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다 (1/18)

2005. 1. 18. 오전 7:03:27

글자
마르 2,23-28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때 함께 가던 제
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
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
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나?”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창조해 주셨다. 그래서
인간이 노력을 하면 그 결실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본래의 안식일
의 의미는 하느님께 이 모든 것을 감사드리고 계속적으로 그 축복을 비는 날이었
다. 즉 생명의 하느님께 그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 근본정신이다.
안식일이라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여 생명이나 생명유지에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선
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라
는 것은 인간이 존재한 다음에 생긴 것이며, 그 법은 인간의 삶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법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인간이 생겨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
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자르자 바리
사이파 사람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항의를 하고 예수께서 그에 대한 답을 하
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이 사건은 춘분을 전후하여 밀이 익을 때 일어난 사
건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왜 밀 이삭을 잘랐을까?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
고 (참조: 마태 12,1~) 그냥 심심해서 껌처럼 씹으려고 했을 것이다(23절). 바리
사이들은 예수님께 “어찌 이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합니까?”
하였다(24절). 안식일에는 39가지 노동을 금했는데 그 중 하나가 추수작업이다.
밀 이삭을 자르는 것도 추수하는 것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항의를 했
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1사무 21,1-10의 내용을 들어 대답하신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다 몹시 굶주렸을 때 아히멜렉 제관에게 가서 하느님께 바쳐진 빵을 얻어먹
었다는 이야기이다. 제관들은 안식일마다 새 빵을 하느님께 바치고 묵은 빵은 자
기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다윗의 상황을 보고 법규를 어기면
서 그 빵을 주어 다윗과 그 일행이 먹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25-26절). 예수님
시대에도 율법학자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때에는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았
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더 나아가서 사람이 굶주릴 때에도 안식일 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그 근거로 다윗의 예를 내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예외 규정
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
여 있는 것이 아니다”(27절). 이 말씀으로 바리사이들의 비난에 대한 대답을 하
신다. 즉 하느님께서는 먼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안식일을 정하셨다는
천지창조 사화(창세 1,26-2,4)의 이야기와 같다. 그리고 이 말씀은 안식일의 의
미 자체를 밝히는 원칙적인 답변이다. 즉 법보다도 사람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
적 법이념을 내세우셨다. 즉 법률만능주의가 아니라 인권을, 즉 안식일 법보다
인간애를 앞세우셨다 (참조: 마르 3,1-6; 루가 13,10-17; 14,1-6; 요한 5,1-8;
9,1-41). 그리고 하느님의 전권을 받으신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28
절).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강박관념 때문에, 주일을 지키
지 않는 것은 죄가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어떤 징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아무런
느낌이 없이 미사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현대판 율법주의일 것이다. 진정으로 하
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제사가 되
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주일을 잘 사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댓글 1

  • 2005년 1월 18일 오전 11:06

    어떻하면 이사이트가 활성화될까 같이 고민해봅시다.성형의 고문분투에 주님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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