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 오실 분 (마태11,2-11)

2025. 12. 12. 오전 7: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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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일 일요일

[대림 제3주일] 오실 분 (마태11,2-11)



1독서<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이사35,1-6.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화답송>시편146,6-7.8-9.9ㄴㄷ-10ㄱㄴ(이사35,4) 주님, 저희를 구원하러 오소서.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2독서<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복음<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마태11,2-11)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대림 제3주일 제1독서 (이사35,1-6ㄴ 10)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5~6ㄱ)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5)

본절부터 7절까지는, 종말에 선민 이스라엘의 땅에 넘칠 환희과 기쁨을 예고하는 35장 1-2절에 이어, 다시 하느님께서 가져오실 당신 백성들과 그들의 땅의 역동적 회복을 예언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역동적 구원은 부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성취되었다.

특히 5절과 6절은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되심을 입증하면서 답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마르7,37 ; 루카7,22 ; 마태11,2-6).

즉 이것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문 서두에 제시된 '그때에' 에 해당하는 '아즈'(az ; then)는 일차적으로는 메시아 시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것은 주님께서 도래케 하시는, 온전한 회복의 나라,영원한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해 이루어질 그 나라로 귀결된다.

 

한편, 하느님께서 회복케 하시는 역사(役事)가 이루어질 날에 일어나게 될 사건으로 먼저 제시되는 것은 맹인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여기서 '열리고'에 해당하는 '티파카흐나'(thiphaqahna)는 '열다'의 의미를 지닌 '파카흐'(phaqah)의 수동형으로서, '열릴 것이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사용된 것은 그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것이다.

즉 맹인의 눈이 열리는 역사가 전적으로 주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이것은 문자 그대로 맹인이 눈을 뜨고 보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영적 어두움 속에서 멸망의 길을 걷던 자들이 진리의 빛을 보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을 거역하던 백성에게 내려졌던 책벌이 풀리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이사6,10; 29,18).

그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보게 될 것이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더 이상 무익한 이방의 강대국이나 헛된 이방의 우상이 아닌, 완전한 구원이신 주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본절 후반부는 '눈먼 이의 눈' 에서 '귀먹은 이의 귀'로 바뀌었을 뿐,  앞 부분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평행 대구 문장으로 풀이된다.


여기서는 청각기관인 '귀'란 표현이 사용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했던 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귀가 열리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 진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떠뜨리리라.' (6ㄱ)

예수님은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 여덟 해나 누워있던 병자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걷게 하셨으며(요한 5,2-9),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해 그로 하여금 사슴처럼 뛰게 하였다.(사도 3,1-9)

이처럼 메시아 시대가 되면, 절름발이도 건강한 다리를 갖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영적으로 해석하면, 불완전한 신앙을 가졌던 자들이 신앙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고, 죄의 굴레에 얽매여 바르게 사는 데 있어 제한을 받던 자들이, 그 굴레를 떨쳐버림으로 인해, 진리의 길을 마음껏 활보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중 갈릴리 지방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말을 분명하게 하신 사건(마르코 복음 7,31-37)을 연상케 한다.

 

이것 역시도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과거에는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했던 자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며, 하느님의 진리를 침묵하던 자들이 입을 벌려 담대히 그 진리를 증거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으로 알아 들을 수 있다.

 

한편, 앞의 5절의 경우는, 메시아의 활동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표현이 모두 수동형으로 사용되어,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 발로 걷고 입으로 말하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강조 능동형과 능동형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의 회복의 양상이 하느님의 주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자들의 적극적인 순종과 증거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1,2-3).”
여기서 세례자 요한이 했다는 말만 보면, 그가 예수님을 의심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직접 물어보라고, 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믿으라고 시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6-7).”
또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증언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3-34).”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한 세례자 요한 자신이  예수님을 의심했다고(안 믿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증언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을 의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4-6).”
이 말씀의 뜻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너희 눈으로 직접 보아라. 그리고 나를 믿어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는 것을 보았다면, 또는 체험했다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애자들과 병자들이 치유되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말씀은 ‘메시아의 구원’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행복하다.’를 ‘구원을 받는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마태 11,7-9).”

사람들이 광야에 간 것은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회개를 선포한 예언자 요한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단순히 회개를 선포하기만 한 예언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자였기 때문에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한을 만났다면 그 다음에는 메시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성당에 가는 것은 성전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귀영화나 출세나 재물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히 성전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나, 또는 부귀영화 같은 세속적인 복을 빌기 위해서 성당에 간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11).”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이라는 말은 그냥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구약시대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라는 말씀은, “요한은 구약시대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것은  하늘나라를, 또는 메시아 시대를(신약시대를) 미리 준비한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라는 말씀은, 신약시대 신앙인들은 구약시대 신앙인들보다 더 큰 은총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을 깎아내리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메시아 구원의 위대함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의 시대였고, 아직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이었고,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렸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메시아께서 오셔서 새로 시작된 새 시대이고, 본격적으로 구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은총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는(메시아 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 말을 지금의 각 개인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저 심판이 두려워서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은  구약시대 수준의 초보적인 신앙생활만 하는 신앙인이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참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제대로 메시아 시대의 신앙인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정진만 안젤로 신부)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 복음도 세례자 요한에게 집중됩니다.

