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수난 이야기 비교 분석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이 자료는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것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말씀드립니다).
요한복음서 18-19장은 예수님의 체포에서부터 장례까지를 다루는 예수님 수난사화이다.
공관복음서의 예수님 수난사화(마르 14,32-15,47 ; 마태 26,36-27,66 ; 루가 22,39-23,56)와 요한복음서의 예수님 수난사화를 비교하여 보면, 큰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적 묘사는 상당히 다르다.
여기서는 요한복음서의 수난사화와 공관복음서의 수난사화를 비교하여 공통점과 상이점을 밝히고, 요한복음서의 특수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붙잡히시다 ; 체포 (18,1-11)
18,1절 : 1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당신 제자들과 더불어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떠나가셨다. 거기에 동산이 있어서 예수와 제자들은 그리로 들어갔다. :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 중에 긴 고별사와 고별기도를 마치신 다음에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가셨다고 되어 있으나,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만찬을 드신 후에 올리브산 기슭에 있는 게쎄마니로 가셨다. 두 지명은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
마르코가 예수님께서 게쎄마니에서 바치신 기도(마르 14,32-42)를 자세히 묘사하는데 비해서 요한은 그 기도를 이 단락에서 생략하고 있다.
18,3절 :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또 대제관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하인들을 데리고 횃불과 등불과 무기를 든 채 그리로 왔다. :
공관복음(마태 26,47 ; 마르 14,43 ; 루가 22,47)에서는 유다가 이끄는 군중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에서는 군인들도 동행하였다고 한다.
이는 요한 복음서 저자의 세부 묘사에서 로마인들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참가하였다는 것은 신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모든 악의 세력이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간에 그리스도를 거슬러 공모했다는 것이다.
18,4-6절 : 예수께서 닥쳐올 모든 일을 아시고, 나서서 그들에게 "누구를 찾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나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넘겨 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나입니다" 하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뒤로 물러나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
·공관복음서(마태 26,48-49 ; 마르 14,44-45 ; 루가 22,48)에서는 배반의 표지인 유다의 입맞춤을 전하나, 요한복음서에서는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반면에 주님의 품위를 보이는 장면을 소개한다.
·또한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못해 상황에 끌려다니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주도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당신을 붙잡기를 기다리시지 않으신다. 유다인들을 맞으러 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시고 6절에서 “내가 그 사람이다”(ego eimi)라고 당당히 밝히신다.
18,8-9절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보내 주시오." 이것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셨던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는 순간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8절에서 제자들을 그냥 가게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마태 26,56 ; 마르 14,50)에 보도되어 있는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라는 내용은 삭제되어 있다.
18,10-11절 : 이 때 시몬 베드로가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대제관의 종을 후려쳐서 오른편 귓바퀴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칼을 칼집에 꽂으시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예수께서 체포되실 무렵 베드로가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한다.
공관복음서에도 이 사실을 전하기는 하나, 이 거친 행동을 한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과 칼에 맞은 사람이 말코스라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점이 다르다.
2. 안나스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 (18,12-27)
12-14절 : 군대와 천부장과 하인들이 예수를 붙잡아 묶었다. 그리고 먼저 안나스에게로 데려갔는데, 그는 그 해의 대제관인 가야파의 장인이었고 가야파는 유대인들에게 백성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이롭다고 충고했던 자였다 :
공관복음서(마태 26,57 ; 마르 14,53 ; 루가 22,54)에서는 예수님을 현직 대사제인 가야파의 저택으로 끌고 가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요한 복음은 먼저 가야파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끌려 가신 것으로 되어 있다.
15-16절 : 시몬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갔는데 다른 제자 하나도 따라갔다. 그는 대제관과 아는 사이여서 예수를 따라 대제관의 저택 안뜰로 함께 들어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깥 대문 곁에 서 있었는데, 대제관과 아는 사이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
공관복음서는 베드로가 대사제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경위를 언급하지 않는데 대하여, 요한복음서는 대사제를 잘 아는 다른 제자가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고 전한다.
17-18절 : 그러자 문지기 하녀가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하고 말하니 베드로가 "나는 아니오" 하였다. 날이 추웠으므로 종과 하인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쬐고 있었다.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25-27절 : 25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하고 말했다. 베드로가 "나는 아니오" 하고 부인했다. 26대제관의 종들 가운데 하나이며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친척되는 이가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하고 말했다. 27베드로는 다시 부인하는데 곧 닭이 울었다. :
·베드로의 배반 장면으로 공관복음서(마태 26,69-75 ; 마르 14,66-72 ; 루가 22,54-62)와는 아주 달리 세 번 모두 물음을 부정 의문문으로 표현하고(예시 참조),‘제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요한복음서는 짧게 “베드로가 또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라고 적고 있다.
