伏以臣受國厚恩。與天無極。臣豈能盡述哉。敎誨若嚴師。而變化其氣質。鞠育若慈父。而保全其性命。或殿下之所默運。而臣尙不知。或殿下之所已忘。而臣獨如結。靜言思之。刻骨鏤髓。欲言則於邑而不能聲。欲書則掩抑而不能文。臣顧何人。受恩如此。臣本草野孤寒。非有父兄之蔭。師友之力。而獨賴我殿下作成化育之功。幼而至壯。賤而至貴。六年於泮
宮之試。三年於內閣之課。玷學士之選。躐大夫之資。凡其文識之有寸進。爵祿之有沾及。無一不出於我殿下至敎之所陶鎔。至意之所彌綸。臣雖木石。忍負是恩洪。惟我殿下躬洙泗洛閩之學。得堯舜禹湯之位。承千聖而集大成。黜百家而大一統。囿群物於淵琴點瑟之間。斯其爲聖人之世也。臣旣幸而生於聖人之世。其亦幸而游於聖人之門。雖不能入宮墻一步。窺宗廟百官之盛。若其薰炙涵沐。亦旣深矣。宜其規行榘步。天飛淵躍。庶得令聞令名。以不負雲雨造化之天。而只緣臣不肖無狀。十餘年來。所得梁楚。乃在於淫邪怪誕不經之說。汨沒乎膠漆之盆。宛轉乎刀俎之上。負殿下曲遂之意。勞殿下不屑之誨。卽毋論其情實之如何。而其罪已不勝誅殛矣。冉求孔子之寵徒也。然一有罪過。孔子曰非吾徒也。小子鳴鼓而攻之。蓋以聖人之門。最嚴於道術趣向之際。而不能以私愛恕之也。今臣罪過。非特冉具。而乃我殿下旣一赦之。又一誨之。不忍終棄。又重收之。知其夷矣。思所以夏之。知其獸矣。思所以人之。知其死矣。思
所以生之。眷顧拯救。積費聲力。庇覆容忍。以冀改悔。非我父母。孰將如是。臣宜刳肝出血。卽地溘然。以之明此恩於一世。暴此心於萬世。而蒙冒不潔。淟涊偸生。跼高蹐厚。尙復何言。臣於所謂西洋邪說。嘗觀其書矣。然觀書豈遽罪哉。辭不迫切。謂之觀書。苟唯觀書而止。則豈遽罪哉。蓋嘗心欣然悅慕矣。蓋嘗擧而夸諸人矣。其於本源心術之地。蓋嘗如膏漬水染。根據枝縈而不自覺矣。夫旣一番如是。此卽孟門之墨者也。程門之禪派也。大質虧矣。本領誤矣。其沈惑之淺深。遷改之遲速。有不足論。雖然曾子曰吾得正而斃焉。斯已矣。臣亦欲得正而斃矣。可不一言以自暴乎。臣之得見是書。蓋在弱冠之初。而此時原有一種風氣。有能說天文曆象之家。農政水利之器。測量推驗之法者。流俗相傳。指爲該洽。臣方幼眇。竊獨慕此。然其性力躁率。凡屬艱深巧密之文。本不能細心究索。故其糟粕影響。卒無所得。而乃反繳繞於死生之說。傾嚮於克伐之誡。惶惑於離奇辯博之文。認作儒門別派。看作文垣奇賞。與人譚論。無所忌諱。見人詆排。疑其寡
陋。原其本意。蓋欲以博異聞也。然臣自來志業。只在榮達。自登上庠。所專精壹意者。卽功令之學。而其赴月課旬試。有如鷙發。此固非這般氣味。況自釋褐以後。尤何能游心方外哉。歲久年深。遂不復往來心頭。而漠然若前塵影事。奈其標榜一立。涇渭無別。斷斷至今掉脫不得。慕虛名而受實禍。臣之謂矣。其書中傷倫悖理之說。固不可更僕數之。亦不敢汚穢天聽。而至於廢祭之說。臣之舊所是書。亦所未見。葛伯復生。豺獺亦驚。苟有一分人理之未及澌滅者。豈不崩心顫骨。斥絶亂萌。而洪流襄陵。烈火燎原。辛亥之變。不幸近出。臣自玆以來。憤恚傷痛。誓心盟志。疾之如私仇。討之如兇逆。而良心旣復。見理自明。前日之所嘗欣慕者。反而思之。無一非荒虛怪妄。其所謂死生之說。佛氏之設怖令也。其所謂克伐之誡。道家之伏慾火也。其離奇辯博之文。卽不過稗家小品之支流餘裔也。外此則逆天慢神。罪不容誅。故中國文人如錢謙益,譚元春,顧炎武,張廷玉之徒。早已燭其虛僞。劈其頭腦。而蒙然不知。枉受迷惑。莫非幼年孤陋寡聞之致。撫
