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운동 - 경험담

2007. 3. 14. 오후 4:33:56

글자
 

일치 안에서는 장님도 볼 수 있습니다.

라파엘 신부

어떻게 앞 못 보는 신부가 그의 사제직무를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교구의 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가 장님으로 생활하는데 누가 전적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은 그와 같은 제약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질 성직을 언제나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라파엘 신부의 경험담은 사제들 사이에 서로간의 사랑이 진정한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 같은 질문에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나는 34 년 동안을 사제로 살았습니다. 나는 매우 검소한 가정의 11명 자녀 중 다섯째였습니다. 나는 부모님의 모범을 보면서 사랑, 강한 믿음, 희생의 중요성 등과 같은 진정한 크리스천적 가치를 배웠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나도 역시 행복한 큰 가족을 가지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내가 18살 때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신학교 시절은 매우 빨리 지나갔고 사제서품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만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됐고 마음도 텅 빈 것같이 느꼈습니다.   나는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며 나의 인생을 봉헌하기위해 루르드에 갈 기회를 잡았습니다. 루르드에서 돌아왔을 때 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요? 내 기도의 응답인가요?

첫 미사를 드리고 있는 동안 영원히 앞을 못 보게 되다.

나는 매우 두꺼운 돋보기의 도움으로 공부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사제 서품이 되는 그날, 기쁨에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사제서품을 축하하며 첫 미사를 드릴 때였습니다. 내가 미사 전례책을 잡았을 때 갑자기 온 세계가 멀어져 감을 느꼈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음을 인식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약간의 심리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은 새로운 고통스런 모험이 시작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내 인생의 계획이 엉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에서 공부를 더 하려했었지만 나는 도시 교외의 보좌 신부로 보내졌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때 내 무능력과 좌절에서 오는 공허를 채우려는 노력으로 나는 내 자신을 거의 일에만 매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더 열심히 일할수록 내 안의 공허는 더욱 더 커갔으며 좌절감도 더욱 커갔습니다.
이 무렵 나는 한 사제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당에서, 훌륭한 교육자로 완전히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나를 위해서는 언제나 시간을 내줬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섬세하고 의지할 만했으며 언제나 필요할 때 내 옆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는 평화와 환희로 가득 차 있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활의 증거가 나를 불안케 했습니다. 마치 내 눈에 고통을 주었던 밝은 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다양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일들에 대한 질문공세를 퍼부으며 그를 철저히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말하던지 그는 언제나 평화스러웠으므로 나는 점점 더 흥분되어 갔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네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 그는 그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선택, 즉 복음을 사는 것과 사랑의 선택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왜 이 선택이 나와 다른 그를 만들었는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가 했던 것 같이 하느님께 내 생활을 애써 드리려고 하지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생활을 바꾸어준 모임

  마침내 나는 그를 괴롭히는데 지쳤으며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나를 오랜 친구같이 환영했으며 나를 무척 편하게 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깊게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더 자주 만나기 시작했으며 우리의 우정은 빠르게 커갔습니다. 그들이 나를 포콜라레 운동에서 주최하는 사제들을 위한 모임에 초대했으며 나는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때는 1960년대였으며, 당시 나는 평신도가 사제들에게 담화를 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모임의 많은 발표자들이 평신도들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셋째 날까지 버텼지만 나에게는 너무 길었으므로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가방을 쌌고 문 밖으로 걸어 나오려는 순간에서 사제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던 끼아라 루빅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글자 그대로 딱 멈춰 서게 됐습니다. 나는 그녀가 무었을 말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바위에 부딪쳐서 수천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꽃병 같은 것을 내가 느꼈었다고 기억합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사제직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내 인생의 조각들을 주어 들고 함께 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를 담당했던 그 운동의 친구들은 내가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를 찾아와 사랑이신 하느님을 말해 주곤 했습니다. 머리로는 그들이 말하는 것들을 이해했지만 아직 그렇게 살만큼 배워지진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방식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느꼈고 이 내적 갈등이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보지 않고도 보는 것

