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유다인이 해서는 안 될 39가지의 금지조항

2008. 12. 16. 오후 5: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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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유다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지는 시각부터 토요일 해지기 바로 전까지 꼭 하루 동안을 말한다. 이날에는 노동이 완전히 금지되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셨으며 그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일체의 노동이 금지되어 있는 이날은 불을 붙이거나 끄는 일조차 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일 마저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심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에 따라서는 불을 끄는 비유다인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용된 비유다인은 금요일 밤늦게 유다인들의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불을 껐다.
안식일은 유다인이 가장 유다인답게 지내는 하루다. 안식일에 대한 전통과 관습을 깊이 사랑하는 유다인들은 이 날이 자신들을 진정 유다인답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수천년에 걸쳐 이 안식일법을 철저하게 준수해 오는 동안, 유다 세계는 외부의 거센 압력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특히 처참했던 바빌론 유배의 시련을 안식일과 같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율법 정신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확실하게 구분시켜 주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었던 셈이다. 특히 유배 이후 제2이사야는 안식일 준수를 엄격히 강조하였다(이사 58,13참조). 그것은 유다인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절대적이었던 안식일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한 유다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예수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너무도 허기진 나머지 밀이삭을 자르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왜 하느냐고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예수는 당시 사회의 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혁명적 발언을 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마르 2,27)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일까? 분명 예수의 발언은 유다 사회의 근본질서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의 형식보다는 법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법 자체에 얽매이게 되면 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는 바로 당신 안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
성서를 읽다보면 ‘유다인은 어떻게 수천 년 동안 많은 이방 민족과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타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나’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을 지배했던 거대한 민족이나 국가들을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정작 지배를 받았던 유다인들이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그 비결을 물을 때 서슴없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유다인의 안식일은 그들의 생존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유다인이 안식일을 지켰다기보다는 안식일이 유다인을 지켰다’고 말한다.
유다인은 금요일이 되면 오전 안에 모든 일을 마친다. 대부분의 상점도 오후 4시까지는 모두 문을 닫는다. 말하자면 일상의 모든 소음을 중지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는 거룩한 날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멈추다’‘휴식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사밧(sabbath)’에서 유래되었으며,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신명 6,7)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거룩한 날이다.
유다인 달력에는 금요일마다 해지는 시각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 시각이 사밧(안식일)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달력에 기록된 시각이 실제 해지는 시각보다 18분 빠르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하여 몇 분 전에 미리 촛불을 밝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촛불은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켜야 한다. 일단 해가 지면 사밧은 시작되고, 사밧이 시작되면 불을 켤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을 켜는 것은 창조행위이고,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창조행위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밝히는 촛불은 평일과 안식일을 가르는 상징적인 빛이다. 일과 휴식을 가르는 빛이며, 세속과 거룩함을 가르는 빛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오후 6시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사이렌이 울린다. 안식일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안식일에 유다인이 해서는 안 될 39가지의 금지조항이 정해져 있다. 그것은 ‘불 붙이기, 불 끄기, 망치질, 긁기, 표시하기, 모양대로 자르기, 쓰기, 지우기, 짓기, 무너뜨리기, 씨 뿌리기, 쟁기질, 추수, 추수단 묶기, 타작, 곡식 씻기, 도리깨질, 체질, 방아질, 반죽, 빵굽기, 양털깎기, 표백, 재료배합, 염색, 실뽑기, 베틀에 실얹기, 방적, 천짜기, 다 된 물건 치우기, 매듭짓기, 매듭풀기, 찢기, 바느질, 덫놓기, 도살, 껍질이나 가죽 벗기기, 무두질, 공공장소에서의 운반행위’ 등 39가지이다.
이들 금지조항외에도 이와 유사한 일은 어떤 일이든지 금지된다. 안식일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신명 6,5) 하느님을 섬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에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적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되어야만 했고(2마카 5,26 참조), 안식일을 존중해서 자신을 방어하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2마카 6, 11 참조). 또한 거룩한 안식일에 돈벌이를 할 수 없었으므로(이사 58,13) “가난한 이들은 안식일은 언제 지나지?” 하고 그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안식일을 어기고 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졌기(출애 31,14 참조) 때문이다.
예수시대에도 이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안식일 규정이 그대로 이어졌다.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배가 고파 밀이삭을 자르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비난을 하였고(마르 2,24),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예수께서 병을 고쳐 주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으며(루가 6,7), 결국 안식일에 일을 한다하여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요한 5,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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