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하는 사람이셨다. 예수님은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 부모와 함께 기도하셨고, 매일 기도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의 전례적인 전통 예절에도 참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루 세 번씩 드리는 전례기도 관습에 만족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성서의 몇몇 군데에서 예수님께서 홀로 바치신 기도에 대한 언급은 우리의 관심을 특별히 끈다. 복음서에서는 여섯 군데에서 예수님이 밤을 새우거나 날이 밝도록 기도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저녁 기도를 한 밤중까지 계속하기도 하셨고, 해가 뜨기 훨씬 이전에 아침 기도를 시작하기도 하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의 모범을 남기셨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기도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마치 호흡을 하시듯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셨고, 심장의 고동처럼 끊임없이 기도를 바치셨다.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분이 기도하시는 모습은 한층 더 뚜렷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신다(루가 3,2l-24).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단식을 하시며 기도하셨고, 열 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루가 6, I2). 영광스런 변모 때(루가 9,28), 베드로가 예수님께 메시아 고백을 드리는 중대한 순간도 예수님이 혼자 기도하실 때였다(루가 9, 18-21).
그리고 체포되기 전에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물으시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마태 26,39-44 ; 마르14,35-39 ; 루22,41-44 ; 요한 17) 기도하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다. 이렇듯 기도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대한 순간들과 연결되었고, 당신이 받은 사명을 철저히 수행하고 인간 구원의 열매를 풍부히 맺기 위해 그분은 기도하셨으며 구원사업 전체를 기도화 하셨다(루가 6,12; 9,28;마태26,39-44;마르 14,35-39; 루가22,41-44; 요한 17). 그러므로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의 손길에 이끌려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사도들을 위하여(요한 17, 9),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셨다(요한 17, 20).그리고 여러 제자가 주변에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혼자 기도하셨다. (루가 9,18). 예수님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의 친밀함과 가까움을 깨달으셨다. 혼자 기도하심으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루가 11, 1)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는 동안 중요한 일을 체험하기도 하셨다. 예를 들면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계셨을 때 하늘이 홀연히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오는 것을 체험하셨고(루가 3, 2l), 거룩한 변모 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고(루가 9, 8) 성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과 참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례를 비롯한 일상적인 기도 뿐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홀로 바친 기도는 당신 생애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기도하셨는지, 예수님도 기도가 필요하셨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성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친교를 누리셨고 기도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셨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 따르면 기도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에게 기도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할 뿐 아니라 이 사명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완수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한 것은 바로 기도에서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 사명의 일부로서 기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의미에서의 명상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분은 장시간 기도한 후 항상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한결 같으시고 고요하시며 자제하시고 어떤 일에도 방해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님도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변 인물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감하셨다. 아니 어쩌면 더 민감하셨을 수도 있다. 예수님도 공포심과 성질이 있는 분이시다. 인간의 인내심과 한계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마태 16, 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짜증을 내시고, 루가 9, 41에서 애를 태우신다. 마르 8,17-18 에서 조급해 하시고, 루가 19,41-42에서 우신다. 요한 12, 37에서는 걱정에 파묻혀 계신다. 마르 14,34에서 낙심하시고, 특히 게쎄마니 기도(마태 26,36-46)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예수님이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힘을 기도에서 발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게쎄마니 사건은 히브리서 5,7-8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사활을 건 투쟁이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분 역시 장애에 부딪쳤다고 느끼실 때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세계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끼실 때,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가 5,16).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그분은 다시 바로 예수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실 수 있는 힘, 즉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 주실 수 있는 힘을 기도 안에서 발견하셨던 것이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얼굴빛이 좋았던 것으로 적고 있는 때는 그분이 기적을 행하실 때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 볼 때였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그분이 기도 안에서 끊임없이 체험했던 아버지에 대해 그분이 말씀하셨을 때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요한 8,28-30).