※첫 번째 질문 : 마태 26,69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마르 14,66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루가 22,56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요한 18,17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두 번째 질문 : 마태 26,71 “이 사람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게 있었어요”
마르 14,69 “이 사람은 그들과 한 패입니다.”
루가 22,58 “당신도 그들과 한패구려.”
요한 18,25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세 번째 질문 : 마태 26,73 “…당신의 말씨가 당신을 분명히 드러내 주니까요.”
마르 14,70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루가 22,59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요한 18,26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공관복음서(마태 26,75 ; 마르 14,72 ; 루가 22,61)와는 달리 베드로의 회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것을 생략한 것은 오히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은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입니다”(13,38)란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수법으로 그의 비통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19-24절 : 대제관은 예수께 그분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해서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에 드러나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모든 유대인이 모여드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은밀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묻습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틀림없이 내가 한 말을 알고들 있습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하인 하나가 손찌검을 하며 "대제관님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께서 " 내가 틀린 말을 했다면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올바로 말했다면 왜 때리오?" 하셨다. 안나스는 그분을 묶은 채 가야파 대제관에게로 보냈다. :
·공관복음서(마태 26,63-64 ; 마르 60-62 ; 루가 22, 66-71)에서는 예수님께서 신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거스른 단죄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로 적법한지에 대한 질문은 싣지 않는다. 그 질문은 이미 공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제기되었기 때문이다(10,24-32).
·또한 공관복음서(마태 26,67-68 ; 마르 14,65 ; 루가 22, 63-65)에 나타나는 침뱉음과 손찌검 등의 수모를 겪으시는 모습을 전하지 않는다.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천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위엄을 잃지 않으시고 당당히 대응하시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23절 참조).
·22절에서 하인이 "대제관님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라고 한 말은 공관복음서(마태 26,67-68 ; 마르 14,65 ; 루가 22,63-65)와는 달리 예수를 조롱하고 야유하는 뜻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일종의 견책이다. 하인이 예수님의 권한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역할을 한다.
3. 빌라도의 심문 (18,28-18,38a)
18,28절 : …새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정을 타지 않고 해방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
이 구절은 전례적인 상식을 전하는 요한 특유의 감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공관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이다. 28절에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해서 몸이 부정하게 될까봐 총독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 거리감을 두고 있는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기 직전까지도 그들의 율법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29-32절 :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오?" 그들이 대답했다. "이자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넘겨드리지 않았겠지요." 빌라도는 "데려가서 당신네 법대로 심판하시오" 하니, 유대인들이 "우리는 아무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장차 어떤 모양으로 죽을지 암시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유대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이 구절은 요한복음서 고유의 기록이다. 공관복음서(마태 27,11-14 ; 마르 15,2-5 ; 루가 23,2-5)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여러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발하는데 요한복음서에는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오?"라는 빌라도의 말에 반박하는 말만 전한다(30절 참조). 이 말은 총독에게 예수님을 유대법을 기초로 해서 종교적인 죄를 범한 나자렛의 예언자로 고발하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18,37-38a :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께 "그렇다면 당신은 왕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바로 그 일을 위해 났으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습니다." 빌라도가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오?" :
공관복음서에는 언급이 없으나, 요한복음서 저자는 37절에서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에 이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바로 그 일을 위해 났으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과 일치되어 있다.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며(17,17)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4,6).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머물러야 한다(8,31-32).
4. 사형 선고 (18,38b-19,16a)
19,1절 : 1이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가서 채직질했다. :
공관복음서(마태 27,27-31 ; 마르 15,16-20)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님게 사형언도를 내린 다음에 비로소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채찍질을 가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혀 놀리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저자는 채직질과 놀림받으신 때를 빌라도의 사형언도 이전으로 옮겨 썻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이 더 믿음직스럽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이는 데 주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으로 조롱하는 보도를 빌라도의 사형 언도 전에 배치한다. 즉 빌라도는 유다인들의 분을 풀어주어 어떻게든 예수님께 사형 언도만은 내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다.
19,4-7절 : 빌라도가 다시 밖으로 나와 말했다. "보시오, 그를 당신들 앞에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이윽고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말했다. "보시오, 이 사람이오." 대제관들과 하인들이 그분을 보자 외쳤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당신들이 데려가서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나는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으니까요." :
빌라도는 밖으로 나와 유대인들을 대면하고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한다(4절). 빌라도는 이 대목에서 무려 세 번이나 그분의 무죄를 선언했다(18,38 ; 19,4. 6).
5절은 요한 복음서의 고유 구절로 예수님을 왕의 품위(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겉옷을 걸치고…)를 지니신 분으로 묘사하려 한다.
19,8-12절 : 빌라도는 이 말을 듣자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았다. 빌라도가 말했다. "말하지 않겠소? 나에게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나를 당신에게 넘겨 준 자에게 더 큰 죄가 있습니다." 이 때부터 빌라도는 그분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만일 그를 풀어 준다면 당신은 황제의 친구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황제를 배척하는 자입니다" 하고 외쳐댔다. :
요한복음서에서는 이 구절이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심문자들에게 답변하지 않는 대목이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거나 십자가형에 처할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한다(10절).
