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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3. 오후 12:12:43

글자

1801년 2월 11일 (음력?) 양력 1801년 3월 24일

신유(辛酉)년 신묘(辛卯)월 정사(丁巳)일

罪人 丁若鏞, 나이 40세

추국청에 다시 심문한 기록을 보고합니다.

"너는 이전 진술에서 명백히 벗어나려 했던 흔적이 없었고,

도리어 온 집안이 깊이 빠진 증거가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사악한 천주학의 소굴에 대해서는 끝내 감추고 잡아뗐으며,

편지에 대해서는 둘러대려고만 했다.

그렇다면 임금님의 은혜에 감격해 바친다는 것은 무슨 일이며,

사악한 천주학을 배척하고 끊었다는 것은 무슨 일이냐?

엄히 매질하며 자세히 캐어물을 것이니 전후의 범죄 사실들을 낱낱이 바르게 말하라."

하고 캐물었습니다. 이에 정약용이 진술하기를

"제가 재작년(1799, 정조 23) 형조에서 근무할 때에

"척사방략(斥邪方略)을 지어 임금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사람들의 비방을 받아 직책에서 교체되었기 때문에 바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지경을 당하고 보니 사악한 천주학을 하는 사람은 제게는 원수입니다.

지금 만약 제게 10일의 기한을 주시고 영리한 포교를 데리고 나가게 해 주신다면

이른바 사악한 천주학의 소굴들을 마땅히 체포하여 바치겠습니다."

했다. 심문하기를

"네가 비록 이 지경을 당했으나, 일찍이 하대부(下大夫)를 지낸 사람이니

(下大夫 - 관품 중 하급 대부를 말하는데, 정3품 통훈대부에서부터

              종4품 조봉대부까지이다.)

보통 죄수와는 비교할 수 없다. 만약 소굴과 교주를 바르게 말하지 않는다면

너의 형 정약종(丁若鍾)은 결국 소굴의 우두머리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찌 바르게 말하지 않느냐?"

하니 진술하기를,

"달리 아는 바는 없고, 오직 황사영(黃嗣永)만이 이 사악한 천주학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사영은 저의 조카사위인 까닭에 심정상 차마 할 수 없어

 바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김종교(金宗敎)도 또한 소굴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런데 신해년(1791, 정조 15)에 요행이 도망쳤습니다. 이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잘 살펴 처리해 주십시오." 했다. 한 차례 매질하면서 심문했는데, 30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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