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너는 오늘 낙원에 ” (루카23,35ㄴ-43)
제1독서<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2사무5,1-3)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화답송>시편122,1-2.4-5(◎1)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제2독서<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콜로1,12-20)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복음<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23,35ㄴ-43)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37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제1독서 (2사무5,1-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3)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 다윗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데 이어서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등장하는 장면이다.
사무엘 하권 5장 1절의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하느님의 군대와 같은 큰 군대' (1역대12,23)로 표현되지만, 군사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군대의 우두머리(장관)들로 여겨지고, 사무엘 하권 5장 3절의 '원로들'은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로 여겨진다.
한편 '헤브론으로 임금을'에 해당하는 '엘 함멜레크 헤브로나'(el hammellek hebronah; to king David to Hebron)를 어순을 고려하여 다시 번역하면 '그 임금에게 헤브론으로'이다.
즉 '헤브론'이라는 장소보다는 '다윗 임금'이라는 인물이 앞에 나와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헤브론으로'라는 표현에서도 '~으로 향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미어 '하'(ha)가 붙어 있어서, '헤브론에 있는 임금에게'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임금에게 헤브론으로 향하여'라는 의미로서, 다윗이 더 이상 헤브론이란 지역 안에 제한되어 통치하는 임금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또한 정관사가 첨부된 '함말레크'(hammallek) 즉 '그 임금'이라는 표현이 사무엘 하권 5장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면서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임금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다음, 공식적인 즉위식에 앞서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여기서 '맺었다'에 해당하는 '이크로트'(ykroth)는 '자르다'는 뜻을 지닌 동사 '카라트'(karath)의 미완료형이다.
'카라트'(karath)는 고대 근동에서 계약의 맹세를 하는 의식에서 동물의 희생을 드렸던 것을 반영하는 단어이다.
계약 체결에 있어서 '자르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계약 체결시 동물을 둘로 쪼개어 놓고 그 사이로 계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가면서, 그 계약의 조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계약을 파기한 자에게 저주가 내리며 그 쪼개어진 동물과 같이 될 것을 맹세하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창세15,10.17; 예레34,18참조).
한편 여기서는 그 계약을 세우는 주체가 다윗으로 나와 있다.
더우기 '다윗 임금'으로 번역된 '함멜레크 따위드'(hammellek David)를 직역하면 '그 임금 다윗'이다.
'따위드 함멜레크'가 자연스러운 어순임에도 불구하고 '함멜레크 따위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임금으로 행동하는 다윗을 부각시키려는 것임과 동시에 다윗의 위치가 유다와 이스라엘을 모두 통치하게 될 유일한 임금인 것을 나타내려 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로 번역된 '라헴'(lahem; with them)을 직역하면 '그들을 위하여'이다.
이것은 다윗과 이스라엘 원로들간의 상호 동등한 계약이 아니라 다윗의 우월성이 전제된 가운데 다윗이 원로들을 위하여 베푸는 계약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위하여' 세운 계약이기 때문에 다윗의 일방적인 전제 정치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맹종을 전제하는 계약으로 볼 수 없다.
즉 이것은 다윗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 계약 이행의 의무를 지움으로써 자신이 충실하게 그들을 인도해 가고, 지키며, 보호할 임금이 될 것을 맹세한 계약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계약은 '주님 앞으로 나아가' 세워졌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리프네 예흐와'(lipne yehwah)에서 '리프네'(lipne)는 '~에'라는 전치사 '레'(le)와 '얼굴'이란 뜻의 '파님'(panim)의 연계형이 결합된 말이므로, 직역하면 '주님의 얼굴에' 이며,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비록 다윗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임금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큰 명제 아래에서 행해진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주님의 임재하심이 없이는 결코 세워질 수 없는 신본주의적인 신정(神政) 왕국이므로, 다윗 역시 하느님 대전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왕권을 행사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 사무엘 하권 5장 3절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면,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때(1사무16,13)와 유다의 임금으로 세워졌을 때(2사무2,4)에 이어 세번째로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이다.
이로써 다윗이 드디어 통일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임금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에 해당하는 '레멜레크 알 이스라엘'(lemellek al Israel)은 사무엘 하권 2장 4절에서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에 해당하는 '레멜레크 알 베트 예후다'(lemellek al beth yehudah)와 정확한 대구를 이루면서 다윗의 통치 범위가 유다에서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되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서와 같이 전치사 '알'(al)이 '임금 노릇하다'라는 뜻의 동사 '말라크'(mallak)와 함께 사용되면, '~에 대하여'(over)라는 통치의 범위를 나타낸다.
또한 '그들은 ~기름을 부어'에 해당하는 '와이므세후'(waimshehu; and they anointed)의 원형 '마샤흐'(mashah)는 '기름을 바르다'는 뜻인데, 여기서 '기름'은 '성령의 임재 내지는 충만'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는 대상은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는 임금, 예언자, 사제로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위해서 성별(聖別)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의 다윗은 하느님을 위하여 임금으로 구별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1역대11,1-3 병행구절참조).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 동안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며, 성찰에 필요한 실마리를 성경 말씀에서 찾습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이제 다윗에게 영원한 왕권을 주시며 그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한편 제2독서의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입니다.
성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기에, 성자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해서 창조되었으며,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예수님을 메시아 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빈정대는 유다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는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며 그분을 모독하지만, 다른 이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 메시아 임금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무력과 권력으로 세상을 통치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만물을 화해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웃과 화해하였습니까?
「삶의 자리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반영억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시길 기원하며 어떤 처지에서도 천상을 차지하는 희망을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삶의 첫 자리에, 참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성 레오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성인이여 기뻐하십시오. 당신께 면류관이 가까이 있습니다.