躬慚忿。何嗟及矣。此心明白。可質神明。臣豈敢一毫欺隱哉。臣之宜被威罰。實在於八九年前。而幸荷殿下之庇廕。得逭有司之刑章。有罪未勘。如任在背。乃於再昨年七月。特蒙聖旨。出補湖郵。尙云晚矣。何其輕也。臣手捧恩言。揮涕出城。步步思念。字字慈覆。此生此世。云何報答。臣之得謗。方迫坑塹。而聖旨却論文章。臣之負罪。難責緦功。而聖旨至及筆畫。何惜於臣而恩念至此。至於臣兄之橫被人言。寔緣對策。而前旣以十行絲綸。昭釋洞劈。又於責臣之敎。特云無罪渠兄。是殿下一言而活臣之兄弟也。臣與臣兄。握手號泣。不知所以圖報也。臣到湖郵。每蚤夜淸明。必點檢身心。改革雖已久矣。而猶懼渣滓之未淨。悔悟雖已眞矣。而猶懼稊稗之已熟。務養善端。冀副我殿下陶鑄生成之至仁大德。而況其所莅地方。卽邪說詿誤之鄕。愚氓之迷不知反者。寔繁其徒。故臣就議按道之臣。講搜捕之方。而發其隱匿。諭禍福之義。而曉其疑怯。設斥邪之禊。而勸其祭祀。執守邪之女。而成其婚嫁。復求一鄕之善士。而相與質疑
送難。以講聖賢之書。旣以思之。臣之所爲。殆亦有進。自幸自欣。伊誰之賜。臣自謂生平大恩。無踰於金井一行。而曾未改歲。已蒙恩宥。生踰江漢。穩處城闉。穀無餘願。死無餘恨。臣意塡溝壑。不復見天日。不意前冬。忽蒙恩召。戴帽束帶。重入脩鬥편001。得處密邇之地。俾與考校之役。金華燈燭。恍如夢寐。內廚珍錯。爛其輝光。遂得以滓穢之身。進對於淸嚴之席。威顏開霽。玉音溫諄。逖違之餘。哀情條感。有淚如雨。不知所云。至於騎曹之特除。銀臺之復入。此雖出於我殿下至恩洪造。在臣身實恐非好消息也。以殿下曲保之念。何爲而有此也。揆以分義。宜不敢揚揚出肅。而臣顧自念。亦安敢爲人所爲乎。有除輒膺。自同平人。而夷考其情。乃所以不自同平人也。人或謂臣不罹人言。凡有除命。宜莫逡巡。臣竊思之。豈無人言。特殿下庇覆之耳。明知其有。而幸其不露。臣實恥之。宜卽陳疏。以自控引。而校書管試。未及周旋。旋已遞職。只自愧懼。不意今日。又奉除旨。區區賤忱。始可悉暴。臣伏念天道忌盈。人情惜屈。今臣沈塞積久。則人將曰某也實未
嘗爲邪。而枳廢至此。亦可愍也。此在臣福也慶也。生之塗也。今臣騰翥依舊。則人必曰某也舊嘗爲邪。而揚歷如彼。亦可惡也。此在臣禍也殃也。死之術也。今臣一擧顏於朝行之間。而公卿大夫相與指點曰。彼來者爲誰。彼固嘗溺於邪者耶。容儀一接。心想驀起。臣將何面之可顯乎。斯其不若匿影遁跡於山巖之間。使世之人。日相忘而不知也。故高官美爵。非臣所望。豐貲厚祿。非臣所羨。唯此一縷未絶之前。得洗此天下所無之惡名醜目。是臣之至願至懇也。蓋此邪學。卽幾千萬里外異域殊俗之法也。故其一毛一髮。無非罪逆。而駭怪驚怖。截然若鳥獸之在人群。不能一日而苟焉相處。斷非通籍從宦之家。循俗交游之人。所能竝行而弗悖者也。故卑微之流。或行之無事。而若係衿紳之族。表表可稱者。其禍立至。豈能支旬日之命哉。然其見於行事者。雖不至觸憲干紀。若其本源心術之病。終不能釋然開豁。則雖得苟免於有司一時之刑。誠有主斯文之權者。將斥之爲異端亂賊。而不可終逭於天下萬世之誅也。陸九淵,陳獻章固未嘗燒
指焚頂。而禪學之目。其可辭乎。若臣者當初染跡。有同兒戲。而知識稍長。便爲敵讎。知之旣明。斥之愈嚴。悟之旣晚。嫉之愈甚。剔心七竅。實無餘翳。搜腸九曲。實無遺瀋。而上而受疑於君父。下而遭謫於當世。立身一敗。萬事瓦裂。生亦何爲。死將安歸。且臣受恩君父。亦已甚矣。自投罟擭。號呼悲泣。則援手拯拔。置之衽席。如經疾疫。久漸蘇醒。則又一變怪。如石壓笋。此殆臣命途崎險。福分涼薄。而雖以我殿下造命之權。亦無如之何也。今殿下憐臣而不棄。復此甄收。而每一事端。輒一追咎。則夢想不及。汚衊先至。纍然澌頓。坐受唆哄。前旣有驗。後豈或殊。審如是也。臣寧一直錮廢。無使時詘時信。徒令恩數太瀆而罪負益重也。臣竊伏念聖賢有作。則災害異端。必與竝起。使之救患拯厄。用茂厥功德。堯之水湯之旱。孟子之楊墨。朱子之蘇陸。皆其驗也。今我殿下闡道學之原。崇敎化之本。開示正路。則臨九軌而御六轡。丕變頹風。則登盟壇而執牛耳。彼其邪說之有作。殆將以彰殿下闢廓之功耳。太陽中天。魑魅螮蝀。固無足爲國家之