예수님의 답변(11절)에 압도된 빌라도는 “그분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라고 전한다. 빌라도의 그런 의향은 요한복음서 전체에서 다 다뤄졌다.
19,13-16절 : 그 말을 듣자 빌라도는 예수를 밖으로 데려가게 하고 '돌포장' 이라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돌포장' 은 히브리어로 '가빠타' 이다. 그 날은 해방절 준비일이며 때는 정오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 그러자 저들이 외쳤다. "없애시오, 없애 버리시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빌라도가 물었다. "당신네 왕을 내가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오?" 대제관들은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황제말고 왕이 없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넘겨 주었다. :
·요한복음서 저자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유대인들이 위협하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예수님을 밖으로 나오게 하고 자신은 돌포장이라는 재판석에 앉았다. 이것은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단죄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으로, 거기서 빌라도는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라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한다.
·요한복음서는 이 대목에서 전례적인 의미를 지닌 내용을 보고한다. 즉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언도를 내린 시각을 명기하여 “그 날은 해방절 준비일 때는 정오쯤이었다”(14절)고 한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선포된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 보고는 이어져 나오는 예수님의 죽음과 무덤에 안장되는 시간들과 연결된다(19,31. 42).
·유대 전통에 의하면 해방절 전날의 이 시간이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안식일의 규정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해방절 축제가 시작하려 하는 때이다. 해방절 전날의 한낮에 총독 빌라도는 공식석상에서 모든 유대인들 앞에서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방인이 유대인들을 조롱한 것이기도 하나 요한 특유의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이다.
·15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치는 소리에 빌라도는 "당신네 왕을 내가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오?" 하고 반문한다. 이는 유대인들을 굴욕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왕직이 계속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 어린양들을 도살하는 시각에 예수님께서는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처형되셨다.
5. 십자가에 달리시다 (19,16b- 27)
19,17-18절 :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짊어지고 ‘해골터’라는 데로 떠나가셨다. 히브리말로는 ‘골고타’라 한다. 그곳에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고, 다른 두 사람도 함께 예수 양쪽에 달았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2 ; 마르 15,21 ; 루가 23,26)에서는 예수님께서 매를 너무 많이 맞아 기진맥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키레네사람 시몬이 지고 갔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와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형장으로 가셨다고 전하고 있다.
제4 복음사가에게 있어 십자가는 주님께서 그 위에 높이 올려질 왕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는 그분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공관복음서(마태 27,34 ; 마르 15,23)에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기 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드시게 하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이를 전하지 않는다.
·공관복음서(마태 27,38 ; 마르 15,27 ; 루가 23,33)에 따르면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 한 사람씩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하는데,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좌우편에 각각 한 사람씩 십자가에 처형했다고만 할 뿐 두 사람의 신원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요한은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19,19-22절 : 빌라도는 죄목패도 적어서 십자가 위에 붙여 놓았는데, "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적혀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으므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 죄목패를 읽었다. 히브리어, 로마어,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대제관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의 왕' 이라 적지 말고 '자칭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적어 주시오" 하였는데, 빌라도는 "내가 적은 것은 이미 적은 것이오" 하고 대답했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7 ; 마르 15,25 ; 루가 23,38)에는 예수님의 죄목 명패에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나, 요한복음서에는 히브리어, 로마어, 그리스어로 "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길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죄목을 세 가지 언어로 적었다는 것은 요한복음서 저자의 그리스도론과 잘 어울린다. 요한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세계 만민이 마땅히 섬겨야 할 임금으로 보았다.
·19절에서 빌라도는 명패에다 예수님의 죄목을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고 적었으며, 유다인들에게 이는 모욕이었다.
명패대로라면 자신들의 왕을 자신들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21-22절에서 유다인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다인의 왕”이라고 정정해줄 것을 요구하나 빌라도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아무튼 이 명패에 적힌 죄목은 빌라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부분도 공관복음서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20절에서 이 명패가 히브리어와 로마어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히브리어(당시에는 아라메아어)는 대중 언어로, 라틴어는 공무나 행정 언어로, 그리스어는 상거래 언어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명패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든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언어로 씌어진 십자가 명패는 예수님의 정체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선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구원의 보편성이 시사된 것이다.
19,23-24절 : 한편 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단 뒤에 그분 겉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한 몫씩 차지했다. 속옷도 가져왔는데 그런데 꿰맨 데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말하기를 "찢지 말고 누구의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그리하여 "내 겉옷을 자기네끼리 나누었고 내 의복을 두고 주사위를 던졌다" 고 한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군인들이 이런 짓을 한 것이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5 ; 마르 15,24 ; 루가 23,34)에 따르면 로마 군인들이 주사위를 던져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고 간략히 적고 있는데 비해서, 요한은 겉옷들과 속옷을 구별하면서 길게 적었다.
