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은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2008. 12. 16. 오후 5:59:37

글자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은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다.
마르코는 이 말씀을 예수님 설교의 모든 요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은 바로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는데, 아무 때나 또는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시작하셨다" 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비전(Vision)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절망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느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비전에서 희망을 발견해야 하고 꿈을 꾸어야 하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하느님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비전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신 큰 선물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또한 바라보는 대상을 닮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보다는 바라보는 대상이 중요하고,
바라보는 방향이 중요하다.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 한 사람은 감옥 창 밖에 있는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별을 보고 시를 써서 시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은 같은 창 밖에 있는 진흙탕을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한 결과 그는 정신병자가 되었다.
같은 장소에서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느님 나라'란 어떤 나라인가? : 하느님 나라란 하느님이 현존하시고 하느님의 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하느님의 통치(다스림)가 시작되었다"라는 말이다. 즉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하느님 나라'라는 말의 근원은? :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통치자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하느님의 정의대로 통치할 왕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소망과 탄식어린 간청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셔서, 하느님의 정의대로 이 세상을 통치할 구세주가 곧 나타나리라는 것이 예수님시대의 민중에게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민중의 이 기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따른다면, 그들의 가슴 속에 하느님의 정의가 깃들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그분의 선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새로운 점은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가르침이었다.
루가복음을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에 당신의 고향 나자렛으로 가셨는데, 그곳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펼쳐 드시고는 하느님 나라를 예언한 대목을 읽으셨다(루가 4,18-19 참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생활하려면 무엇보다 하느님의 법인 복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을 모르면 하느님이 어떤 방법으로 다스리시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세레를 받은 이후부터 꾸준히 복음을 공부하도록 이끌어 주는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려는 노력없이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활동이나 봉사도 중요하지만 먼저 복음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한정된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 건설되는 나라이다.
즉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이며, 이 하느님의 나라는 실제로 우리 안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실현되는 나라이다.
'시간적으로'라는 말은 하느님의 나라가 "먼 미래에 다가올 나라가 아니라
현재에 와 있는 나라"라는 것이요, '공간적으로'라는 말은 "죽은 다음에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현재 우리 안에 현존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즉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와 있는 나라(루가 11,20 참조)이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 가까이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할 첫 번째 노력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신 다음, 곧 이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①회개란 무엇인가? : 회개란 하느님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첫째, 회개란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복음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목적지는 곧 복음이 제시하는 곳이다.
셋째, 회개는 이성의 세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회개를 그리스어로 'Metanoia(메타노이아)'라고 하는데,
메타노이아는 이성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 인간의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회개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시해 주시는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넷째, 회개는 '놀라는 것'이요,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것'이다.
놀라는 이유는 이전에 보지 못해던 새로운 것을 보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의 신비를, 하느님의 나라를 보고 듣기 때문이다.

②우리의 두 번째 반응은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가까이 온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이다. 회개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가 바로 복음을 믿는 것이다. 회개했다고 하면서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개한 것이 아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이며, 예수님이 보여 주신 모든 활동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그분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또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 예수님을 위해 바치겠다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내가 예수님의 삶을 살고,
예수님과 더욱 깊은 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복음이 바탕이 되지 않는 믿음은, 또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리 굳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복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믿음이어냐 한다.
그것이 회개의 삶이요, 하느님 나라의 삶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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