憂。而其於臣之一身。事無大於是者。臣安得不焦唇頓足。以冀其及時撲滅。無俾易種于斯世乎。雖然朱子之戒路德章。亟勉其不怨天不尤人。而向裏消磨。救得晚節。臣雖不敏。請事斯語。爲今之計。唯有潛心經傅편002。以圖桑楡之報。遠跡榮途。以效自靖之義。而至若抗顏擡頭。出入臺省。重傷淸朝之廉恥。益招一世之公議。臣不敢出也。玆敢隨牌詣闕。瀝血陳章。仰瀆崇嚴之聽。伏乞聖慈諒臣情地。察臣哀懇。亟遞臣職名。仍賜斥黜。俾得贖其罪愆。遂其性分。以卒天地生成之澤。不勝大願。臣無任贍天望聖激切祈懇之至。六月日
答曰省疏具悉。善端之萌。藹然如春噓物茁。滿紙自列。言足感聽。爾其勿辭察職。
| 비방을 변명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사양하는 소 정사년 |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이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은 것이 하늘과 같아 끝이 없으니, 신이 어찌 능히 다 기술하겠습니까. 엄사(嚴師)와 같이 가르쳐 그 기질을 변화시키고, 자부(慈父)와 같이 기르시어 그 성명(性命)을 보전하게 하셨습니다. 혹은 전하께서 묵묵히 운용(運用)하시는데 신이 오히려 모르기도 하고, 전하께서는 벌써 잊으셨는데 신은 홀로 가슴에 맺혀 있기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골수에 새겨져 말을 하려고 하면 감격에 겨워 소리를 낼 수 없고, 글을 쓰려고 하면 감격에 억눌려 글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신이 돌아보건대, 어떤 사람이 은혜를 이와 같이 받았겠습니까. 신은 본래 초야의 외롭고 한미한 사람으로, 부형의 음덕과 사우의 도움이 없었는데 다만 우리 전하께서 작성하고 화육해 주시는 공을 힘입어 어린 나이에서 장년(壯年)에 이르렀고, 천한 사람으로 귀하게 되어, 6년 동안 반궁(泮宮 성균관(成均館))에서 시험했고, 3년 동안 내각(內閣)에서 각과(閣課)하여, 외람되이 학사(學士)에 뽑혔고 대부(大夫)의 품계에 올랐습니다. 무릇 그 식견이 조금 진보되고 작록(爵祿)이 미친 것은, 모두 우리 전하의 지극한 가르침으로 도야(陶冶)시킨 것이고, 지극한 뜻으로 다스려 주신 때문입니다. 신이 비록 목석(木石)인들 차마 이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공(孔)ㆍ맹(孟)ㆍ정(程)ㆍ주(朱)의 학문을 몸소 닦았고,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의 지위를 얻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성(千聖)을 계승하여 집대성하시고 백가(百家)를 축출해서 크게 통일, 온갖 만물을 안연(顔淵)의 거문고와 증점(曾點)의 비파처럼 화순한 사이에 있게 하시니, 이것이 성인(聖人)의 세상입니다.
