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대림 제4주일] 예수 탄생예고 (마태1,18-24)
제1독서<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이사7,10-14)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화답송>시편24,1-2.3-4ㄱㄴ.5-6(◎7ㄷ과10ㄷ) ◎ 주님이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제2독서<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로마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복음<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마태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대림 제4주일 제1독서(이사7,10~14)
그 무렵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너의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이사7,10~14ㄱ)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에 반기를 든다.
남부 유다의 아하즈 임금(B.C.735-716)이 아시리아에 반대하는 그들 동맹을 거절하자 아람과 북부 이스라엘이 남부 유다를 침공한다.
아하즈의 목숨뿐 아니라 다윗 왕조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저 유명한 임마누엘의 표징을 아하즈에게 알리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아하즈는 하느님께 매달리는 대신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댓가로 아시리아의 이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사야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그가 반(反)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시 근동의 초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무모하게 대항하지 말라는 것이지 아시리아에 의존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0)
이사야 7장 1~9절은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하즈에게 남부 유다가 북부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략에서 보존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7장 10~16절은 남부 유다의 보존 예언을 확증하는 표징으로서 임마누엘의 예언을 주는 내용이다.
즉 이것은 주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아하즈에게 다시 한 번 주님을 믿고 그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일종의 신앙적 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표징을 구하지 않는 그에게 주님께서 친히 표징을 주심으로써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이르셨다'는 말씀은 13절의 '이사야가 말하였다'와 연결되는데,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자신의 지성과 언변에 담아 아하즈에게 전달하였던 것이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11)
여기서 제기되는 '표징', 즉 '오트'(oth)는 어떤 추상적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표적과 같은 것을 지칭한다.
아하즈에게 하나의 표징(징조)을 구하라는 것은 그가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주님의 능력을 얼마나 믿는지를 표현하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제안을 표면적으로 보기에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의미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하즈의 믿음을 시험하는 제안이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구하는 어떠한 표적도 다 보여줄 수 있다.
더욱이 주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시공간을 벗어나 가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 가운데 실제 역사하는 것이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즉 이것은 세상에서 그분이 구체적으로 행사하시는 일,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보다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느님을 가리켜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이라고 칭한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헛되고 무력한 거짓 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의 왕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계약의 백성들 중에 통치자로 존재함을 확인시켜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는 지금껏 이방 신을 섬기고 온갖 패역을 자행하는 자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느님을 다시 자신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계약 국가 유다를 하느님의 섬기는 나라로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1)
아하즈가 표징을 구하되 그 표징을 깊은 데서 오게 해 달라고 혹은 높은 데서 오게 해달라고 구하라는 의미이다.
이 두 장소는 인간이 도달하기 불가능한 곳으로서 음부와 하늘을 지칭한다.
만약 그곳에서 표징이 보인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요구까지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징표로 구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2)
아하즈가 주님께서 제안하시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였음을 보여주며 그가 아시리아와 손을 잡고 그 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것을 이미 결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아하즈는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주 하느님이 아닌 장차 유다를 침공할 이방 아시리아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본문은 두 절 모두 강한 부정어 '로'(lo)와 더불어 동사의 미완료형이 사용된 구문으로서 결코 영원히 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써 아하즈가 얼마나 완악한 자인지 그리고 하느님께 대체 얼마나 무관심한 자인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시험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아낫쎄'(anaseh)의 원형 '나싸'(nasah)는 구약성경에서 34회 사용된 동사로서 어떤 물건의 품질이나 인격의 진정성을 알아내기 위해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하즈도 신명기 6장 16절의 "그분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근거삼아 이렇게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명기의 말씀은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그를 시험하는 불신앙적 행위를 금한 말씀이다.
반면 지금 이사야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을 하느님께 어려운 징조를 구함으로써 표현하라는 것이므로 이 둘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아하즈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그 백성이 마땅히 올려야 할 기도인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기도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능력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한다는 표시이며 하느님을 도무지 신뢰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13)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 왕실을 가리켜 '아하즈의 왕실'이라고 칭하지 않고 '다윗 왕실'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윗 왕실은 다윗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실을 의미하는데 그 왕실은 주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통치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수백년이 흐르면서 그 믿음의 표상은 불신앙의 표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응당 믿음의 표상이 되어야 마땅한 유다의 왕실이 어찌하여 불신앙의 표상이 되었느냐고 물으면서 한탄의 어조로 이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남부 유다 왕 아하즈는 유다 왕실을 대표하는 자로서 그의 뜻은 곧 왕실 전체의 뜻이기에 아하즈의 태도에 따라 왕실과 나라 전체가 복을 받기도 하고 심판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렵 합니까?" (13)
여기서 '사람들'에 해당하는 '아나쉼'(anashim)은 흔히 유한하고 병약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 '에노쉬'(enosh)의 복수형이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주권자를 의지하여 도움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유다 왕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통만 당하는 무력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11절까지만 해도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너의 하느님' 즉 아하즈의 하느님으로 지칭하다가 여기서는 '나의 하느님' 즉 이사야 자신의 하느님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렇게 호칭이 바뀌게 된 것은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아하즈의 불신앙 때문이다.
하느님은 불신앙과 교만으로 가득하여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탄없이 등을 돌리시는 분이시며, 겸손하게 그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의 하느님이시다.
