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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豊水院聖堂)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2007.5. 11(금) 08:00 중산성당 마리아 요셉회 회원 80여명은 버스 2대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인 풍수원 성당을 향하여 출발 의정부, 미사리,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지나 횡성 땅 도덕 고개를 넘어서 10:40 풍수원 성당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11:00 미사에 참석 김승오(아오스딩) 주임신부님의 주재로 미사를 올렸다.
주임신부님의 풍수원성당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니 선조들의 목숨을 건 신앙심을 감탄하고 존경심이 울어 나왔다. 미사를 보고 난 후 점심을 먹고 2층으로 된 유물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초기에 사용하던 성경필사본들을 비롯한 귀중한 서적들과 성수그릇, 유해, 묵주, 십자가, 성복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의미 있게 구경하였다. 이어서 13:00 중산성당 주임신부님의 주재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올렸다.
소나무가 울창한 산림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도를 하고나니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십자가의 길 끝에 올라서니 묵주동산이다. 여기에는 성모님상, 십자가상, 묵주성물을 원을 그려 땅에 묻어 놓았다.
묵주동산에서 손에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고 내려와 15;00 풍수원 성당을 출발 17:30경 중산성당에 도착하였다. 오늘 하루 처음 가본 횡성 풍수원상당 성지순례로 많은 것을 알게되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주관하시느라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요아킴 올림)
풍수원 성당 역사를 살펴보면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지점인 성지봉 기슭에 자리한 풍수원 천주교회는 1846년부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던 이승훈의 조카인 이신규 가 목신부(Anthony)와 선교를 했던 곳이다.
1801년 신유(순조1년), 1866년 병인(고종 3년), 1871년 신미(고종 8년)박해를 피하여 용인의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40 여명의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정착한 곳으로 신자들이 촌락을 이루어 살던 중 1887년 5월 30일 한불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고, 1888년 서울 교구장은 풍수원 성당을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신부로 프랑스 르 메르(Le Merre) 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 춘천․화천․양구․홍천․원주․강릉․양평 등 12개 군을 사목하였는데,
당시 신자 수는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20여 년간 사용하다 1896년 2대 신부로서 한국에서 3번째 사제 서품이 된 정규하(1863~1943) 신부가 부임 중국인 기술자 베드로와 함께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 1909년에 낙성식을 가져 2007년 현재 98년이 지났는데도 튼튼하다.
건축양식은 고딕식으로 지붕은 프랑스에서 가져온 동판을 사용하였고 벽은 직접 구운 붉을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기단은 석재 등을 사용하였다.
풍수원 성당(1909년)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유서 깊은 성당(첫 번째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두 번째 전북 완주 고산성당(1896년), 세 번째 서울 명동성당(1898년) 으로 그 보존적 가치가 높아 1982년에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정규하 신부님은 1896 신부서품을 받고 부인한 이래 1943년 선종할 때까지 47년간 평생을 이 성당에서 보냈다. 성당 앞마당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2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고, 성당 뒤편엔 전시관을 나오면 오른편에 십자가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정규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묘가 나오고, 이어 625때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다가 살아난 미국인 장교가 보내왔다는 성모상이 자리한 묵주동산이 나온다.
현재 횡성군에서는 이곳을 종교적인 성지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자 유현문화관광지를 조성 중에 있다.

풍수원성당 전경

풍수원성당에서 미사드리는 장면

십자가의길 기도를 드리며

십자가의길 기도를 드리며

묵주동산 성모님상

횡성군에서 시행하는 바이블 파크 조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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