신은 이미 다행하게도 성인의 세상에 태어났고 또한 다행스럽게도 성인의 문하에 노닐었으니, 비록 궁장(宮墻)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종묘(宗廟)와 백관의 융성함을 엿보지는 못했으나 교화를 입어 몸에 밴 것은 또한 깊습니다. 마땅히 그 행신을 법에 맞게 하여 보이는 데서나 보이지 않는 데서나 삼가서 훌륭한 명망(名望)을 얻음으로써 은택을 내려 주신 임금님의 지극한 공을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불초함으로 인해서 10여 년 동안 얻은 비방의 내용은, 음흉하고 간사하고 괴이하고 불경(不經)스럽다는 것이어서 반목과 갈등 속에 빠져 늘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하께서 곡진히 이루어 주려는 뜻을 저버리고 전하의 불설지회(不屑之誨)를 수고롭게 하였으니, 그 실정이 어떠한가는 논하지 않더라도, 그 죄는 이미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염구(冉求)는 공자가 총애하는 제자입니다. 그런데도 한 번 잘못이 있자 공자가,
지금 신의 죄는 비단 염구가 구신(具臣) 노릇한 정도가 아닌데, 우리 전하께서 이미 한 번 용서해 주셨고, 또 한 번 교회(敎誨)하시어 차마 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또 거듭 거두어 주셨으며, 오랑캐가 된 것을 아시고는 화하(華夏)가 되게 할 것을 생각하시고, 금수가 된 것을 아시고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을 생각하셨으며, 죽게 된 것을 아시고는 살게 하실 것을 생각하시어 돌봐주고 구원해 주시느라 거듭 성력(聲力)을 소비하여, 비호하고 용인하여 회개하기를 바라시니, 우리 부모가 아니면 누가 이와 같이 하겠습니까. 신은 마땅히 간(肝)을 쪼개어 피를 내고 죽어 지하에 가서, 이 은혜를 온 세상에 밝히고, 이 마음을 만대(萬代)에 드러내야 하는데도, 불결함을 뒤집어쓰고 구차스럽게 생명을 탐하여, 두려워서 몸둘 곳을 모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그러고도 다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신은 이른바, 서양(西洋) 사설(邪說 천주교(天主敎)를 가리킴)에 대하여 일찍이 그 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책을 본 것이 어찌 바로 죄가 되겠습니까. 말을 박절하게 할 수 없어 책을 보았다고 했지, 진실로 책만 보고 말았다면 어찌 바로 죄가 되겠습니까. 대개 일찍이 마음속으로 좋아하여 사모했고, 또 일찍이 이를 거론하여 남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 본원(本源) 심술(心術)에 있어서, 일찍이 기름이 스며들고 물이 젖어들며 뿌리가 점거하고 가지가 얽히듯 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대저 이미 한 번 이와 같이 되면, 이것은 맹문(孟門 맹자의 문하)의 묵자(墨子 겸애설(兼愛說)을 제창한 전국시대의 사상가)요, 정문(程門 정자의 문하)의 선파(禪派 불교(佛敎)를 일컬음)입니다. 