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정 운동

2007. 3. 14. 오후 4:02:43

글자

 


새가정 운동

            경험담 1      경험담 2        경험담 3


새가정 운동은...

포콜라레 운동의 한 부문으로 특별히 가정들에게 초점을 맞춘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1967년 끼아라 루빅에 의하여 창설되었습니다. 새  가정 운동은  현재 약 30만 명의 회원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 존재하며 많은 지지자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의 회원들은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에 근거하여 가능한 한 견고하게 그들의 가정 생활을 이룩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치의 영성은 가정의 영역 안에 살고, 각 가정 안에서 본래의 사랑을 강화하고 영구적인 가치의 빛으로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다. 부모 사이에 강화된 일치의 결과는  자녀를 올바르게 기르?위한 확실한 지혜의 근원이  되며 그들의 생활을 위한 강력한 참고 점이 됩니다.
세대간의 불화는 가족 일원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의 마음의 선물을 주고 받을 때 긍정적인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 회원들은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에 따라 가능한 한 견고하게 그들의 가정 생활을 이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치의 영성은, 가정 안에서 일치를 살게 하며, 가정의 고유한 사랑을 강화시키고 지속적인 가치의 빛으로 가족간의 관계를 새롭게 해 줍니다. 부모사이에 강화된 일치는 자녀를 양육하는 확실한 지혜의 근원이며 가족의 삶을 위한 강력한 보증이 됩니다. 가족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세대간의 차이점을 서로를 위한 선물로 주고받을 때 긍정적인 빛으로 보여집니다.
이 이상을 넘쳐 나게 살아 다른 가정을 매혹시키는 이런 가정들은 사랑의 풍요로움을 내어주게 됩니다. 예를 들면, 깨어질 위기에 이른 많은 가정들이 새 가정 운동의 도움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을 재건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통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새로운 생활에 개방됨으로써 결혼의 의무와 같은 가족의 가치는 끊임없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강력한 연대감과 영성적인 가치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치된 가정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모든 이를 위한 빛나는 모범입니다.
새 가정 운동 회원들의 전형적인 활동은 이지노 죠르다니가 말씀하신 "가정 안에 살아있는 사랑의 불꽃을 유지하는 것과 그 따스함이 가정의 밖으로, 사회 안으로 전해져서 점점 더 넓은 공동체인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 입니다.
새 가정 운동은 각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형성된 지역적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직이라기 보다는, 이 그룹들은 근본적으로 아주 실천적으로 가정 생활을 서로
나누는데 있으며, 실제적이고  영성적인 지지를 주고  받는 데 있다.  새 가정
그룹은 종교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서로 서로와 연결되어 있다.

새 가정 운동은 지역별로 형성된 그룹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그룹들은 조직보다는 영육간의 도움을 주고받는 매우 실제적인 가족간의 나눔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새 가정운동의 그룹들은 서로 다른 종교와 국가들간에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간추린 역사

2차 세계 대전 중 강력한 폭격이 이태리 트렌트시를 황폐화 시키고 있었으므로 끼아라 루빅의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난처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끼아라는 하느님께서 그녀를 이 도시에 남아 있도록 원하시는 것을 느끼고 뜻을 같이 하기 시작한 다른 처녀들과 함께 트렌트에 남았습니다. 끼아라와 친구들은 복음을 재발견하는 경험을 살기 시작했으며 바로 그때에 일치의 영성이 피어나게 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5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끼아라와 그녀의 첫 친구들이 시작한 삶의 방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젊은이와 어린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있었으며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1948년, 국회의원이며 저명한 저술가인 이지노 죠르다니가 끼아라와 새로 태어난 일치의 영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네 아이를 가진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포콜라레 운동이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포콜라레를 중심으로 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만난 가정들의 수가 더욱 늘어나며 성장 해 갔습니다.

1967년, 끼아라 루빅은 역사적인 담화로서 새 가정 운동을 창설하셨습니다.

1991년, 밀라노에 있는 CISF(세계 가정 연구원)는 “이태리 가정에 관한 제 2 보고서”를 통해 이태리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 운동으로 새 가정운동을 적었습니다.


사업과 활동들
 
다음은 새 가정 운동이 펼치고 있는 활동들 중의 몇 가지입니다.

    가정과 약혼자들을 위한 양성과정은 각 지역과 로마의 포콜라레 운동 본부에서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정들간의 자유로운 나눔은 지역별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각 가정들이 여분을 것을 내어 줌으로서 이루어 지는 이 나눔은 가난한 가정들에게 필요한 긴급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곳을 위한 공동체의 원조 활동 ;

전쟁이나 극심한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을 위하여는 물질적인 원조를 통하여, 그리고 입양과 양부모 결연사업을 통하여 돕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위한 경제적 도덕적 지원활동으로 임산부를 위한 상담과 위기관리,자연적인 가족계획법 교육, 노인 및 임종자 돌보기 등이 있으며 이를 위해

    가정을 위한 시청각 자료들을 출판하며

    가정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기 위해 정부, 사회 및 교회 기관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프로그램들

  • "가정 포콜라레"

  •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포콜라레 영성을 생활화하고자 하는 부부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에서든지 새 가정 운동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한다. 전 세계적으로 850개의 가정 포콜라레가 있으며 새로 시작되는 공동체를 돕기 위해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있는 부부가 200쌍이 넘는다.

  • 국제 대회

새 가정 운동은 그 회원들과 그들의 활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각국별 또는 국제적인 대회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이 만남에서는 가정과 관한 광범위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이 모임은 참가자들의 일치의 영성을 깊게 하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게 합니다.

  • 가정들을 위한 학교

  • 여러 나라에 있는 포콜라레 운동의 소도시에는 새가정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가 상설 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가정들이 독립적인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이 가정들은 공부하고 일하며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합니다.

    복음만이 유일한 법인 분위기 속에서의 깊이 있는 체험을 하게 되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여러 나라 가정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줍니다. 가정들을 위한 첫 번째 상설 학교는 1982년 이태리 플로렌스 근처의 로삐아노에 설립된 "로레토"입니다.

  • "원격지 입양"

  • 1970년, 새 가정운동은 국제적인 연대하에 아주 독특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업을 통하여 많은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자기 나라와 문화를 잃지 않고 경제와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기부금은 어린이들의 가족과 지역 사회에 필요한 것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현재, 38개 나라에서 66개의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며, 4개 대륙의 9,300명의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어린이와 가족의 식료품과 의료비 그리고 기초 및 직업 기술 교육에 필요한 교육비로 사용됩니다.

    이 사업의 중요한 성과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간에 아름다운 도움의 네트워크를 건설하였다는 것과 서로간의 주고받음을 기반으로 깊고 고귀한 상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혜택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더욱 좋은 상태에 놓이도록 해 주었습니다.

"원격지 입양"은 전쟁과 기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어린이들을 데려 오지 않고 그들의 부모님 품에 둔 상태로 양부모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양부모가 월 4 - 5만원의 후원금을 부담함으로써 이들의 생계와 교육을 지속시켜 주는 사업입니다.


이지노 조르다니

저술가이고 언론인이며 정치가로서 이태리 국회의원이었던 이지노 죠다니는 1894년 티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48년에 끼아라 루빅을 만난 그는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포콜라레 운동의 사회적 측면과 영성의 일부 측면들의 성장에 대한 그의 공헌은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그를 포콜라레의 공동 창설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기혼 포콜라리노"였습니다.

그는 1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썼으며 수많은 소책자와 기사를 남겼는데 '교회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변증론, 수도생활, 성인들의 삶, 정치와 소설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포콜라레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