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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시절, 나는 도서관 양탄자 위에 책과 학습 간행물을 한 아름 찾아 쌓아놓고 너무나 기가 차서 울어본 일
있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려면 나도 모르게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박사과정에 와보니
그건 약과였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시스템 수학의 기초과정부터 시작하여 박사 논문까지 끝내야 했기
때문에, 첫 학기부터 중압감으로 많은 스트래스를 받았고, 이는 나의 지병인 위장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연중 내내 반팔차림으로 지낼 수 있는 지중해성 기후였는데도, 무릎과 발이 시리고 찌릿해서 차라리 다리가 없는
편이 더 편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항상 뒷골이 무겁고 나른해서 잠만 쏟아졌다. 근처에 사는 교포에게 몇 차례
침을 맞기도 했지만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한 차례에 20불씩의 치료비도 큰 부담이었지만, 침 맞으러 가는데 20분 오는데 20분, 침 맞는데도 20분이라는
시간이 더욱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침술사에게 제발 사람 하나 살려 달라 간청했다. 그가 준 침 뭉치를
가지고 거의 매일 침을 놓았다.
그가 가르쳐 준 요령 대로 배, 손, 그리고 발에 침을 꽂았다. 배에 꽂는 실침의 수는 30개 내외였다. 그런데
침을 맞으면 체력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여 까부라지기도 했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2층
계단을 내려와 간신히 몸을 가누고 비틀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때부터 3년을 매일 뛰었다. 처음엔 힘들지만 뛰고 나면 지쳤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비가 와도 뛰었고
어떤 때는 새벽 두 시에도 뛰었다. 매일 같이 뛰는 것은 체력 향상에도 도움되었지만, 나태해지는 것을 방지해
주기도 했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르게 된다.
열흘을 거르지 않으려면 하루를 거르지 않아야 했다. 바로 이런 것이 극기인 것이다. 그 결과 박사과정이 끝난
시점에서의 내 건강은 그때까지 내 일생 전체에서 가장 좋아져 있었다. 뛸 때는 반드시 생각할 문제를 꼭 미리
준비했다. 그리고 뛰면서 수많은 수학 이론을 터득했다.
뛰면서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을 칠판에 수학기호들로 표현한다면, 칠판 한두 개쯤은 빼곡하게 들어찼을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상상력과 논리력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이었다. 이렇게 훈련하니까 교수가 칠판에
써 내려가는 수학기호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훈련 때문인지 그때부터 길을 가거나 운전을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연상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새로운 이론을 공부할 때마다 나는 3~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같은 이론이라도 이를 다루는 석학들에
따라 시각을 달리 하고, 다루는 요령 및 기법을 달리 한다는 것이 학문의 희열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 희열은 주말 공부를 위한 충분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남들은 교과서 하나도 다 소화할 시간이 없는데
그렇게 많은 책을 언제 다 보느냐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학문이 주는 희열을 알지 못한 채 성적과 학위만 딸
뿐이다. 공부는 하지만 사고력을 다양하게 기르지는 못한다.
이러한 나의 공부 방법은 수학에 대한 해석력을 낭만적이라 할 만큼 화려하고 풍부하게 길러 주었다. 1년 후의
결산 결과 내 성적은 4점 만점에 3.92였다. 그래서 처음의 조건부 박사 후보생에서 이제 정식 박사 후보생으로
인정받았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수학 책에서 제공하는 공식과 정리를 내 나름 대로 소화했고, 그에 더 추가하여 내 나름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그 공식과 정리들을 증명하는 버릇을 길렀다. 책 속의 공식에 매달려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공식을 별도로 만들어 가면서 공부한 것이다.
박사과정 필기시험을 친 세 명 후보 중에서 나 하나만 합격했다. 그리고 며칠 후 박사 자격 구두시험이 열렸다.
다른 과 교수들을 포함하여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나를 맹공격하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순수 수학과 교수가
lmplicit Function Theorem을 간단히 요약해 보라고 했다.
고등 함수이론에서는 lmplicit Function Theorem 이란 것을 배우고. 응용수학에서는 LP(lmplicit Programming)
라는 것을 배운다. 나는 LP를 배우면서 그 속에 lmplicit Function Theorem이 내포돼 있음을 발견했고, 그리고
그 lmplicit Function Theorem을 배우면서는 LP의 배경을 음미했다.
바로 이런 것이 학문을 공부하면서 얻는 희열인 것이다. 나는 그 순수 수학 교수에게 Lp의 기본철학을 요약하며
"바로 이것이 lmplicit Function Theorem의 기본 개념입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처럼 생각해 본 교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박사과정
친구들이 구두시험에서 무엇을 묻더냐고 물었다. 내가 이를 설명했더니 그들은 매우 놀라면서, 자기들은 나처럼
생각해 본 일 없다고 했다. 수학교수에 이어서 확률 통계학 교수가 질문했다.