대질(大質)이 휴손되고 본령(本領)이 그릇되었으니, 그 침혹(沈惑)의 깊고 얕음과 개과 천선의 빠르고 늦은 것은 논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신이 이 책을 본 것은 대개 약관(弱冠) 초기였는데, 이때에 원래 일종의 풍조가 있어, 능히 천문(天文)의 역상가(曆象家)와 농정(農政)의 수리기(水利器)와 측량(測量)의 추험법(推驗法)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세속에서 서로 전하면서 이를 가리켜 해박(該博)하다 하였는데, 신은 그때 어렸으므로 그윽이 혼자서 이것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력(性力)이 조솔(躁率)하여 무릇 어렵고 깊고 교묘하고 세밀한 것에 속하는 글은, 본래 세심하게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조박(糟粕)과 영향(影響)을 끝내 얻은 것이 없고, 도리어 사생설(死生說)에 얽히고, 극벌의 경계[克伐之誡]에 귀를 기울이고, 이기(離奇 비뚤어진 것을 가리킴)하고 변박(辯博)한 글에 현혹되어, 유문(儒門)의 별파(別派)로 인식하고, 문원(文垣)의 기이한 감상(鑑賞)으로 보아, 남들과 담론할 때는 기휘한 바가 없었고, 남들이 배격하는 것을 보면 과루(寡陋)해서인가 의심하였으니, 그 본의를 따져보면 대체로 이문(異聞)을 넓히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 동안 뜻하고 종사한 것이 영달에만 있어서, 태학(太學)에 들어온 후로 오로지 뜻을 전일하게 한 것은 곧 공령학(功令學 과문(科文))으로, 월과(月課)와 순시(旬試)에 응시하기를 새매가 먹이를 잡으려듯이 정신을 쏟았으니, 이것은 진실로 이러한 기미(氣味)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벼슬길에 나아간 후로 어찌 방외(方外)에 마음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해가 오래고 깊어갈수록 마침내 다시는 마음속에 왕래하지 않아서 막연히 지나간 먼지와 그림자처럼 느꼈는데, 어찌 그 명목(名目)을 한 번 세워 청탁(淸濁)을 분별하지 못하고서 고지식하게 지금껏 벗어나지 못하였겠습니까. 허명만 사모하다가 실화(實禍)를 받는다는 것은 신을 두고 이른 것입니다. 그 책 속에 윤상(倫常)을 상하고 천리(天理)에 거슬리는 말은 진실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또한 감히 전하의 귀를 더럽힐 수 없으나, 제사(祭祀)를 폐하는 말에 이르러서는 신이 옛날 그 책에서 또한 본 적이 없습니다. 갈백(葛伯)이 다시 태어났으니, 시달(豺獺)도 놀랄 것입니다. 진실로 조금이라도 사람의 도리가 미처 없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어찌 마음이 무너지고 뼈가 떨려서 난맹(亂萌)을 배척하여 끊어버리지 않고, 홍수가 언덕을 넘고 열화(烈火)가 벌판을 태우듯 성하게 하겠습니까.
