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서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 방법

2008. 12. 16. 오후 5: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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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 방법

흔히 요한 복음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요한 복음서만의 독특한 문학적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안에는 수많은 상징과 표상, 논리의 단절, 대화가 갑자기 독백으로 바뀌거나 여러 가지 역설·풍자 등 여러 문학적 특성들이 온통 뒤섞여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일단 이러한 특성들을 알고 있다면 요한 복음서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의 중요한 문학적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자주 표상을 이용하여 당신 자신과 당신의 메시지를 계시하십니다. 그런데 이 표상은 요한 복음서에서 실체가 되고 실체는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짜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고 혈육으로 맺어진 아버지는 그 표상입니다. 진짜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사물을 보게 해주는 빛은 그 표상입니다.
생명수는 성령이시고 몸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은 그 표상입니다.
진짜 빵은 그리스도이시고 식탁에 오르는 빵은 그 표상입니다.
표상과 실체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예는 요한 복음서에 꽤 많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이 표상을 글자 그대로만 알아듣고 그 실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몰이해의 상황은 예수께 당신의 가르침을 더 완전하게 전달할 기회를 드리게 됩니다(2,20; 3,4; 4,11; 6,35; 8,33; 11,11-12.24; 14,5.8).

2,20 : "이 성전을 짓는데 사십 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3,4 :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 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4,11 :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6,35 :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8,33 :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 데 선생님은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따졌다.
14,5 :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14,8 :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둘째, 예수님의 반대자들이 그분을 두고 경멸과 불신과 조롱의 뜻으로 한 발언들이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심오한 진실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풍자이지요(3,2; 4,12; 6,42; 7,28-29.35; 8,22; 9,24.40; 11,48-50; 12,19; 19,3.14).

3,2 :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 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4,12 : 이 우물물을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다.
6,42 :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터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 왔다니 말이 되는가?”
7,28-29 : 그 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 주셨다.”
7,35 :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자기를 찾아내지 못하리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말인가? 이방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에게 가서 이방인들을 가르칠 셈인가?
8,22 :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하고 중얼거렸다.
9,24 : 유다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놓고 “사실대로 말하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그 사람은 죄인이오”하고 말하였다.
9,40 :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하고 대들었다.
11,48-50 : 그대로 내버려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하며 의논하였다.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아둔합니까?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12,19 :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 이제는 다 틀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따라 가고 있지 않습니까?”하며 서로 걱정하였다.
19,3 : 예수 앞에 다가서서 “유다인의 왕 만세!”하고 소리치면서 그의 뺨을 때렸다.
19,14 :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 두시쯤이었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을 둘러보며“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하고 말하였다.

셋째, 요한 복음서 저자는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다시 반복하거나 요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이런 중복 묘사로 처음과 끝을 한데 묶습니다(1,19.28; 2,1.4; 4,54; 9,41; 10,40; 11,40; 19,14-16.36-37; 20,28; 21,13).

1,19 :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1,28 :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 베다니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2,1 :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4 :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
4,54 : 이것은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돌아오신 뒤에 보여주신 두 번째 기적이었다.
9,41 :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10,40 :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11,40 :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하시자
19,14-16 :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 두시쯤이었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을 둘러보며 “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하고 외쳤다. 빌라도가 “너희의 왕을 나더러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냐?”하고 말하자 대사제들은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19,36-37 : 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20,28 :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자
21,13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넷째, 대화가 독백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나 일정한 청중과 대화를 나누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는 도중에 청중은 슬며시 사라지고 예수님의 말씀이 결국에는 담화 형식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지요(3,16; 10,1-18; 14장; 17장).

3,16 :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10,1-18 : 양의 문과 착한 목자
14장 : 고별담화
17장 : 고별기도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사용하신 낱말(히브리말이든 그리스말이든)을 둘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로 풀어 전하는 ‘말놀이’(word-play)를 들 수 있습니다(3,3.8.13.17; 7,8; 13,1; 15,21; 19,30).

3,3 :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하고 말씀하셨다.
3,8 :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3,13 :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 간 일이 없다."
3,17 :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7,8 : "너희는 어서 올라가서 명절을 지내라. 아직 나의 때가 되지 않았으니 나는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13,1 :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15,21 : "그들은 너희가 내 제자라 해서 이렇게 대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고 있다."
19,30 :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

이같은 말놀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 당대의 팔레스티나 청중과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말씀을 서로 달리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의 신분 자체에 바탕을 둡니다.
예수께서는 전혀 다른 세상, 곧 위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세상, 곧 아래 세계의 말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요한 복음서의 독자들은 그분이 사용하신 ‘아래로부터의 말씀’ 안에서 ‘위로부터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주머니 속 성서박사 시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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