"해군 장교들의 근무 연한에 관한 확률분포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역 장교들을 표본으로 하여 그들의
과거 근무 연한을 표본(Sample)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어떤 문제들이 있겠습니까?"
평소 내가 늘 생각했던 문제여서 즉시 답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Inspection Paradox 라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Life를 가지고 전체의
Life를 예측하는 데 따른 문제입니다. 예편한 장교들을 표본으로 하지 않고 현역 장교를 표본으로 한다는 것은
Past Life에 대한 확률분포를 가지고 전체 Life에 대한 예측을 하려는 것입니다."
"우물에 수많은 머리카락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 머리카락을 모두 꺼내어 일일이 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막대기로 물을 휘저었습니다.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머리카락을 막대기로 건져 올렸습니다. 막대기에 100개의
머리카락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표본으로 잡았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납니까? 그 샘플은 모집단(Universe)을 과대평가(Overestimate)
한 것이겠습니까? 또는 과소평가(Underestimate)한 것이겠습니까?"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길수록 막대기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더 높기 때문입니다."
"현역을 샘플로 잡은 것도 똑 같습니다. 현역으로 남아 있는 장교들은 예편한 장교들 보다 군 생활을 더 오래
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Over Estimate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역에 있는 장교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얼마나 근무했느냐, 즉 전생(Previous life)의 길이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겠느냐.
즉 후생(After Life)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이 천장에 전구가 있습니다. 이 전구를 언제 갈아 끼웠을까요? 기록을 보면 각 전구가 얼마나 오래 사용됐는지
(ProㅡLife)에 대한 통계분포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이 전구들의 미래는 어떨까요? 얼마나 더 오래 사용되다가
Life를 마칠까요?"
"전구의 Life는 지수분포(Exponential Distribution)로 표현됩니다. 전구의 전생과 후생은 확률적으로 같습니다.
현역 장교에 대한 기록은 전생의 기록입니다. 후생은 전생으로부터 예측될 수 있습니다. 전생과 후생을 합치면
바로 장교들의 복무기간이 됩니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교수들이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기쁨의 웃음을 교환했다. 교수의 질문에 쩔쩔 맨 것이 아니라 교수들에게 그들이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접근방법을 강의한 꼴이 되었다. 'lnspection Paradox' 즉 'Length Biased Distrbution'
이라는 수학적 정리를 증명하는 절차는 매우 길다, 참고서 1쪽 분량이다.
"그러면 Length Biased Distrbution의 유도과정부터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교수들의 눈이 또 뚱그래졌다. 그렇게 긴 과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는 의미였다. 나는 불과 3줄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기존의 책들에 없는 방법이었다. 전혀 Contex가 다른 Renewal Theory로 접근했다. 오히려
내가 교수들에게 강의하듯이 했다. 당연히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면접시험이 끝나자 논문 지도교수가 자기 방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초조하게 기다린지 20분쯤 되었을 때,
"강성원 박사위원회" 6명의 교수들이 일렬로 서서 들어왔다. 기쁨이 가득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내가 마치 무슨 높은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그들은 일렬로 들어와 한사람씩 악수를 청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강성원 박사 정말 축하합니다.
우리는 약 20분동안 당신의 합격 여부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합격에 이의를 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이 학교 창설이래 가장 훌륭하게 면접시험을 치렀을 것입니다.
박사과정을 맡고 있는 교수들 모두가 자기 학생들이 다 당신 같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부러워들 했습니다.
당신 같이 창의력 있는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훌륭한 논문을 쓰게 할 것인지에 대해...."
최근들어 그 어느 박사 후보도 첫 번째 시험에 패스해 본 적 없다는 이 과정에서, 모범생으로까지 칭찬을 받으며
합격을 하다니!
어리둥절했지만 내게도 이런 순간이 다 있구나 싶었다. 나보다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한 학생들, 모두가 두 번째
필기시험에서 간신히 합격했다. 이들은 나보다 2~3개의 A학점을 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경제적으로
하다 보니, 그들은 교수들이 조금만 흔들어도 혼돈을 일으켰다. 내린 뿌리가 짧고 약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앞에서 소개한 일 있는 2m 키의 Richard 교수가 논문지도를 맡았다. 정리
(Theorem)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는 앞이 막혔다. 며칠 간을 쉴 틈 없이 골몰했지만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새벽 두 시에 잠을 청해 자다가 새벽 다섯 시에 꿈을 꾸면서 그 문제가 풀렸다. 꿈에 문제를 푼 것이다.
"리뉴얼 이론, 아이겐 벨류 및 아이겐 벡터!"