죄인이여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죄의 용서에로 초대받았습니다.
이방인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생명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며 그리스도의 탄생에 참여하게 된 자들로서 육신의 행위를 끊어 버립시다. 부패한 행실로 말미암아 이전의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었다할지라도 용서와 자비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께서 계시니만큼 실망과 좌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상태에서도 “허물로 누벼놓은 이날 하루를 주님의 자비로 지켜주소서.”하며 자비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빈정거렸습니다. 군사들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하였고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하며 주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한 죄수는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그러고 나서“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의 간절한 바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죄인은 간절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오늘’ 이루어집니다. 분명한 것은 하늘 왕국은, 죄의 용서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천상왕국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독서 콜로새서1장 12절을 보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9-20절에서는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하느님의 왕국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셨다고 했는데 어둠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죄의 상태, 바로 사탄의 세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이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해방과 자유를 회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십자가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통치권을 행하시는 곳은 우선 우리의 내면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인간의 마음을 다스려서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마음을 다스린다면, 내 뜻을 찾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구체적 표현은 용서를 통해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1베드4,8)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고 품어주는 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바로 그 자리가 하늘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용서로 삶의 자리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구치소에 수감 되어있는 분을 몇 차례 면회한 적이 있습니다. 특별면회를 신청하여 세상에서 말하는 죄인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 그분이 그러셨습니다.
“저는 긴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도 열심히 하고, 신심서적,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처지에 있게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미움이 더해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하나 둘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가끔은 불쑥불쑥 인간적인 생각이 들지만,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주님과 함께 이 길을 갑니다. 다 용서합니다. 아프게 만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의 덕입니다.”
그분의 얼굴은 처음에는 불안, 초조, 미움과 증오,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얼굴에 살도 붙고 아주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겉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유를 회복했습니다. 미움은 칼을 갈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면 사랑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에게 외적인 감옥의 굴레가 있지만, 그의 마음은 아무도 옭아맬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높은 담장과 철조망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파아란 하늘과 날아가는 새를 봅니다. 마음의 감옥이 더 무섭습니다. 어떤 처지 환경 안에서도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주님의 왕국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무엇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까? 내 삶의 여정에서 무엇을 기억해 주시길 희망하는가?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은 무엇인가 돌아보고, 자비와 용서를 청한다면 그 자리가 천국입니다.
사실 ‘당당하게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살았다면. 주님,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당신은 다 알고 계십니다. 저의 부족함대로 상벌을 받겠습니다. 자비를 청할 염치도 없습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뜻대로 처분을 내려 주십시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을 통해 약속된 천상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습니다. 천상을 희망하는 만큼 여기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의 문, 하늘의 문은 지금 여기서부터 열리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머무는 자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의 용서와 화해를 통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아드님의 나라에로 한발 다가서는 기쁨을 이미 여기서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사는 은총을 간구하며 모두가 주님의 용서를 통한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리시길 희망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면서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 ‘그리스도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오늘 복음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빈정거리며 한 이 말은 예수님의 삶을 잘 요약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은 살리시면서 정작 당신 자신은 다른 이들을 위한 제물로 내주신 참된 사랑의 임금이십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23,37).
군사들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며 한 말입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23,39).
예수님 곁에 매달린 죄수 하나가 그분을 모독합니다.
빈정거리고 조롱하고 모독하던 자들의 한결같은 주문은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임금이신 하느님 나라는 자기를 먼저 돌보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하나는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23,40-41)라고 하면서 자신이 벌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주는 십자가 위에서조차 저주를 내리시기보다 용서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참으로 선하신 구원자를 발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주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23,42).
그날, 그 시간 그에게 구원이 주어집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11월 23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이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11월 26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고 자주 읽으며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복음(루카23,34-43)
34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 자신들의 죄로, 자신들의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자신들의 메시아,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빈정대는 참으로 어리석은 지도자들이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37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 진통제(鎭痛劑) 역할을 하는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는 드시지 않고(마태27,34)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목마른 당신에게 최악인 신 포도주(식초)는 드셨다.(요한19,28-30) 인간의 죄악(罪惡), 독(毒)은 드신 것이다. 곧 우리의 죄를 먹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한 ‘목숨 바친 사랑’이다.
(시편69,22) 22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毒)을 주고 목말라할 때 초(酢)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 완전한 자기(自己)부인(否認), 버림의 자세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요한19,32)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 자신의 죄(罪)를 인정, 고백(告白)하며 예수님께 구원의 자비(慈悲)를 청(請)한 이에게, 성경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이라한다. 곧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구원받은 첫째 사람이라는 것이다.(루가9,23)
첫째 성도(聖徒), 첫 그리스도인(人)이 된 것이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 새것이 되어 빛의 나라에 들어간 첫째 사람이라는 것이다.(2코린5,17참조)
2독서(콜로1,12-20)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과거(過去) 완료(完了)형이다.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의(義)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구원자)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새 계약)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 그 분,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분의 피는 더러운 나를 목숨 바쳐 사랑하신 증표(證票)다. 곧 사라질 세상이 주는 영광, 평화와 바꿀 수 없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지금은 제사의 피, 곧 포도주를 마시고 만족해 할 때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 찬송할 때라는 것이다. 신앙의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쁜잔치의 때라는 것이다.(이사43,7)
(요한4,24)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마태22,2-3) 2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파견)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해 날마다 열심히 제사 드리느라 오지 못한다. 곧 미사를 내 뜻, 의무(義務)를 위한 제사(祭祀)로 드리지 말자는 것이다.
미사,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분과 한 몸,이 되자는 얘기다. 하느님의 영원하신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진리(眞理)의 신앙(信仰)을 살자는 얘기다.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