24절에서 "내 겉옷을 자기네끼리 나누었고 내 의복을 두고 주사위를 던졌다" 고 한 성서 말씀(시편 22,18)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9,25-27절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글로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던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에게는 "보시오, 그대의 어머님이시오" 하셨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공관복음서에는 세 여자(마태 27,56 : 막달라 여자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 마르 15,40 :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요한 복음서에는 네 여자(예수의 어머니와 이모, 글로파의 마리아,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십자가 곁에 서 있었고 아울러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愛弟子도 함께 서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와 어머니를 母子之間으로 맺어주신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만 나온다.
이 이야기를 인간적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길 어머니와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친구가 서로 보살피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서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 새로운 母子 관계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애제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마리아는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6. 돌아가시다 (19,28-30)
19,28-30절 : 그 뒤에 예수께서는 이미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서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 식초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식초를 해면에 듬뿍 적셔 히솝가지에 꽂아서 그분 입에 갖다대었다. 예수께서는 식초를 받은 다음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는 머리를 숙이며 영을 넘겨드다. :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공관복음서(마태27,46 ; 마르 15,34)는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마저 버림받고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큰 인물처럼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 의식적으로 맞으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비참한 최후를 맞는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신적 죽음으로 본 것이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목마르다" “이루어졌다”에도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님의 사명은 아버지 하느님과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는 일이요, 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영생을 베푸는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일을 완성하시려는 간절한 염원을 드러내시어 "목마르다"고 하셨다. 마침내 이 성업을 완성하셨다는 뜻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셨다.
7. 옆구리를 찔리시다 (19,31-37)
19,31-37절 : 그 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날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가 십자가에 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다리을 꺾어서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첫째 사람의 다리를 꺾고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다른 사람의 다리도 꺾었다. 예수께 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왔다.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은 참되다. 또한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상하지 않으리라" 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성서 말씀에는 "그들이 자기네가 찌른 이를 바라보리라" 고 하였다. :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내용은 요한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해방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이해한다.
예수님께서는 14절에서 보듯 해방절 식사에 쓰일 어린양들이 성전 안에서 도살되는 해방절 전날 정오 무렵에 사형선고를 받으신다.
그리고 다른 두 죄수와 달리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았다는 보도는 예수님의 해방절 어린양으로서 속죄 제물로 바쳐졌음을 의미한다(출애 12,46 참조).
·요한복음서 저자는 34절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보도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예수님께서 한 인간으로서 실제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관한 보도라 볼 수 있고, 다음으로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관한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은 세례성사를, 피는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또한 이 물과 피가 돌아가신 예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성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8. 안장되시다 (19,38-42)
19,38-42절 : 그 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 사실을 숨겨 오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했으므로 그는 가서 그분의 시신을 옮겼다. 또한 언젠가 밤에 처음으로 예수를 찾아왔었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대로 향료와 함께 염포로 휘감아 묶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고, 그 동산에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 날은 유대인들의 준비일인데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거기에 예수를 모셨다.:
·38절 내용은 공관복음서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보고이나,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서에서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을 예수의 제자로 소개하고, 또 다른 한 사람 니고데모를 등장시킨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장례 과정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왕적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즉 공관 복음서(마르 15,46 ; 마태 27,59 ; 루가 23,53)가 예수님의 시신이 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삼베로 싼 정도) 안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서는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제대로 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39절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양의 몰약이 사용되었고, 41절에서는 동산이 있는 새 무덤에 안장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유다의 왕들의 장례와 유사한 것으로, 곧 십자가 위에서 왕위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왕의 장례를 받으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맺는 말
예수님의 수난사화는 공관복음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하다. 단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저자가 전승된 자료들을 자신의 신학사상에 따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서 저자가 편집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18장 1-8절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마지못해 상황에 끌려다니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주도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당신을 붙잡기를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맞으러 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시고 자신이 그들이 찾는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당당히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상황을 주도하시는 모습은 심문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주도권을 쥔 채 심문과정을 이끌어 가신다. 특히 18장 28절-19장 1절의 빌라도의 심문과정에서는 심문받는 것이 예수님이 아니라 오히려 빌라도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독특한 신학사상인 神聖思想에 따라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신적 정체를 강조한다. 18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하느님의 자기 표현 방식(에고 에이미)으로 밝히자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이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임무를 완수하신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능동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 대신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공관복음서의 보도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다고 보도한다.
·예수님의 정체는 십자가에 붙은 명패와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다시 밝혀진다.
공관복음서는 죽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인간적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신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19장 31절과 36절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해방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여 해방절 전날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하였다(출애 12,21-28. 43-51).
이 양은 이스라엘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오게 하는 희생제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희생제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것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말씀드립니다).
