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에서 오는 행복 (1/24)

2005. 1. 24. 오전 8: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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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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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9,15.24-28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먼젓번 계약 아래서 저지른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유산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하늘의 참 성소를 본떠서 만든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그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 사제는 해마다 다른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번번이 당신 자신을 바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몸을 여러 번 바쳐야 한다면 그분은 천지창조 이후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은 이 역사의 절정에 나타나셔서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를 없이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 주셨고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 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당신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3,22-30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은 예수가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혔다느니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느니 하고 떠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다 놓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 한 나라가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제대로 설 수 없다. 또 한 가정이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가정도 버티어 나갈 수 없다. 만일 사탄의 나라가 내분으로 갈라진다면 그 나라는 지탱하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다.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털어 가려면 그는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입으로 어떤 욕설을 하든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비방했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님께서 길을 가다가 그만 순찰 중인 경찰차에 치였습니다. 그래서 다리뼈에 금이 갔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셨지요. 이 형제님이 안 계신 집은 너무나 썰렁했지요. 그래서 이 형제님의 부인은 어느 날 저녁 자신의 아들에게 저녁 외식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어머니께서 큰 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어요.

“집에만 빈둥빈둥 있지 말고 시간 나면 아버지 면회나 한 번 가라. 너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하시더라”(병문안이라고 말해야 맞겠지요?)

순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마치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를 면회 가는 것처럼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이어지는 이 말은 더욱 더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지요.

“그때 경찰 놈들만 아니었어도……. 아버지도 경찰을 상당히 미워하고 계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안 계실 동안은 네가 우리 집의 우두머리다. 그에 걸맞게 행동해라.”

집 안의 가정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우두머리라고 말했으니, 완전히 조폭 집안처럼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튼 이 아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처절한 외식이었다는 고백을 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요즘 인터넷에서 뜨는 유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로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런 오해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말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득이 될 수도 또 반대로 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 말이고, 그래서 이 말을 잘 쓸 수 있도록 늘 신경을 쓰면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일까요? 혹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말은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상처 주는 말들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주님께도 해서는 안 될 주님을 거부하는 말들도 서슴치 않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부정적인 말들을 즐겨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닥쳐도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즉, 그런 말 하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지요. 이제 우리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이 모두 좋은 말만 나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도 습관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말들만 나오게 되지 않을까요?


고운 말, 밝은 말, 좋은 말만 하도록 합시다.



노력에서 오는 행복

"행복하게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은 노력가이다. 게으름뱅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는가? 노력의 결과로 오는 어떤 성과의 기쁨 없이는 그 누구도 참된 생복을 누릴 수가 없다. 수확의 기쁨은 그 흘린 땀에 정비례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블레이크』가 한 말입니다.

행복은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란 말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많은 먹이를 먹는 법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겐 먹을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사람에게 먹는 것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잘 가꾸고 보살펴야 가을에 수확량이 많은 것처럼 행복에도 예외 없이 공짜가 없습니다. 노력해서 얻은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며 그런 행복은 오래도록 기쁨의 향기를 남깁니다.

기쁨을 남기는 행복, 얼마나 향기로운 말입니까? 그런 향기를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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