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다묵(多黙 예수 12제자 중의 하나인 토마(Thomas)의 중국식 이름)
마르티네스(Martines, 瑪爾定) 라하는 황밍샤(黃明沙)였다
李瑪爾定中培者 少論一名也(士夫妾子孫謂之一名) 居京畿道驪州 勇力絶倫 志氣豪快
이중배 마르띠노는 (瑪爾定 ?~1801 순교자) 소론의 일명으로, <一名 : 사대부 첩의 자손을 말함> 경기도 여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용맹과 힘이 월등히 뛰어나고 의지와 기개가 호쾌하였습니다.
김건순金健淳 (요사팟 若撤法 1775~1801 순교자)
원요한 (元若望) 元景道 1773~1801 순교자)
葛隆巴 강완숙(姜完淑) 갈륭파(葛隆巴), 강가녀인(姜哥女人), 강거능파(姜巨能巴), 강녀(姜女), 강완숙(姜完淑), 강파(姜婆), 강파완숙(姜婆完淑), 완숙(完淑)
故敎友們 雖爲戒嚴 不甚驚 十九日聖獻堂占禮日曉頭 崔多黙之從弟崔伯多祿 在臨街藥 閣子裡 與數人念公經
그러므로 교우들은 비록 경계는 하였지마는 그다지 놀라거나 두려움이 심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19일 성헌당첨례일 (주의 봉헌 축일) 새벽에 최토마스의 종제 최베드로가 (崔必悌 伯多祿 1769~1801 순교자) 한길 가에 있는 약방 안쪽 방에서 몇몇 교우들과 함께 경문을 외고 있었습니다.
窓外適有投錢禁亂一輩 (投錢雜技名無賴輩以此賭錢故法司常有禁令) 聞窓裡 心聲 以爲投錢拍節聲 排窓躍入 不見投錢 搜各人身邊 獲一占禮單
창문 밖에 마침 투전을 단속하고 다니는 한 관리가 있다가, 창문 안에서 가슴 치는 소리를 듣고 투전의 장단 치는 소리로 알고 창문을 열고 뛰어들었는데 투전이 보이지 않자 한 사람 한 사람 몸을 수색해서 첨례단 (교회 축일표) 한 장을 찾아냈습니다.
而伊等不識字 不知爲何物 遂持去以示識字之吏 知係聖敎文字 復回來捉人 時天已大明 他敎友已盡走散 惟伯多祿 及吳斯德望兩人 被捕入官 與多黙同囚
그들은 글자를 알지 못해서 무엇인지 모르므로, 글을 아는 관리에게로 가지고 가서 보였습니다. 그것이 성교에 있는 글임을 안 그들은 교우들을 잡으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때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았는데, 다른 교우들은 벌써 다 달아나 흩어졌고, 오직 베드로와 오스테파노 두 사람만 남아 있다가 잡혀서 관가로 들어가 토마스와 같이 수감되었습니다.
최베드로崔伯多祿 (崔必悌 伯多祿 1769~1801 순교자)
吳斯德望 오사덕망
奧斯定 명도회장 정아우구스티노는 (정약종 1758~1801 순교자)
방제 각사물략(方濟各沙勿略)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ancisco Xavier)
洪沙勿 敎萬 權哲身之母舅
李保祿
池撤巴 지사바 (지황 ?~1795 순교자 세례명:사바 일명:池洪)
五月之難 首倡 避之計 獨自周旋 藏神父于本家 盡力防護 以致捕差到門空還 難後神父定居其家 六年之內 敎中要務 咸厥贊助 神父寵任甚隆 無人可擬
5월의 박해 때 그녀는 피신할 계획을 가장 먼저 주장하고 혼자서 주선하여 신부를 자기 집에 숨겨 두고 힘을 다해 보호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포졸들이 문 앞까지 왔다가도 어긋나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박해 이후에는 신부는 아주 그녀의 집을 거처로 삼았고, 골롬바는 6년 동안이나 성교의 모든 중요한 일을 도와 이끌었으므로 신부의 사랑과 신임이 대단히 커서 아무도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葛隆巴內奉神父 起居服食 咸稱其宜 外理敎務 經營酬應 未嘗少懈 多聚童女 訓誨成就 分行各家 勸人信主 自己亦周巡勸化 夜以繼晝 鮮有安眠之時
골롬바는 안으로 신부의 거처와 의복, 음식을 잘 받들었고, 밖으로 성교의 사무를 처리하여 교회 살림과 교회 내의 연락을 주고받음에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처녀들을 많이 모아 가르치고 그 일이 끝나면 집집마다 방문하여 사람들에게 천주님을 믿도록 권유하게 하고, 자기 자신도 역시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남에게 권유하고 감화시켜, 스스로는 편안하게 잠 잘 때가 드물었습니다.