요한복음서 18-19장은 예수님의 체포에서부터 장례까지를 다루는 예수님 수난사화이다.
공관복음서의 예수님 수난사화(마르 14,32-15,47 ; 마태 26,36-27,66 ; 루가 22,39-23,56)와 요한복음서의 예수님 수난사화를 비교하여 보면, 큰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적 묘사는 상당히 다르다.
여기서는 요한복음서의 수난사화와 공관복음서의 수난사화를 비교하여 공통점과 상이점을 밝히고, 요한복음서의 특수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붙잡히시다 ; 체포 (18,1-11)
18,1절 : 1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당신 제자들과 더불어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떠나가셨다. 거기에 동산이 있어서 예수와 제자들은 그리로 들어갔다. :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 중에 긴 고별사와 고별기도를 마치신 다음에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가셨다고 되어 있으나,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만찬을 드신 후에 올리브산 기슭에 있는 게쎄마니로 가셨다. 두 지명은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
마르코가 예수님께서 게쎄마니에서 바치신 기도(마르 14,32-42)를 자세히 묘사하는데 비해서 요한은 그 기도를 이 단락에서 생략하고 있다.
18,3절 :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또 대제관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하인들을 데리고 횃불과 등불과 무기를 든 채 그리로 왔다. :
공관복음(마태 26,47 ; 마르 14,43 ; 루가 22,47)에서는 유다가 이끄는 군중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에서는 군인들도 동행하였다고 한다.
이는 요한 복음서 저자의 세부 묘사에서 로마인들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참가하였다는 것은 신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모든 악의 세력이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간에 그리스도를 거슬러 공모했다는 것이다.
18,4-6절 : 예수께서 닥쳐올 모든 일을 아시고, 나서서 그들에게 "누구를 찾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나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넘겨 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나입니다" 하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뒤로 물러나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
·공관복음서(마태 26,48-49 ; 마르 14,44-45 ; 루가 22,48)에서는 배반의 표지인 유다의 입맞춤을 전하나, 요한복음서에서는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반면에 주님의 품위를 보이는 장면을 소개한다.
·또한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못해 상황에 끌려다니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주도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당신을 붙잡기를 기다리시지 않으신다. 유다인들을 맞으러 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시고 6절에서 “내가 그 사람이다”(ego eimi)라고 당당히 밝히신다.
18,8-9절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보내 주시오." 이것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셨던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는 순간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8절에서 제자들을 그냥 가게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마태 26,56 ; 마르 14,50)에 보도되어 있는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라는 내용은 삭제되어 있다.
18,10-11절 : 이 때 시몬 베드로가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대제관의 종을 후려쳐서 오른편 귓바퀴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칼을 칼집에 꽂으시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예수께서 체포되실 무렵 베드로가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한다.
공관복음서에도 이 사실을 전하기는 하나, 이 거친 행동을 한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과 칼에 맞은 사람이 말코스라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점이 다르다.
2. 안나스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 (18,12-27)
12-14절 : 군대와 천부장과 하인들이 예수를 붙잡아 묶었다. 그리고 먼저 안나스에게로 데려갔는데, 그는 그 해의 대제관인 가야파의 장인이었고 가야파는 유대인들에게 백성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이롭다고 충고했던 자였다 :
공관복음서(마태 26,57 ; 마르 14,53 ; 루가 22,54)에서는 예수님을 현직 대사제인 가야파의 저택으로 끌고 가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요한 복음은 먼저 가야파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끌려 가신 것으로 되어 있다.
15-16절 : 시몬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갔는데 다른 제자 하나도 따라갔다. 그는 대제관과 아는 사이여서 예수를 따라 대제관의 저택 안뜰로 함께 들어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깥 대문 곁에 서 있었는데, 대제관과 아는 사이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
공관복음서는 베드로가 대사제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경위를 언급하지 않는데 대하여, 요한복음서는 대사제를 잘 아는 다른 제자가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고 전한다.
17-18절 : 그러자 문지기 하녀가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하고 말하니 베드로가 "나는 아니오" 하였다. 날이 추웠으므로 종과 하인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쬐고 있었다.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25-27절 : 25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하고 말했다. 베드로가 "나는 아니오" 하고 부인했다. 26대제관의 종들 가운데 하나이며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친척되는 이가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하고 말했다. 27베드로는 다시 부인하는데 곧 닭이 울었다. :
·베드로의 배반 장면으로 공관복음서(마태 26,69-75 ; 마르 14,66-72 ; 루가 22,54-62)와는 아주 달리 세 번 모두 물음을 부정 의문문으로 표현하고(예시 참조),‘제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요한복음서는 짧게 “베드로가 또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라고 적고 있다.
※첫 번째 질문 : 마태 26,69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마르 14,66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루가 22,56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요한 18,17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두 번째 질문 : 마태 26,71 “이 사람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게 있었어요”
마르 14,69 “이 사람은 그들과 한 패입니다.”