신해(辛亥)의 변(變)이 불행히 근래에 나왔으니, 신은 이 일이 있은 이래로, 분개하고 상통(傷痛)하여 마음속에 맹세해서 미워하기를 원수같이 하고 성토하기를 흉역(兇逆)같이 하였는데, 양심이 이미 회복되자 이치가 자명해졌으므로, 전일에 일찍이 흠모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니, 하나도 허황하고 괴이하고 망령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사생의 말은 불씨(佛氏)가 만든 공포령(恐怖令)이고, 이른바 극벌의 경계[克伐之誡]는 도가(道家)의 욕화(慾火)를 없애라는 것이고, 그 이기하고 변박하다는 글은 패가(稗家) 소품(小品)의 지류(支流)에 불과한 것이니, 이 밖에 하늘을 거역하고 귀신을 경멸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국 문인(文人)에 전겸익(錢謙益)ㆍ담원춘(譚元春)ㆍ고염무(顧炎武)ㆍ장정옥(張廷玉) 같은 무리는 일찍이 그 허위를 밝히고 그 두뇌(頭腦)를 벽파(劈破)하였는데도 어리석게 알지 못하여 잘못 미혹됨을 받았으니, 이는 모두 어린 나이로 고루 과문한 소치였습니다. 몸을 어루만지며 부끄러워하고 분하게 여기며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마음은 명백하여 신명에게 질정할 수 있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털끝만큼이라도 속이고 숨기겠습니까. 신이 마땅히 위벌(威罰)을 당해야 할 일은 실지로 8~9년 전에 있었는데, 다행히 전하의 비호하심을 입어서 유사(有司)의 형장(刑章)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죄가 있었지만 처벌받지 않아 무거운 짐을 등에 진 것 같았던바, 이어 재작년 7월에 특별히 성지(聖旨)를 받고 호우(湖郵 금정 찰방(金井察訪))로 보직되었지만, 오히려 늦은 것입니다. 어찌 그리도 경(輕)하게 하셨습니까. 신이 손으로 은언(恩言)을 받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문(城門)을 나서자, 걸음마다 생각하니 글자마다 자비롭고 비호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신이 비방을 들은 것은 바야흐로 구덩이에 임박했는데도 성지는 문득 문장을 논하셨고, 신이 지은 죄는 시공복(緦功服)을 책하기가 어려운데도 성지는 필획(筆劃)에 미치셨으니, 무엇 때문에 신을 애석히 여기시어 은념(恩念)이 여기에 이르셨습니까. 신의 형이 잘못 남의 비방을 받은 것은 곧 대책(對策)으로 인한 것인데, 앞서 이미 10행(行)의 윤음(綸音)으로 밝게 판결하시었고, 또 신을 책(責)하시는 교서에 특별히 ‘너의 형은 죄가 없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하의 한 말씀으로 신의 형제를 살리신 것입니다. 신의 형은 손을 마주잡고 울부짖으면서 보답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신이 호우에 이르러서는 매양 주야로 청명(淸明)하게 하고 반드시 심신(心身)을 점검하여, 개혁한 지 오래되었으나 오히려 찌꺼기가 정화(淨化)되지 않았는가 두려워하고, 뉘우쳐 깨우침이 비록 진실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잡초(雜草)가 성숙하였는가 두려워하여, 힘써 좋은 마음을 길러 우리 전하의 훈도(薰陶)하고 생성(生成)시키는 지극한 인덕(仁德)에 부응(副應)하기를 바랐습니다. 더구나 신이 부임한 지방은 곧 사설(邪說)이 그르친 지방으로서, 어리석은 백성이 현혹(眩惑)되어 진실로 돌이킬 줄 모르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관찰사(觀察使)에게 나아가 의논하여, 수색해서 체포할 방법을 강구하여 그 숨은 자를 적발하고 화복(禍福)의 의리를 일깨워주어, 그들이 의심하고 겁내는 것을 효유(曉諭)하고, 척사(斥邪)하는 계(禊)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제사를 권하고, 사교(邪敎)를 믿는 여자를 잡아다가 그들에게 혼인을 하도록 하고, 다시 일향(一鄕)의 착한 선비를 구해서 서로 더불어 질의하고 논란하여 성현의 글을 강론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생각하건대, 신이 한 일이 자못 진보가 있었으니, 스스로 다행스럽고 기쁘게 여깁니다. 이것이 누구의 은혜이겠습니까.
