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리는 비 [38]

2012. 3. 3. 오후 7:52:43

글자

38.

나에게 장점이 있었다면 바로 일류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그 3류 학교나마 꾸준히 다닐 수 없었던 잡초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혼자 상상하고 혼자서 깨우치는 훈련을 했기 때문에 응용
능력이 길러진 것이다.
 

그들보다 덜 배웠고, 문제 푸는 속도가 느리고, 그래서 대입성적이 낮았겠지만 생각하는 능력 만큼은 그들보다
우수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소화능력을 기르는 것, 바로 이것이 공부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체의 소화능력은 조직체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
 

약품은 단지 조직체의 소화능력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데 있다. 공부도 그래야 한다. 미지에 대한 개척능력,
새로운 것에 대한 소화능력은 본인 스스로 키워야 한다. 단지 선생님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식 교육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창의력을 기르려면 오히려 학교를 다니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그들끼리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고 또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라면, 학생 스스로 파고들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줄 것이다. 파고 든다는 건 내용을 훤히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이론의 밑에 깔린 철학을 개발해 음미를 해야 한다. 교과서와는 다른 자기 고유의 방법으로 똑 같은 공식이나
정리를 증명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개발해야 한다. 요점을 정리하여 손에 익숙시켜야 한다. 손이 생각을 따라주지
않으면 표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다.
 

이해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수학의 철학적 메커니즘을 핏속에 용해시켜 상식의 세계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수학적 공식과 정리에는 물리적 해석(Physical Interpretion)이 따라야 한다. 영어회화를 배울 때, 책에서만
달달 외우다가 미국에 가면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표현 하나 하나를 외울 때마다 실생활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과 장면을 매치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미국에
가서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 즉시 영어 표현이 나온다. 수학도 이와 꼭 같다. 수학세계를 현실 세계로 매치
시키지 않으면 그 수학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수학공식과 정리를 노트나 책에서만 푸는 것은 배움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 끌고 나와서 해석하고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직관'(Intuition)은 이런 과정에서 자란다. 직관력을 키우지 못하면 발명할 능력도 없다. 이를
더러는 훈련된 예측력(Educated Guess)이라 부른다.
 

배우고 음미하고 터득하려는 노력은 예리한 직관력을 키우는데(Sharpen Intuition) 절대적인 과정이다. 공식을
재창조(Regeneration)하고, 응용하고, 새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사람은 공식을 숭상하고, 일생
내내 남이 만들어 낸 수학 모델만 찾아 헤맨다.
 

새로운 수학공식과 정리(Theorem)는 훈련된 예측(Conjecture)에서 출발한다. 그 예측을 증명해 나가는 것이
수학적 발명이다. 통게학의 '희귀분석'(Regression Analysis)이나 LP, 이공계를 공부한 이들은 이런 것쯤은 다
안다 할 것이다.
 

"아, 그런 거? 그건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껍데기만 공부한 사람이다. 그들이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 두 가지는 엄청난
철학적 의미, 광범위한 개념과 응용분야를 내포하고 있다. 간단한 절차와 요령(Simplex 등과 같은 알고리즘)을
원숭이 식으로 배운 후에, 그것을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학문에 첩경은 없다. 왕도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단거리 경쟁을 연속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장거리 경쟁으로
틀을 잡았다. 좋은 점수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좋아 하는 과목에서 희열을 느끼며 시간에 대한 계산 없이 몰두
했다.
 

몰두하다 보니 직관력이 길러졌고, 그 직관에 의해 나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에 대해 내 나름
대로의 독특한 해석을 내리며 일반상식인들과는 다른 강상원 식의 처방을 내린다. 개선은 과학이다. 그 과학의
기초는 관찰이다. 이론(Theory)이 없는 관찰은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
 

이론 없는 경험도 그렇다. 똑 같은 것을 보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본 것' 이 다르다. 각자는 머리에 들은 것
만큼만 보는 것이다. 직관력을 기른 사람이 한 시간에 볼 수 있는 것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일생 내내 보지
못할 수 있다.
 

수백 수천 명이 달려들어도 보지 못하는 문제를, 한 사람의 직관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체계적인 이론은 없지만
한 분야에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 이런 사람들을 흔히 전문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원주민이라고 부른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좋은글/따뜻한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