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39ㅡ2]

2012. 3. 5. 오후 9:16:34

글자

39 ㅡ 2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원수 슐리펜이 전선의 우측을 대폭 강화하여 해머(망치)로 사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슐리펜 계획'을 작성했지만, 그 뒤를 이은 몰트케 장군이 그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작전을 했다가 실패
했다. 여기에서 전쟁사 연구자들은
 

"술리펜 계획은 슐리펜이 수행해야 성공한다."
 

라는 교훈을 남겼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론을 개발한 학자를 곧바로 그일 총책임자로 임명하여,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군에서 많은 개혁적인 대안을 내놓았지만 기성 수구세력들에 밀려 헛수고만 했다. 높은 사람
보좌에는 한계가 있다. 지휘관 자신이 유능해야 하는 이유가 그에 있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머리는 (최고 지도자가 꼭 좋아야 하는 건 아니며) 남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머리가 비어 있으면 그 머리는 먼저 점령한 사람이 임자가 됩니다. 머리가 나쁘면 선동적인 말은 잘 들어도
과학적인 내용은 골치 아프다며 멀리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머리는 좌익들이 먼저 점령해 버렸고, 당신 시대
부터 대한민국이 좌경화의 길,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나는 조달관리제도도 연구했다. 계약제도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정가 계약'(FFP : Firm Fixed
Price Contract)이고, 다른 하나는 '원가 정산제 계약'(Cost Reimbursement Contract)이다. 전자는 마치 남대문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는 것처럼, 계약 시에 한번 정한 가격을 바꾸지 않고 구매하는 제도이다.
 

후자는 계약 시에는 가격을 정하지 않고 있다가, 업체가 제조과정에서 합법적으로 지출한 비용 모두를 사후에
정산해 주는 계약제도이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는 재료와 인건비 변동에 따라 이익도 업체 몫이고 손해도 업체
몫이다. 일단 가격이 확정되면 그 가격에서 얼마를 남기든 업체의 것이 되므로 경영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은 이런 확정가 계약을 해놓고도, 정산을 통해 업체가 남긴 이익을 도로 빼앗아 갔다. 이러다
보니 업체는 구태어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경영개선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군과 업체들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를 초래했다.
 

그리고 업체의 방만한 경영이 유발시킨 낭비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전가됐고, 업체는 방만하게 경영을 해야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다. 사후 원가정산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업체들이 유발시킨 방만한 경영
결과를 정부가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후 원가정산제는 연구개발 사업과 같이 기슬적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사전에 원가를 확정할 수
없을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적용하는 제도이다.그런데 한국군은 사실상 100% 모두 사후 정산제로 하고 있으니
그 낭비가 얼마나 크고 많았겠는가?
 

선진국에서라면 지금 한국군이 구매하고 있는 거의 모든 방위산업 물자들을 확정가 계약으로 계약할 것이다.
형식만을 보면 조달본부 계약 건수 중의 85% 정도는 확정가계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후관리라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 사실상 100% 모두 다 원가정산제로 계약하는 것과 같다.
 

확정가계약을 체결하면 단 한 명의 구매관이 수백 개의 계약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태어 원가
정산제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200여 명의 조달본부 원가요원들이 윤곽이 뻔한 내용을 가지고 1년 내내
원가정산을 하고 있었다.
 

원가정산 노력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만, 원가 내용은 오직 업체가 발생시킨 '직접비'로 제한돼 있었다.
직접비만 계산하면 간접비와 이윤은 이미 국방부 원가과 요원들이 원시적으로 만들어낸 '제비율'이라는 율을
곱하여 산출했고, 통상 200% 내외로 책정돼 있었다.
 

직접비원가만 나오면 거기에 2배를 곱해서 얹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업체들은 조달본부에 가서는 직접비를 
높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국방부 원가과 요원들에 접근해서는, 비율을 가급적 높게 받으려고 노력했다.
시스템이 이처럼 원시적이기 때문에 조립업체 입장에서 보면, 같은 부품이라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국산
부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엄청난 이익이었다.
 

국산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장난에 불과했다. 같은 제품을 1억원에 외국에서 구입하면 2억원의 간접비와 이윤을
보장받고, 2억원에 구매하면 4억원의 이윤과 간접비를 할당받고 있었다. 비용을 부풀릴수록 더 이익인 것이다.
이러니 국산화에 대한 동기가 있을 리 없다. 참으로 기가 차는 일이었다.
 

공무원들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고 낭비는 장부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감사원 감사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감사관들 눈도 능력도 공무원들과 같이 깜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일에 시스템 분석가들이 필요한 것이다.
 