신은 스스로 생각하니, 평생의 큰 은혜가 금정(金井)의 한 걸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일찍이 해가 바뀌기 전에 이미 용서를 받아 살아서 한강(漢江)을 넘어와 편안히 성(城) 안에서 살게 되었으니, 살아서 여원이 없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신이 죽어서 다시는 천일(天日)을 뵙지 못하려니 여겼는데, 뜻밖에 지난 겨울에 갑자기 부르심을 입어, 관(冠)을 쓰고 띠[帶]를 맨 채 거듭 수문(脩門 대궐문)으로 들어가, 은밀하고 가까운 곳에 거처하면서 교정(校訂)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니, 금빛 찬란한 등촉(燈燭)은 황홀하기가 꿈꾸는 것 같았고, 수라간[內廚]의 진수(珍羞)는 그 빛이 찬란했습니다. 마침내 더러운 몸으로 청결하고 엄숙한 자리에 나아가 대하니, 용안(龍顔)의 위엄은 활짝 개고 옥음(玉音)이 온순(溫淳)하시므로 멀리 떨어졌던 나머지 슬픈 생각이 하나하나 감동되어, 눈물이 비오듯하여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기조(騎曹 병조)에 특별히 제수하심과 은대(銀臺 승정원(承政院))에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은, 이것이 비록 우리 전하의 지극한 은혜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신에게는 진실로 좋은 소식이 아닌듯 싶습니다. 전하께서 곡진히 보호하시는 생각을 무엇 때문에 이처럼 하십니까. 분의(分義)로 헤아려보면, 의당 감히 양양하게 나아가 숙배(肅拜)하지 못할 것이거니와, 신이 스스로 생각하건대 어찌 감히 남이 하는 바를 하겠습니까. 제수할 때마다 바로 받는 것은 스스로 평인과 같게 하는 것인데, 그 실정을 상고해 보면 곧 스스로 평인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혹 신에게 이르기를,
육구연(陸九淵)과 진헌장(陳獻章)은 일찍이 손가락을 불사르고 이마를 지지지는 않았으나, 선학(禪學)의 지목(指目)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경우는, 당초에 물든 것은 아이의 장난과 같았는데 지식이 차츰 자라자 문득 적수(敵讎)로 여겨, 분명히 알게 되어서는 더욱 엄하게 배척하였고 깨우침이 늦어짐에 따라 더욱더 심하게 미워하였으니, 칠규(七竅)의 심장을 쪼개어도 진실로 나머지 가리운 것이 없고, 구곡 간장을 더듬어 보아도 진실로 남은 찌꺼기가 없는데, 위로는 군부(君父)에게 의심을 받고 아래로는 당세에 견책을 당하였으니, 입신(立身)을 한 번 잘못함으로써 만사가 와해되었습니다. 산들 무엇하며 죽은들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또 신이 군부에게 은혜를 받은 것이 또한 이미 큽니다. 스스로 그물과 덫에 걸려 부르짖어 슬피 울면 손을 끌어 구원하여 자리에 눕히고, 마치 질병을 앓는 사람처럼 오래되어 점점 깨어나면 또 하나의 변괴가 생겨 돌로 죽순(竹筍)을 누르는 것처럼 되니, 이것은 자못 신의 운명이 기구하고 분복이 박한 탓으로, 비록 명(命)을 조성하시는 우리 전하의 위권으로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신을 불쌍히 여기시어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이에 거두어 쓰시고는, 하나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문득 한 번 추구(追咎 일이 지나간 뒤에 그 잘못을 나무라는 것)하시면, 꿈에도 생각이 미치기 전에 오멸(汚衊 명예를 더럽힘)이 먼저 이르러 지쳐서 기운이 빠진 채 앉아서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이미 증험이 있으니, 뒤엔들 어찌 혹시라도 다르겠습니까. 진실로 이와 같으려면, 신은 차라리 한결같이 고폐(錮廢)되어서 때로 굴(屈)하고 때로 펴져서 부질없이 은혜만 너무 욕되게 하여 죄를 더욱 무겁게 지도록 하지 마소서.