루가 22,58 “당신도 그들과 한패구려.”
요한 18,25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세 번째 질문 : 마태 26,73 “…당신의 말씨가 당신을 분명히 드러내 주니까요.”
마르 14,70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루가 22,59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요한 18,26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공관복음서(마태 26,75 ; 마르 14,72 ; 루가 22,61)와는 달리 베드로의 회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것을 생략한 것은 오히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은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입니다”(13,38)란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수법으로 그의 비통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19-24절 : 대제관은 예수께 그분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해서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에 드러나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모든 유대인이 모여드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은밀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묻습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틀림없이 내가 한 말을 알고들 있습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하인 하나가 손찌검을 하며 "대제관님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께서 " 내가 틀린 말을 했다면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올바로 말했다면 왜 때리오?" 하셨다. 안나스는 그분을 묶은 채 가야파 대제관에게로 보냈다. :
·공관복음서(마태 26,63-64 ; 마르 60-62 ; 루가 22, 66-71)에서는 예수님께서 신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거스른 단죄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로 적법한지에 대한 질문은 싣지 않는다. 그 질문은 이미 공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제기되었기 때문이다(10,24-32).
·또한 공관복음서(마태 26,67-68 ; 마르 14,65 ; 루가 22, 63-65)에 나타나는 침뱉음과 손찌검 등의 수모를 겪으시는 모습을 전하지 않는다.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천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위엄을 잃지 않으시고 당당히 대응하시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23절 참조).
·22절에서 하인이 "대제관님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라고 한 말은 공관복음서(마태 26,67-68 ; 마르 14,65 ; 루가 22,63-65)와는 달리 예수를 조롱하고 야유하는 뜻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일종의 견책이다. 하인이 예수님의 권한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역할을 한다.
3. 빌라도의 심문 (18,28-18,38a)
18,28절 : …새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정을 타지 않고 해방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
이 구절은 전례적인 상식을 전하는 요한 특유의 감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공관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이다. 28절에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해서 몸이 부정하게 될까봐 총독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 거리감을 두고 있는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기 직전까지도 그들의 율법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29-32절 :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오?" 그들이 대답했다. "이자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넘겨드리지 않았겠지요." 빌라도는 "데려가서 당신네 법대로 심판하시오" 하니, 유대인들이 "우리는 아무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장차 어떤 모양으로 죽을지 암시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유대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이 구절은 요한복음서 고유의 기록이다. 공관복음서(마태 27,11-14 ; 마르 15,2-5 ; 루가 23,2-5)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여러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발하는데 요한복음서에는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오?"라는 빌라도의 말에 반박하는 말만 전한다(30절 참조). 이 말은 총독에게 예수님을 유대법을 기초로 해서 종교적인 죄를 범한 나자렛의 예언자로 고발하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18,37-38a :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께 "그렇다면 당신은 왕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바로 그 일을 위해 났으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습니다." 빌라도가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오?" :
공관복음서에는 언급이 없으나, 요한복음서 저자는 37절에서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에 이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바로 그 일을 위해 났으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과 일치되어 있다.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며(17,17)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4,6).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머물러야 한다(8,31-32).
4. 사형 선고 (18,38b-19,16a)
19,1절 : 1이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가서 채직질했다. :
공관복음서(마태 27,27-31 ; 마르 15,16-20)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님게 사형언도를 내린 다음에 비로소 로마 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채찍질을 가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혀 놀리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저자는 채직질과 놀림받으신 때를 빌라도의 사형언도 이전으로 옮겨 썻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이 더 믿음직스럽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이는 데 주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으로 조롱하는 보도를 빌라도의 사형 언도 전에 배치한다. 즉 빌라도는 유다인들의 분을 풀어주어 어떻게든 예수님께 사형 언도만은 내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다.
19,4-7절 : 빌라도가 다시 밖으로 나와 말했다. "보시오, 그를 당신들 앞에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이윽고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말했다. "보시오, 이 사람이오." 대제관들과 하인들이 그분을 보자 외쳤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당신들이 데려가서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나는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으니까요." :
빌라도는 밖으로 나와 유대인들을 대면하고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한다(4절). 빌라도는 이 대목에서 무려 세 번이나 그분의 무죄를 선언했다(18,38 ; 19,4. 6).
5절은 요한 복음서의 고유 구절로 예수님을 왕의 품위(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겉옷을 걸치고…)를 지니신 분으로 묘사하려 한다.
19,8-12절 : 빌라도는 이 말을 듣자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았다. 빌라도가 말했다. "말하지 않겠소? 나에게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나를 당신에게 넘겨 준 자에게 더 큰 죄가 있습니다." 이 때부터 빌라도는 그분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만일 그를 풀어 준다면 당신은 황제의 친구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황제를 배척하는 자입니다" 하고 외쳐댔다. :
요한복음서에서는 이 구절이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심문자들에게 답변하지 않는 대목이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거나 십자가형에 처할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한다(10절).