而道理貫通 言辭辨給 化人 多 處事剛斷有威 人皆畏憚 被捕到官 官問神父 跡 周紐六次 不動聲氣 兩旁惡役曰 此神耳 非人也
이치에 통달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설명해 주어 누구보다도 감화시킨 사람이 가장 많았으며 일처리가 과단성 있고 위엄도 있어, 사람들이 다 조심스러워 하였습니다. 체포되어 관청에 이르니 관리가 신부의 종적을 캐어물으며 주리를 여섯 번이나 틀었으나 음성과 기색이 조금도 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양쪽에 늘어선 형리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答曰 我亦奉主敎之人 今聞朝廷嚴禁 多殺不辜 生旣無益 故自來求死 擁入官前 知係神父 遂下獄拘囚 只鎖兩足 不可刑訊
신부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 역시 천주님의 가르치심을 받드는 사람으로 지금 소문을 들으니 조정에서 성교를 엄중히 금하여 죄없는 사람을 많이 죽인다고 하여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기에 스스로 와서 죽기를 구하는 것이오."하였습니다. 나졸들이 신부를 붙들어 관리 앞으로 나아가니 그가 신부임을 알고 마침내 옥에 가두었는데 다만 양쪽 발에 족쇄만을 하고 형벌과 문초는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在獄之時 文字問答甚多云 而皆不得見 但聞外敎傳言 自首者 自稱西洋人 先此六人之死 論以逆律
신부가 옥에 갇혀 있을 때 글자로 문답한 것이 매우 많다고들 하는데 하나도 얻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외교인이 전하는 말을 듣건대 자수한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서양 사람이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서 여섯 사람의 죽음은 역률로 처단된 것입니다.
神父自現之後 都民相傳 西士在獄 辨明天主敎人之非逆賊 又傳 西士不肯就死 盡說自己所欲言者 然後方請受死
신부가 자수한 후 장안 사람들이 서로들 전하여 말하기를 "서양사람이 옥중에서 천주교 교인은 역적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서양 사람이 그냥 죽음을 당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하고 그런 다음에는 죽음을 청하겠다"고 하였습니다.
此等傳說以不虛矣 四月望後 朝廷命御營大將 行軍門梟示 (死罪次刑) 大將稱病 三日不出 三日後 遞罷病官 出新官行刑
이러한 소문은 허황한 말이 아닌 듯합니다. 4월 보름 이후에 조정에서는 어영대장에게 신부를 군문에 효수하도록 (사형에 처한 다음에 하는 형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영대장이 병이 났다 핑계하고 사흘을 출근하지 않아 사흘 뒤에는 병났다는 대장을 ? 1ff8 캡茸臼눗?, 새 대장이 임명되어 형을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將出獄 如加刑問一次 (杖膝, 三十度) 過市曹 遍願觀者 稱渴索酒 軍卒捧上一盃 飮之盡 遂赴城南十里演武場 (江上沙場地名露梁)
신부를 옥에서 끌어내어 처음으로 형벌을 가해 문초하고 나서 <무릎을 서른 번 매질함> 떠메고 저자 거리에 모인 군중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신부는 길 좌우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을 두루 돌아보고 목이 마르니 술을 달라고 하여 군졸들이 술 한 잔을 올렸습니다. 술을 다 마시고 나자 마침내 성 남쪽 10리 밖에 있는 연무장으로 갔습니다.<그 강 백사장의 지명을 노량이라고 합니다>
貫矢於耳 軍卒授罪案使之看 所書頗多 而從容看畢 引頸受刑 時四月十九 天主聖三占禮日申時也 斬訖 忽然大風驟起 黑雲漫空 雷電轟燁 都民莫不驚惶
귀에 화살을 꿰고 군졸이 죄목을 적은 조서를 주어 읽게 하였습니다. 조서는 꽤 길었는데 신부는 조용히 보기를 마치고 목을 늘여 형을 받았습니다. 이때가 바로 4월 19일 성삼첨례일 (삼위일체대축일) 신시(申時, 오후 3~5시)였습니다. 목을 베자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닥치고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우레와 번개가 큰 소리를 내며 번쩍번쩍하여 장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황겁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時一敎友在三百里外行路 一敎友在四百里外避難 見風雷異常 意者此日必有怪事 牢記日字 後聞神父致命 正此日此時也
이 때 한 교우는 (황심을 말하는 듯) 3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길을 가고 있었고, 또 한 교우는 (황사영을 말하는 듯) 4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박해를 피해 길을 가고 있었는데, 바람과 천둥이 이상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날 반드시 무슨 범상치 않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날짜를 기억해 두었습니다. 나중에 신부가 순교했다는 말을 듣고 따져 보니 바로 그 날 그 시간이었습니다.
