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비애...

2010. 5. 6. 오후 8:49:08

글자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 자국 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 헌장에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것 없는 이름 석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 위해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 조상은

그처럼 겸손 했거늘

그 처럼 어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 가는 날

나는 증언 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물 맑고 수풀 우거진합천 해인사.

거기 신라의 선비 최고운님이 노닐었다는 학사대에는.

유람하는 나그네들의

이름자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체

수백년 묵은 전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자기 유명세를 기리기 위해

말못하는 나무에..

칼 자국을 그렸을까 가슴이 멍하다..

인간은 손톱에 가시만 밖혀도

어쩔줄 몰라 하면서/

자기 이름 새길때 쾌락을 즐겼을까?

 

내마음이 이럴진데..

법정스님이 이글을 옮기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저리셨을까..ㅠㅠ

 

 

이글은 1963년 10월1일 <대한 불교>4면에

실렸던 내용이다.

 

@ 맑고 향기로운 사람 중에서.....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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