는 내 마음은.

우중충한 날씨 만큼이나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댓글 3

  • 2006년 8월 12일 오후 8:05

    기뻐하십시오. 그 분들 같은 신앙심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그 분들 같이 나도 해 보겠다는 희망을 가지는 게 성지 순례의 목적이지요. 그 분들도 처음에는 나같이 한 웅큼도 못 되는 믿음으로 시작하셨겠기에...

  • 2006년 8월 12일 오후 8:22

    조돈일 형제님 반갑습니다. 이 글은 제작년에 쓴 것인데, 암튼 전 아직 불과 몇년차 신자라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고마우신 격려 말씀 감사드립니다.

  • 2006년 8월 13일 오후 10:04

    예. 저도 반갑습니다. 저 역시 신앙인이 된 지 일천한지라...^^ 고스마 형님께서 형님이라고 호칭하시는 것을 보니 저도 형님이라고 해야겠군요. 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께서 한티성지의 구석 구석을 눈으로 보듯이 그려주시니 마치 한티성지를 걷고 있는 기분이군요. 제가 말은 그리 하였지만 저 또한 순교자, 치명자님들을 뵈면 주눅이 들지요.^^ 세례로 죽고 다시 태어나 성 바오로 사도의 삶을 살아가야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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