예수님이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보여주신 당신의 온화하심, 기쁨, 사랑, 확신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신의 사명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분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하는 사람이셨다. 예수님은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 부모와 함께 기도하셨고, 매일 기도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의 전례적인 전통 예절에도 참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루 세 번씩 드리는 전례기도 관습에 만족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성서의 몇몇 군데에서 예수님께서 홀로 바치신 기도에 대한 언급은 우리의 관심을 특별히 끈다. 복음서에서는 여섯 군데에서 예수님이 밤을 새우거나 날이 밝도록 기도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저녁 기도를 한 밤중까지 계속하기도 하셨고, 해가 뜨기 훨씬 이전에 아침 기도를 시작하기도 하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의 모범을 남기셨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기도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마치 호흡을 하시듯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셨고, 심장의 고동처럼 끊임없이 기도를 바치셨다.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분이 기도하시는 모습은 한층 더 뚜렷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신다(루가 3,2l-24).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단식을 하시며 기도하셨고, 열 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루가 6, I2). 영광스런 변모 때(루가 9,28), 베드로가 예수님께 메시아 고백을 드리는 중대한 순간도 예수님이 혼자 기도하실 때였다(루가 9, 18-21).
그리고 체포되기 전에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물으시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마태 26,39-44 ; 마르14,35-39 ; 루22,41-44 ; 요한 17) 기도하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다. 이렇듯 기도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대한 순간들과 연결되었고, 당신이 받은 사명을 철저히 수행하고 인간 구원의 열매를 풍부히 맺기 위해 그분은 기도하셨으며 구원사업 전체를 기도화 하셨다(루가 6,12; 9,28;마태26,39-44;마르 14,35-39; 루가22,41-44; 요한 17). 그러므로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의 손길에 이끌려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사도들을 위하여(요한 17, 9),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셨다(요한 17, 20).그리고 여러 제자가 주변에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혼자 기도하셨다. (루가 9,18). 예수님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의 친밀함과 가까움을 깨달으셨다. 혼자 기도하심으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루가 11, 1)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는 동안 중요한 일을 체험하기도 하셨다. 예를 들면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계셨을 때 하늘이 홀연히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오는 것을 체험하셨고(루가 3, 2l), 거룩한 변모 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고(루가 9, 8) 성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과 참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례를 비롯한 일상적인 기도 뿐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홀로 바친 기도는 당신 생애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기도하셨는지, 예수님도 기도가 필요하셨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성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친교를 누리셨고 기도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셨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 따르면 기도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에게 기도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할 뿐 아니라 이 사명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완수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한 것은 바로 기도에서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 사명의 일부로서 기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의미에서의 명상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분은 장시간 기도한 후 항상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한결 같으시고 고요하시며 자제하시고 어떤 일에도 방해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님도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변 인물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감하셨다. 아니 어쩌면 더 민감하셨을 수도 있다. 예수님도 공포심과 성질이 있는 분이시다. 인간의 인내심과 한계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마태 16, 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짜증을 내시고, 루가 9, 41에서 애를 태우신다. 마르 8,17-18 에서 조급해 하시고, 루가 19,41-42에서 우신다. 요한 12, 37에서는 걱정에 파묻혀 계신다. 마르 14,34에서 낙심하시고, 특히 게쎄마니 기도(마태 26,36-46)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예수님이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힘을 기도에서 발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게쎄마니 사건은 히브리서 5,7-8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사활을 건 투쟁이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분 역시 장애에 부딪쳤다고 느끼실 때가 있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세계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끼실 때,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가 5,16).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그분은 다시 바로 예수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실 수 있는 힘, 즉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 주실 수 있는 힘을 기도 안에서 발견하셨던 것이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얼굴빛이 좋았던 것으로 적고 있는 때는 그분이 기적을 행하실 때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 볼 때였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그분이 기도 안에서 끊임없이 체험했던 아버지에 대해 그분이 말씀하셨을 때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요한 8,28-30).
예수님이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보여주신 당신의 온화하심, 기쁨, 사랑, 확신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신의 사명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분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