예수님의 답변(11절)에 압도된 빌라도는 “그분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라고 전한다. 빌라도의 그런 의향은 요한복음서 전체에서 다 다뤄졌다.
19,13-16절 : 그 말을 듣자 빌라도는 예수를 밖으로 데려가게 하고 '돌포장' 이라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돌포장' 은 히브리어로 '가빠타' 이다. 그 날은 해방절 준비일이며 때는 정오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 그러자 저들이 외쳤다. "없애시오, 없애 버리시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빌라도가 물었다. "당신네 왕을 내가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오?" 대제관들은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황제말고 왕이 없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넘겨 주었다. :
·요한복음서 저자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유대인들이 위협하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예수님을 밖으로 나오게 하고 자신은 돌포장이라는 재판석에 앉았다. 이것은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단죄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으로, 거기서 빌라도는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라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한다.
·요한복음서는 이 대목에서 전례적인 의미를 지닌 내용을 보고한다. 즉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언도를 내린 시각을 명기하여 “그 날은 해방절 준비일 때는 정오쯤이었다”(14절)고 한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선포된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 보고는 이어져 나오는 예수님의 죽음과 무덤에 안장되는 시간들과 연결된다(19,31. 42).
·유대 전통에 의하면 해방절 전날의 이 시간이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안식일의 규정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해방절 축제가 시작하려 하는 때이다. 해방절 전날의 한낮에 총독 빌라도는 공식석상에서 모든 유대인들 앞에서 "보시오, 당신네 왕이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방인이 유대인들을 조롱한 것이기도 하나 요한 특유의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이다.
·15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치는 소리에 빌라도는 "당신네 왕을 내가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오?" 하고 반문한다. 이는 유대인들을 굴욕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왕직이 계속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 어린양들을 도살하는 시각에 예수님께서는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처형되셨다.
5. 십자가에 달리시다 (19,16b- 27)
19,17-18절 :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짊어지고 ‘해골터’라는 데로 떠나가셨다. 히브리말로는 ‘골고타’라 한다. 그곳에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고, 다른 두 사람도 함께 예수 양쪽에 달았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2 ; 마르 15,21 ; 루가 23,26)에서는 예수님께서 매를 너무 많이 맞아 기진맥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키레네사람 시몬이 지고 갔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와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형장으로 가셨다고 전하고 있다.
제4 복음사가에게 있어 십자가는 주님께서 그 위에 높이 올려질 왕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는 그분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공관복음서(마태 27,34 ; 마르 15,23)에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기 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드시게 하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이를 전하지 않는다.
·공관복음서(마태 27,38 ; 마르 15,27 ; 루가 23,33)에 따르면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 한 사람씩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하는데,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좌우편에 각각 한 사람씩 십자가에 처형했다고만 할 뿐 두 사람의 신원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요한은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19,19-22절 : 빌라도는 죄목패도 적어서 십자가 위에 붙여 놓았는데, "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적혀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으므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 죄목패를 읽었다. 히브리어, 로마어,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대제관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의 왕' 이라 적지 말고 '자칭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적어 주시오" 하였는데, 빌라도는 "내가 적은 것은 이미 적은 것이오" 하고 대답했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7 ; 마르 15,25 ; 루가 23,38)에는 예수님의 죄목 명패에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나, 요한복음서에는 히브리어, 로마어, 그리스어로 "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길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죄목을 세 가지 언어로 적었다는 것은 요한복음서 저자의 그리스도론과 잘 어울린다. 요한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세계 만민이 마땅히 섬겨야 할 임금으로 보았다.
·19절에서 빌라도는 명패에다 예수님의 죄목을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고 적었으며, 유다인들에게 이는 모욕이었다.
명패대로라면 자신들의 왕을 자신들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21-22절에서 유다인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다인의 왕”이라고 정정해줄 것을 요구하나 빌라도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아무튼 이 명패에 적힌 죄목은 빌라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부분도 공관복음서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20절에서 이 명패가 히브리어와 로마어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히브리어(당시에는 아라메아어)는 대중 언어로, 라틴어는 공무나 행정 언어로, 그리스어는 상거래 언어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명패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든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언어로 씌어진 십자가 명패는 예수님의 정체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선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구원의 보편성이 시사된 것이다.
19,23-24절 : 한편 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단 뒤에 그분 겉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한 몫씩 차지했다. 속옷도 가져왔는데 그런데 꿰맨 데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말하기를 "찢지 말고 누구의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그리하여 "내 겉옷을 자기네끼리 나누었고 내 의복을 두고 주사위를 던졌다" 고 한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군인들이 이런 짓을 한 것이다. :
공관복음서(마태 27,35 ; 마르 15,24 ; 루가 23,34)에 따르면 로마 군인들이 주사위를 던져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고 간략히 적고 있는데 비해서, 요한은 겉옷들과 속옷을 구별하면서 길게 적었다.