나는 일어나 신들린 사람처럼 정리(Theorem)에 대한 증명을 써 내려갔다. 옛날 석사과정에서 수학과 교수로
고급 함수이론을 강의했던 '닥터 위어'(Weir), 그는 카네기멜론을 나온 수재였다. 모든 교수들이 다 박사학위를
가진 닥터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를 '프로페서 위어'라고 하지 않고 '닥터 위어'라고 불렀다.
그가 강의하는 모습은 차라리 명배우의 연기에 가까웠다. 모션 모션이 매우 멋진 멋쟁이였고 강의가 그야말로
각본처럼 빈틈이 없었다. 어느 날 그 교수는 자신이 박사논문을 쓰면서 꿈속에서 문제를 풀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연기가 뛰어난 교수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저 교수 말은 뻥이야 뻥"이라며 믿지 않았다.
나는 꿈속에서 문제를 푼 바로 그날, 가장 먼저 '닥터 위어'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나도
당신처럼 꿈에서 문제를 풀었다고 말해 주었다. 전화를 받은 그 교수는 '원더풀'을 연발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그 교수 역시 나를 열열히 지지해준 교수들 중 한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리한 증명 방법을 지도교수에게 전달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책에 소개돼 있는 공식은 한 줄인데
내가 나름대로 유도한 공식은 세 줄이었다. 같은 공식인데 어째서 1줄짜리 공식과 3줄짜리 공식이 같은 것이냐
하면서 지도교수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수학기호들의 모양에 비슷한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고유의 그림 그리기 방법대로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는 숫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절망감이 엄습해 왔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논문 지도교수인 그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야릇한 표정까지 짓는 것이었다.
한 줄자리 공식으로는 내가 증명하고자 하는 정리(Theorem)를 증명할 수 없지만, 내가 새로 만든 3줄짜리로는
깨끗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설득시키려고 하면 예기치 못한 불화로 진전될 것 같아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나는 그 교수를 "돌머리"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화가나서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나만 아는 방법을 강요하려 하지 말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플라스 트랜스포메이션' 이라는 일종의 '수학적 거울' 이 떠올랐다.
한줄짜리 공식을 라플라스 함수로 전환하고, 또 3줄짜리 공식도 라플라스 함수로 전환하여 라플라스 언어로
표현된 두 개의 상이 똑 같은 것으로 나타나면, 밖에서 서로 달라 보이는 두 개의 공식은 똑 같은 것이라는
"정리"(Uniqueness Theorem Of Laplas Transformation)가 있다.
즉 달라 보이는 두 개의 공식을 '라플라스' 라는 거울에 비춰 보니, 거울에 나타난 상이 똑 같다는 것만 증명해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들린 듯이 라플라스 폼으로 두 개의 공식을 전환시켰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을 지도교수에게 전화하여 결과를 말해주었다. 교수는 축하한다 하면서도 말투가
벌레 씹은 어조였다. 결국 그는 내가 유도하는 과정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과에 대해선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여 국방과학연구소를 떠나, 만 33개월 만에 박사논문까지 아무 잡음 없이 깨끗이 마쳤다.
1980년 9월 30일, 대학원 졸업식에는 수백 명의 석사들이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박사는 나 혼자 뿐이었다.
나와 함께 박사학위를 받기로 예정됐던 다른 3명의 후보들이, 졸업식 바로 전날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모두 탈락
헸기 때문이었다.
그들 3명은 박사학위 대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들 중 두 사람의 부인이 자존심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울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미공군 소령으로, 3년 내내 나에게 항상 가정교사처럼 도움을 준
사람이었고 나보다 실력이 월등했던 장교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소령은 6개월 후에 성공했다.
졸업식 날,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가족들이 모두 나를 알아 보면서, 한 결 같이 입을 모아 축하 인사를 했다.
"오늘 졸업식은 모두 당신의 것이었습니다."(The Ceremony Was All Yous)
이는 전 세계의 장교들과 우정을 주고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벌인 끝에 이루어낸 하나의 작은 승리였다. 내가
만든 수학 공식, 정리, 알고리즘은 각기 나의 성을 따서 'Kang's Formula', 'Kang's Theorem', 'Kang's Algoㅡ
rithm'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후 나는 그 학교에서 전설적인 케이스로 전해지고 있다. 문과분야 석사과정에서 이과분야 박사과정으로 변신한
첫 케이스. 평균 학점 3.8 이상만 박사과정에 받아주는 콧대 높은 학교에서, 동양계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박사를
한 케이스. 새로운 공식과 새로운 정리를 8개씩이나 실은 논문을 쓴 케이스.
여러 분야 교수들이 모여 희한한 질문을 하는 박사자격 구두시험에서, 자유분방하고 다얀한 이론과 해석으로
교수들을 즐겁게 해준 첫 케이스로 희자됐고, 그후 계속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