한 명의 유능한 시스템 분석가가 수십 조원의 낭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들이 다 분석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능력이 없는 공무원들은 간단한 일만 처리하게 하고, 시스템 자체가 국고를 절약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군의 모든 예산집행은 구매행위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실체를 장관에게 보고했고, 장관은 이를 실천하려고 했지만 역시 중간 간부들의 억척스런 저항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계약제도가 맑아지면 뒷거래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조달본부
구매관들이 항공기 부품, 잠수함 부품, 전차 부품, 특수 물자 등 광범위한 품목에 걸쳐 500~600배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1,500배나 되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매한 사례도 발견한 일 있었다. 노태우 ㅡ 김영삼 ㅡ
김대중 ㅡ 노무현 시대에는, 국방관리에 대한 개혁작업이 일체 보도된 일 없다. 아마도 지금은 더 악화돼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FMS 차관을 사용했다. 연간 2~3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그 돈을
들여오지 않고, 미국의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연방은행(Federal Reserv Bank)에 자동적으로 예치해 놓은 후,
한국군이 무기를 구매한 액수 만큼 정산을 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결산은 순전히 미국 정부에 의존했으며, 한국의 조달본부는 미국이 어련히 알아서 정확하게 정산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국이 1달러의 부품을 1,500달러로 계산하여 정산을 했는데도 그것을
알고도 시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나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레이더 기지와 방공포 기지를 돌아다니며, 전력의 공백 상태도 파악했다. 묻혀 있는
지뢰의 성능도 평가했고, DMZ의 취약성도 평가했고, 문산 통로를 지키는 부대들의 작전계획과 군수계획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들도 폭로했다.
 

특검단장 정호근 중장은 나를 한동안 방위 산업 업체 감사를 위한 자문관으로 활용했다. 특검단 감사관들에게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잘한 일을 잘못한 일로 오해하여 억울하게 벌을 주거나 개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호근 특검단장은 자기와 함께 동행하면서 감사관들이 관찰한 내용들과 그에 대한 감사관들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진해 해군장교 클럽에서 파티를 할 때였다. 해군 1성 장군이 
 

"강 박사는 너무 예리하기만 하고 따뜻하게 감싸 주는 게 없어."
 

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특검단장이 그 해군 장군을 불렀다.
 

"자네 지금 무슨 말했어? 어느 놈이든 강 박사를 험담하면 내가 가만 두지 않는다. 강 박사는 국보다. 그리고
내 동생이다. 자네 벌주로 이 소주 한병 다 마시게."
 

그 장군은 소주 한 병을 그라스에 옮겨 담아 즉석에서 마시는 벌을 받았다. 통상의 연구팀장들은 몇 명의 고급
연구원들을 이끌고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팀장들은 통상 자기 팀에서 수행하는 과제를 몇 개의 챕터로 나누고
각 연구원에게 챕터 제목을 할당해 주며 각자 연구해 오라고 지시했다.
 

권위주의였던 것이다. 각 장ㅡ절을 할당받은 연구원들은 과제 전체의 윤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가 맡은
분야만 연구했다. 따라서 팀 전체가 그리는 그림이 코끼리인지 말인지 알지 못하고, 어떤 연구원은 코끼리의 
귀를, 어떤 연구원은 말의 다리를 그렸다.
 

팀장은 가끔 한 사람씩 불러 쳅터별 연구의 진행상황을 체크하지만, 그 체크 과정에는 토의가 없다. 팀장은
불만을 표시하고, 팀원은 기분이 상하는 그런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과제 수행기간이 완료되면 팀장은
연구원들이 제출한 쳅터를 모두 합철해 버렸다.
 

과제는 하나의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챕터마다 문맥이 달라 뚜렷한 맥과 흐름이 있을 리 없다.
연구원과 팀장의 능력은 해가 갈수록 퇴화했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으며
아마 지금도 이렇게들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과제를 토의에 의존했다. 여러 날에 걸쳐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브레인스톰 과정을 통해 지혜를 짜
냈다. 과제의 스팩을 확실하게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제품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사양서(스팩)를 설계
하듯이, 어떻게 생긴 과제 결과를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사양서를 쓰기 위한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했다. 각자가 내놓은 아이디어들도 어설프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황당하게 들리는 동료들의
말에서 각자들은 힌트를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쯤 지나 모든 연구원들은 과제가 생산해 낼 결과, 즉 제품에
대해 뚜렷한 개념을 정하게 되었다.
 

개념이 뚜렷해 지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은 나누어서 했지만 옆의 동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중간중간 토의에 모두가 참여했다. 다른 동료가 연구한 내용에 대해 서로가 지혜를 짜내어 보탰다.
나는 수시로 연구원 방에 들려, 그들이 혹시 마음에 가지고 있을지 모를 애로를 챙겨주고, 연구 궤도를 수정해
주었다.
 

모두에게 일하는 재미가 있었고 연구원과 팀장의능력이 날로 향상됐다. 일을 늦게 시작했지만 과제는 항상 제일
먼저 끝냈다. 결과에 대해 칭찬도 받았다. 과제가 끝나는 날이면 나는 나의 팀 15명을 데리고 나가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탠드바 하나를 통째로 빌려 마음껏 마시고 노래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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