24절에서 "내 겉옷을 자기네끼리 나누었고 내 의복을 두고 주사위를 던졌다" 고 한 성서 말씀(시편 22,18)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9,25-27절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글로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던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에게는 "보시오, 그대의 어머님이시오" 하셨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공관복음서에는 세 여자(마태 27,56 : 막달라 여자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 마르 15,40 :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요한 복음서에는 네 여자(예수의 어머니와 이모, 글로파의 마리아,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십자가 곁에 서 있었고 아울러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愛弟子도 함께 서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와 어머니를 母子之間으로 맺어주신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만 나온다.
이 이야기를 인간적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길 어머니와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친구가 서로 보살피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서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 새로운 母子 관계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애제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마리아는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6. 돌아가시다 (19,28-30)
19,28-30절 : 그 뒤에 예수께서는 이미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서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 식초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식초를 해면에 듬뿍 적셔 히솝가지에 꽂아서 그분 입에 갖다대었다. 예수께서는 식초를 받은 다음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는 머리를 숙이며 영을 넘겨드다. :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공관복음서(마태27,46 ; 마르 15,34)는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마저 버림받고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큰 인물처럼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 의식적으로 맞으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비참한 최후를 맞는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신적 죽음으로 본 것이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목마르다" “이루어졌다”에도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님의 사명은 아버지 하느님과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는 일이요, 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영생을 베푸는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일을 완성하시려는 간절한 염원을 드러내시어 "목마르다"고 하셨다. 마침내 이 성업을 완성하셨다는 뜻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셨다.
7. 옆구리를 찔리시다 (19,31-37)
19,31-37절 : 그 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날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가 십자가에 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다리을 꺾어서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첫째 사람의 다리를 꺾고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다른 사람의 다리도 꺾었다. 예수께 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왔다.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은 참되다. 또한 그는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상하지 않으리라" 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성서 말씀에는 "그들이 자기네가 찌른 이를 바라보리라" 고 하였다. :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내용은 요한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해방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이해한다.
예수님께서는 14절에서 보듯 해방절 식사에 쓰일 어린양들이 성전 안에서 도살되는 해방절 전날 정오 무렵에 사형선고를 받으신다.
그리고 다른 두 죄수와 달리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았다는 보도는 예수님의 해방절 어린양으로서 속죄 제물로 바쳐졌음을 의미한다(출애 12,46 참조).
·요한복음서 저자는 34절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보도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예수님께서 한 인간으로서 실제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관한 보도라 볼 수 있고, 다음으로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관한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은 세례성사를, 피는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또한 이 물과 피가 돌아가신 예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성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8. 안장되시다 (19,38-42)
19,38-42절 : 그 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 사실을 숨겨 오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했으므로 그는 가서 그분의 시신을 옮겼다. 또한 언젠가 밤에 처음으로 예수를 찾아왔었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대로 향료와 함께 염포로 휘감아 묶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고, 그 동산에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 날은 유대인들의 준비일인데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거기에 예수를 모셨다.:
·38절 내용은 공관복음서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보고이나,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서에서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을 예수의 제자로 소개하고, 또 다른 한 사람 니고데모를 등장시킨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장례 과정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왕적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즉 공관 복음서(마르 15,46 ; 마태 27,59 ; 루가 23,53)가 예수님의 시신이 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삼베로 싼 정도) 안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서는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제대로 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39절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양의 몰약이 사용되었고, 41절에서는 동산이 있는 새 무덤에 안장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유다의 왕들의 장례와 유사한 것으로, 곧 십자가 위에서 왕위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왕의 장례를 받으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맺는 말
예수님의 수난사화는 공관복음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하다. 단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저자가 전승된 자료들을 자신의 신학사상에 따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서 저자가 편집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18장 1-8절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마지못해 상황에 끌려다니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주도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당신을 붙잡기를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맞으러 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보시고 자신이 그들이 찾는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당당히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상황을 주도하시는 모습은 심문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주도권을 쥔 채 심문과정을 이끌어 가신다. 특히 18장 28절-19장 1절의 빌라도의 심문과정에서는 심문받는 것이 예수님이 아니라 오히려 빌라도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독특한 신학사상인 神聖思想에 따라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신적 정체를 강조한다. 18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하느님의 자기 표현 방식(에고 에이미)으로 밝히자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이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임무를 완수하신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능동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 대신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공관복음서의 보도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다고 보도한다.
·예수님의 정체는 십자가에 붙은 명패와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다시 밝혀진다.
공관복음서는 죽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인간적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서는 신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19장 31절과 36절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해방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여 해방절 전날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하였다(출애 12,21-28. 43-51).
이 양은 이스라엘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오게 하는 희생제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희생제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출처] 예수의 수난 이야기 비교 분석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작성자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