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성현이 나오면 재해와 이단도 반드시 함께 일어나서 그로 하여금 환란과 재액을 구제하여 그 공덕(功德)을 크게 세우도록 하는 것이니, 요(堯) 임금 때의 수재(水災)와 탕(湯) 임금 때의 한발(旱魃)과 맹자(孟子) 때의 양자(楊子)ㆍ묵자(墨子)와 주자(朱子) 때의 소식(蘇軾)ㆍ육구연(陸九淵)이 모두 그 증험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 도학의 본원을 천명하고 교화의 근본을 숭상하여, 정로(正路)를 열어 보이시면 구궤(九軌)에 임해서 육비(六轡)를 어거하고, 퇴풍(頹風)을 크게 변화시키면 맹단(盟壇)에 올라 소의 귀[牛耳]를 잡는 것이니, 저들의 사설(邪說)이 일어남은, 장차 전하께서 깨끗이 물리치는 공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떴으니, 도깨비와 무지개는 진실로 국가의 걱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한 몸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으니, 신이 어찌 입술을 태우고 발을 구르며 때에 미쳐 박멸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종자를 남기지 못하게 하기를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자가 노덕장(路德章)에게 경계하기를,
지금의 계교는 오직 경전(經傳)에 잠심(潛心)하여 만년의 보답을 도모하고, 영도(榮途)에서 종적을 멀리하여 자정(自靖)하는 의리를 본받을 뿐이고 뻔뻔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쳐들고 대성(臺省)에 출입하는 것은 거듭 청조(淸朝)의 염치를 손상시키고, 더욱 일세(一世)의 공의(公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신은 감히 나올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경패(庚牌)를 따라 대궐에 나와 정성을 다하여 글로 아뢰어서 우러러 엄청(嚴聽)을 욕되게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정성을 헤아리시고 신의 가련한 충정을 살피시어 신의 직명을 바꾸시고, 곧 척출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그 잘못을 속죄하고 그 성분(性分)을 이루어서 천지의 생성(生成)하는 혜택을 마치게 하시는 것이 더없이 큰 소원입니다. 신은 하늘을 바라보고 성상을 우러러보며, 격절하고 간곡한 기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6월 일.
비답(批答)하였다.
[주D-002]갈백(葛伯)이 …… 것입니다 : 매우 놀랄 일이라는 뜻. 갈백은 하(夏) 나라 때의 제후로 성품이 포학하여 농부에게 점심 먹이는 자를 죽였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결국 탕(湯)에게 멸망당하였다. 시달(豺獺)은 승냥이와 수달피를 말하는데, 그들은 비록 미물이지만 보본(報本)을 할 줄 아는 동물로서 고기를 잡아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즉 갈백처럼 제사도 지낼 줄 모르는 자들이 생겨났으니, 수달피 같은 짐승까지도 놀랄 일이라는 뜻이다. 《書經 仲虺之誥》, 《孟子 藤文公下》
[주D-003]신해(辛亥)의 변(變) :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천주교도(天主敎徒)에 대한 박해사건을 말한다. 당시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 두 사람이 모상(母喪)을 당하여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 제례(祭禮)를 지냈다가, 사회 도덕을 문란케 하고 무부 무군(無父無君)의 사상을 신봉했다는 죄명으로 처형당했고, 조정에서는 천주교도들에게 일대 박해를 가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