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2,23-28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대에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을 가장 큰 삶의 덕목처럼 여기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법의 참된 의미를 당신의 삶과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당시대의 사람들 중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민중들에게 과도한 법과 관습을 부과함으로써, 스스로 죄인이라는 의식 즉 죄의식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가난한 이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관행을 지적하시고 인간을 위해 마련된 하느님의 법 즉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루를 준비하고 계시거나, 차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을 경청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운전자들이 알게 모르게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생활 속에서 작은 법률들을 어긴 일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법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흔히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이 든 잔을 마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사회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순들을 파헤쳐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을 전하던 그를 당시의 지배자들과 기득권 세력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한 사람으로 여겨 재판에 회부하고 사형을 선고 하였습니다.
그의 친구 크리톤이 감옥으로 찾아가 해외로 도피하라고 권고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옳았다고 생각하였기에 변명이나 타협, 그리고 도피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부당한 법과 재판의 결과를 수용하였을 뿐입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법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한 진리였던 것입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진리를 위해 죽었던 것입니다.
현재도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부족한 지배논리를 메우기 위해 억지의 법을 만들고, 인간을 위해 존속되어야 할 법을, 인간을 구속하고 억누르거나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악법’이라고 외칠 때에는 쉴 틈도 없이 소크라테스를 인용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는 악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위해 스스로 독배를 마셨던 악법의 철폐자였음을 모른 채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위해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하나의 법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 누가 감히 ‘사랑합니다.’ 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세상에 태어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 직장이나 학교의 동료들 그리고 여러분이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지켜야 할 법입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 울산 해양사목 김현영 마태오 신부
Re: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다 (1/18)
2005. 1. 18. 오전 7: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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