'성가시게 하고서'의 '할르오트'(haleoth)의 원형 '라아'(laah)는 구약 성경에서 19회 사용된 단어로서 피곤하게 하고 진절머리가 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탈출7,18; 욥4,2; 16,7; 예레15,6).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14)
아하즈가 구하기를 거부한 표징을 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실 것이 선포된다.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아하즈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하느님은 유다 백성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무상의 선물인 은총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은총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대림 제4주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께서는 어디에서 오셨고 어떻게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었는지 알려 줍니다.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이 문장을 이해하는 열쇠는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있습니다.
16절은 15절까지 반복된 문학 형식(능동태)을 파괴하면서 ‘마리아에게서의 출생’(수동태)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로써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탄생이 이전 조상들의 출생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특별한 이야기’에 대한 추가 보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강론 지침』, 103항 참조).
오늘 복음의 ‘특별함’은 먼저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에게 예수님께서는 인간적 부부 관계가 아닌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동정녀 잉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초자연적 사건으로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마리아에게서의 탄생이 ‘회상’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약속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제1독서 참조).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현존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활동하십니다.
오늘 미사에서 선포되는 복음은 우리를 예수님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안으로 초대합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새로 태어날 아기는 ‘임마누엘’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아기를 통하여 활동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8-23)
구름이 있는 하늘이 더 아름답다. 그 구름을 움직이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마태 1,18-23)
오늘은 매일복음에서 빠진 17절로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 그러나 14대? 맞지 않는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1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2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3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4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5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6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7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8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9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10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11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12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13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14?
=14대는 없다. 그것은 과부인 타마르와 롯, 그리고 창녀인 라합이 족보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는 그들의 죄를 통해 그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1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다윗이 무시되고 있다. 솔로몬의 아버지를 우리야로?
2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3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4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5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6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7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8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9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10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1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12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13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4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마태22,45)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당시, 다윗 시대에 육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들에게 메시아는~ 육의 영화가 아닌 영의 구원 곧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1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2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4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5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6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7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8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9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10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11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2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13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4?
= 14대? 또 없다. 그 대신 마리아(쓴물)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묵상했듯이 과부 창녀 그 쓴물(죄인), 마리아들이 그리스도로 단물이(의인) 되는, 곧 그들의 남편 짝으로 구원하실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의 약속 그 족보라는 것, 그래서 14대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낳으실 교회인 것이다.(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시다.(요한1,1~14참조)
오늘 복음 본문으로~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 그 모든 일은 성령의 이끄심이 하시는 것이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동정녀, 처녀는 빈 그릇(데무트-여자)을 뜻한다. 그리고 비어 있다는 것은 어둠(쓴물-죄)이다(창세1,2참조)
비어있는 그 없음의 빈 그릇들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담으면 생명의 족보(책)에 올라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성모님처럼 말씀을 예수님으로 낳아야(깨달아야)한다. 그러나 성모님을 섬기며 열심히 빌어 달라는 신앙을 산다면 그는 구원의 족보(생명 책)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가 마리아(어둠. 쓴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말씀)을 낳을(깨달을) 수 있다.
구원은 죄로 받는 것, 신앙은 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 그 예수님 만이 우리의 중개자 이시며(1티모2,5 히브8,6 9,15 12,25참조) 그분의 영, 주님의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신다.(로마8,26)
구름, 비는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인 말씀이며 그 말씀을 완성으로 이끄시는, 움직이는 바람, 성령이시다.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쓴물, 마리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아멘.
대림 제4주일 복음(마태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는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은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의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의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는 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의 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는 '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는 '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는 소원하고 바라는 것, 즉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는 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는 '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대림 제4주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탄이 가까워지는 이 시기의 독서는 하느님께서 구세주의 오심을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고된 구세주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나이가 많은 부부에게서 태어난 세례자 요한과, 고유한 역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직접 준비됩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의 표징을 선포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가난과 겸손과 단순함으로 당신을 믿는 작은 이들에게 주신 표징입니다.
이들은 특정한 민족이나 특권 계층이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모든 민족들”(로마 1,5)을 위한 메시아로 오십니다.
그런데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의 주도권에만 달려 있고 인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는 인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에는 바로 그 구원 계획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요셉 성인이 있습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하느님의 계획을 알립니다.
요셉은 순종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식별을 통하여 하느님 아드님의 지상 아버지로서 자신의 사명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요셉도 마리아처럼 대림의 길을 걸으며 거룩한 자기 아들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요셉을 통하여, 일상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에 협력하는 순종을, 또한 우리와 함께 머무시고자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제1독서(이사7,10-14)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 구원의 표징(標徵)이다. 하늘과 땅, 모두는 하느님의 뜻, 곧 우리 구원(救援)에 대한 사랑, 그 신성(神性)을 말하고 있다.(로마1,20참조)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음이다. 곧 인간의 힘을 의지하려는 속셈이다.(2열왕16,7)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 우리의 의지(意志)와 상관없이 보내주신 구원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복음(마태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구원자)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더 이상 죄에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로마6,6)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제2독서(로마1,2-6)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쉠- 말씀)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멘.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께서 책임져 주시는 사람이다.
(콜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로마8,32-39) 32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속죄 제물로)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 영원한 보호자로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넘어지고 쓰러지려 합니다. 아하즈의 속셈, 교만을 버리고 사도의 마음, 열정, 믿음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①주- 깨어있음. 대림②주- 회개. 대림③주- 인내. 대림④주- 받아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