마태오 복음 11-12장은 10장의 파견 설교에 이어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의 부정적 반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정체와 신원을 의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간접적으로 엿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물으시면서 그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가십니다(루카 7,18ㄴ-23; 7,24-30도 참조).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여기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은 헤로데 안티파스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는 낙타털 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른 채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도록 요청한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대조됩니다(마태 3,1-12 참조).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질문하시면서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이며 동시에 예언자보다 더 큰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종말론적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로서 말라키 예언서 3장 1절에서 예고된 하느님의 약속을 완성한 인물입니다.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에서 사용된 일인칭(‘내’, ‘나’)은 마태오 복음 11장 10절,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에서 이인칭(‘네’, ‘너’)으로 수정되었는데, 복음서 저자는 이러한 편집으로써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오기로 약속된 예언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은 ‘기뻐하여라’(Gaudete)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져 가는 오늘,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에 하나로 합쳐지는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강론 지침』, 90항 참조).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마태 3,2.7-12 참조)를 귀담아들으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요?

세례자 요한은 기쁜 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최고의 안내자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홍근표바오로 신부)

 

사회학(社會學)에서 자선(慈善)의 의미는 너무나 미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이 신에게 벌 받지 않으려고 하는 적당한 정도의 적선(積善)행위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즉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그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라기보다, 단지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마음 불편함을 없애는 정도의 희사(喜事)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복지(福祉)와는 너무도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정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회학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해결의 복지는 아닐지라도 이 추운 겨울에 어렵게 지내는 가난한 이웃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면서 작게나마 그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이사 35, 3)

긴긴 터널 같은 팬데믹에 갇힌 지 벌써 3년,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아 맥이 풀린 우리들의 삶이 어디 하나 희망을 찾지 못하는 꺾인 무릎에 상처투성입니다.

직접적인 바이러스로 인한 희생자는 물론이고 백신을 맞은 분 중에도 죽음 내지는 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분들도 주변에 제법 계십니다. 요양원에 모셨던 부모님과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이별을 해야 했던 분들도 적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움은 늘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법입니다.

지난해 겨울 영등포 쪽방촌에서만 무려 21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겨울은 제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어야만 할 텐데 하고 걱정이 앞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 11, 2-11)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다’. 그의 말대로 진료비가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각박해도 소문 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들이 언제나 계십니다. 요셉의원에도 선우경식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 무료 진료 자원봉사 의료진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줄을 이었습니다. 그 수가 무려 월평균 100여 명이 넘습니다.

그들을 통해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기도와 자선을 통해 주님께서 함께 계심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51214일 일요일

[대림 제3주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기뻐하여라 주일이라고도 불리는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마른 땅과 사막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바빌론 유배살이에 지친 백성을 해방과 귀환이라는 큰 기쁨으로 초대합니다.

수확의 기쁨, 가족과 나누는 식사의 기쁨, 화목한 공동체의 기쁨, 축제의 기쁨 등 일상에서 누리는 기쁨보다 더 깊은 기쁨은, 겸손하게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는 이들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때로 의심과 불안에 깎여 나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오실 분”(마태 11,3)이신지 아니신지를 묻자 그분께서는 대답으로 이사야 예언자가 이야기한 새로운 세상의 기쁨을 말씀하십니다(11,5 참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인 요한에게는 말씀이신 분과 만나는 것이 곧 자기 존재의 실현이었습니다.

요한은 말씀이 담기지 않은 소리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서 구원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의 소리가 전하고자 한 뜻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오해할 때 자신은 소리일 뿐임을 밝힙니다.

이제 더욱 가까워진 말씀과의 만남을 기쁨으로 준비하는 오늘, 세례자 요한이 보여 준 겸손과 진실로 우리 마음의 길을 곧게 닦읍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일]

 

<입당송>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거듭 말합니다기뻐하십시오.(필리4,4)

 

우리의 인생세상사(世上事)는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만 살 수 있다땅은 물(생명)없는 메마른 광야세상은 풍랑이 이는 바다이기 때문이다(세상)이 약속한 기쁨은 속이는 것으로()이 아니라는 말이다.

 

1독서(이사35,1-6.10)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레바논의 영광과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두려워하지 마라보라너희의 하느님을복수가 들이닥친다하느님의 보복이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세상(世上)과 육적(肉的)인 나에게 하느님의 복수(復讎)가 들이 닥친다곧 내 뜻인 라는 나라에하느님의 뜻인 하느님의 나라가 들어오심이다그것이 구원(救援)이다안식(安息)이 없는 땅눈물의 바다에서 자유(自由).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하느님의 들어오심으로 세상의 화려(華麗)함에 가렸던 눈이 세상 유혹(誘惑)의 말에서 귀가 열린다하늘의 평화안식참 생명자유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아멘!

 

복음(마태11,2-6.11)

요한이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監獄)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자신의 뜻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監獄)에 갇히면 하늘의 평화안식생명자유를 깨닫지 못한다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이다믿음이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자신의 뜻에 맞춘 다른 존재를 찾는다.

 

3 “오실 분(구원자)이 선생님이십니까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많은 이들을 용서(容恕)로 살리셨다.

 

(마태12,28) 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뜻말씀을 진리(眞理)로 보고(깨달음따라 사는 삶눈이 열려 올바로 걷는 깨끗한 삶이며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解放)되는 구원이다.

하느님의 복수(교육회초리)가 들이닥쳐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부인(否認)시키신 그 마음이 가난해진 이만 알아들을 수 있는 복음(福音)이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아멘!

 

(2코린5,17-21)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 모든 말씀을 깨달아 진리로 믿는 것말씀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재림(再臨) ‘파르지아’ - 옆에 드러나 나타나다.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그리스도의 사랑이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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