나는 1966년 3월 16일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날 나는 아주 지쳐있었으며 평상시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습니다.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하고 내 방으로 올라가서 팔걸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나는 가끔 일어나서 천천히 방의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 지친 몸을 위한 바른 자세를 찾았습니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습니다. 나는 그 순간이 매우 깊은 기도와 묵상의 순간이었다고 믿지만 기도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그 날은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고, 나의 앞 못 봄을 받아들였고, 내가 내 자신에게 "지금 나는 보지 않고도 보기를 원한다." 라고 말했던 밤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끼아라 루빅을 통한 일치의 영성의 빛을 내 안에 받아 들였습니다.  사랑이 내 마음의 눈을 뜨게 했으며 나는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나는 전보다 더 평화스럽게 잠을 잤으며 아침에는 내 방을 청소하면서 즉시 사랑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의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고 놀라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제이기 전에 다른 사람들같이 먼저 인간이 먼저 되길 원한다고 또 내가 강론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가 먼저 살기를 원한다고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조금 조금씩 남자, 여자, 사제 등등에 대한 나의 오래된 사고 방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는 것

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통하여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좀더 열려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내 인생은 더 생산적이 되어 갔습니다. 쉼 없이 나는 누군가를 대동하고 나의 가족들인 젊은 사제들을 계속해서 수 마일씩 여행을 해가며 방문했습니다. 한번은 매우 급진적인 이상을 가졌다고 들은 한 사제를 그의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고열로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르는 사제가 자기를 만나러 무척 먼 길을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실에 놀라면서 반가워 했습니다. 그가 마음을 열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생활과 어려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올바르고 더 형제적인 세계를 위해 일해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역시 이 목표에 도달하는 길을 찾아왔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자주 만났으며, 지금 우리는 포콜라레의 일치의 영성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인생은 사랑의 유희

시간이 가면서 나는 성서에서 약속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하루 24시간 느끼며 사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이 같은 방법만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요구하는 상호적인 사랑에 의해 나의 자아를 소모 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1973년, 3명의 다른 사제, 루치오, 지지노, 토마소와 함께 한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편의나 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있는 곳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겠다.'(마태오 18:20)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진실을 경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인간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이신 예수의 현존은 우리에게 매우 강력한 매력이어서 우리의 성격과 사고방식들이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사랑의 유희가 되었으며 또 구체적으로 먼저 사랑하고자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친교의 생활은 우리를 모든 이의 선을 위한 개인적인 선물을 가진 진정한 사람들로 자라게 해주는 빛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그리고 서로간의 일치를 경험했는데 그 일치는 고통 중에 일치 안에서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 즉 내가 병에 걸렸을 때 경험했습니다. 나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외과수술을 했고 그 후에는 충분한 요양을 취해야 했습니다. 나의 형제사제들은 치료와 요양을 위한 모든 것을 살펴 주었으며 가장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고, 나를 간호하는 등 무엇이든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때 나에게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이시며 우리의 진실한 건강이며 우리의 내적인 건강이셨으므로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을 많은 이들을 위한 등대로 변화시켜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처럼 여러 부류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본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집에 온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점들의 해결책을 찾았으며 그들의 삶을 위한 새로운 빛을 찾았습니다. 나는 이런 일은 우리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온 새로운 빛으로 인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우리 각자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환경을 변화시켜주는 등불이십니다. 우리 집으로 우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즉시 이것을 느낍니다. 한번은 젊은 엄마인 마라가 나와 그녀의 문제들을 상의하러 왔습니다. 그녀가 왔을 내가 좀 바빴으므로 다른 사제가 그녀에게 커피를 대접했습니다. 그녀는 기다리는 동안 호기심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방의 조화로움에 감명을 받습니다. 내가 시간이 났을 때 그녀는 "나는 이미 내가 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알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집을 꾸민 방식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온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남편과의 갈등의 대부분의 이유가 그녀가 집을 잘 정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새롭고 중요한 방법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Fr Raffael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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