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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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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7,1-3.15-17 형제 여러분,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보는 분입니다.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 마르코 3,1-6 그때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서 이 앞으로 나오너라." 하시고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나가서 즉시 헤로데 당원들과 만나 예수를 없애 버릴 방도를 모의하였다.
어제 저는 이발을 했습니다. 아무리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거울을 보는 순간 이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침 일찍 읍내에 있는 미용실을 찾아갔습니다. 참, 저는 이발소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발소는 가격도 비싸고, 또 잘못 들어가면 보통 난처한 것이 아니라서 아예 이발소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지요.
아무튼 제가 자주 이용하는 미용실에 들어가서 이발을 했고요, 이발을 끝낸 뒤 머리를 말려줄 때였습니다. 그 미용사가 이렇게 묻습니다.
“손님, 머리에 뭐 안 바르시죠?”
사실 이 미용사는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면서 늘 “손님, 머리에 뭐 좀 발라드릴까요?”라고 물었거든요. 그러면 저는 항상 “괜찮습니다.”라고 답변했지요. 아마 제가 늘 이렇게 대답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아예 부정적으로 “안 바르시죠?”라고 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괜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지요.
“아뇨. 발라주세요.”
1년 만에 젤이라는 것을 발라 보았습니다. 상당히 어색하더군요. 더군다나 제 의도와는 달리 청개구리 심보에서 나온 말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어색함이 더 했습니다.
청개구리 심보, 즉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로 하려는 마음은 이렇게 본인 스스로에게 어색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도 이런 어색함을 가져다주어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대해 반대하는 마음을 좀처럼 없애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반대하지 않으면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하게 보일 것 같아서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사람에게 끌려가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일까요?
여러 이유를 들어서 우리들은 다른 이의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고 보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반대가 우리 공동체, 그리고 상대방에 상처를 주고, 또한 내 자신에게도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기 전에 묻습니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했습니다. 특히 자신들이 신처럼 믿고 있었던 율법에 기준을 맞추어서 치유를 받는 사람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신처럼 믿고 있는 안식일법은 바로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임을 다시금 분명히 하십니다.
물론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요. 손이 오그라든 자체가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따라서 안식일에 괜히 고쳐서 그들과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자렛인들의 복음서’라는 성경 외적 문서를 보면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오른손으로 밥벌이하는 장인으로써 손이 오그라듦으로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치유는 가족을 위해서 안식일에 상관없이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반대를 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지금 나의 부정적인 마음, 나의 반대하는 마음으로 혹시 예수님께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을 가로막았던 것은 아니었나요? 너무 많아 부끄러워집니다.
상대방의 말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 맙시다. 곤란해집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글 말(言)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주지요.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해야 합니다.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요.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넌 항상 믿음직해." "넌 잘 될 거야!"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들어내는 데 있다고."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지요.
오늘 우리도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보기로 해요.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할 때 우리는 더욱더 행복해 진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