懸首五日 晝夜防守 不許人近傍 隨後大將命 之 依舊嚴守 敎友潛識葬處 以圖日後遷 有惡官奏曰 此人不當 請命暴露
머리를 닷새 동안 거리에 매달고 밤낮으로 굳게 지켜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뒤에 대장이 명하여 흙으로 덮어는 놓았으나 엄중히 지키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우들이 몰래 묻은 곳을 알아두었다가 후일에 옮겨다 장사지내려고 하였으나 못된 관리가 "이 사람은 매장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청컨대 파내서 드러내 놓아 이슬에 젖게 하시기 바랍니다."하고 상소하였습니다.
大妃允之 先時命 之大將諫曰 旣已 之 何必乃爾 事得已 而守墓軍卒 厭其苦守 潛移別處 敎友們暗地遍尋 至今不得
대왕대비가 이를 허락하였는데 앞에 묻으라고 명했던 대장이 간하기를 "이미 묻어 버린 것을 그렇게까지 할 것이야 있습니까"하여 별일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지키는 군졸들이 힘들게 지키는 것을 꺼려하여 몰래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몰래 묻은 곳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하였습니다.
行刑時 宣言曰 此濟州人也 盖不奏聞中朝 所以掩跡也
형을 집행할 때 형량을 선고하는 관리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제주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 중국 조정에 보고하여 그 처리 방안을 문의하지 않은 것을 엄폐하기 위한 이유에서입니다. p85-83
神父致命後 窘難大勢稍減 而譏捕未嘗斷絶 獄中拘囚者尙多 或言當斬者 復有九人 傳聞之言 未知虛實 本神父到東之初 便有告 者 已爲先王所知
신부가 순교한 후 박해의 큰 기세는 약간 수그러지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찰과 체포는 일찍이 끊인 일이 없고 옥에 갇힌 사람은 아직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참형을 당할 사람이 또 아홉 사람이 더 있다고 하였습니다마는 전해 들은 말이라 사실인지 아닌지를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신부가 우리나라에 온 직후에 곧 고발한 자가 있어서 이미 선왕이 알게 되었습니다.
故七年之中 無時不小心畏約 未敢廣行聖事 沾恩者本不多 而太半是女友 外鄕敎友 乃都下常人 熱心者不少 受恩者絶稀
그러므로 7년 동안 마음으로 조심하고 염려하여 몸을 움츠리지 아니한 때가 없었고 감히 성사를 널리 행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성사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본래 많지 않고 그 태반이 여자 교우입니다. 지방의 교우와 서울의 상인 중에 열성적인 이가 적지 않았으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此輩皆忍受多苦 積年殷望 時勢不便 故雖私室之中 不敢開口說神父二字 不意反爲惡人所害 承顔於懸首之後 十載苦誠 一朝歸虛 神形至 亡之境
그들은 모두 많은 괴로움을 받았지만 참고 견디며 여러 해를 두고 큰 기대를 해 왔는데 세상 형편이 편안하지 않아서 비록 사사로운 집 방안에서도 감히 입을 열어 "신부"라는 두 글자를 말하지 못하다가 뜻밖에 성교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하여 목을 거리에 매단 다음에야 신부의 얼굴을 뵈니 10년 동안 애쓴 정성이 하루아침에 헛일로 돌아가 버려 영혼과 육체가 다 함께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生死無可依之所 莫不喪情失志 不知所爲 罪人等雖安慰之曰 父師之來 專爲救人 豈不欲博施廣濟 奈緣阻碍之多端 忍愛莫發 今旣致命 在天主保之力 必大勝於在世時
생사가 의탁할 곳이 없게 되어 모두 상심하여 삶의 의미를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저희들이 그들을 보고 위로하여 말하기를 "신부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오로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찌 널리 베풀어 구제하려고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여러 가지 장애가 되는 일이 많아서 사랑을 참고 드러내지 못하셨는데 이제 이미 순교하여 하늘에 계시어 주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힘이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훨씬 더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