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겨자씨 믿음 (루카17,5-10)

2025. 10. 3. 오후 8: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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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일 일요일

[연중 제27주일] 겨자씨 믿음 (루카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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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하바1,2-3; 2,2-4)

2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3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2,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3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4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화답송>시편95,1-2.6-7ㄱㄴㄷ.7-9(7ㄹ과 8)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2독서<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2티모1,6-8.13-14)

6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4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복음<너희가 믿음이 있으면!>(루카17,5-10)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연중 제27주일 제1독서(하바쿡1,2~3; 2,2~4)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3)


앞선 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답변으로 주시는 것을 판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제 본문에서는 판에 기록된 내용 '환시'(hazon)라 표현하며, 이 환시는 당장 이루어질 것이 아닌 정해진 때, 즉 이루어질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음을 밝힌다.


여기서 '정해진 때' 에 해당하는 '모에드'(moed)는 시간과 장소에 모두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본문에서는 시간과 관련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선민 이스라엘이 매년 정기적으로 지키는 '절기'(레위23,2) 내지는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계절'(창세1,14)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환시'가 이루어질 때를 '정해진 때'(모에드)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은, 겨울이 가면 봄이 반드시 돌아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하바쿡 예언자에게 판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종말론적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본문 후반부에서는 이 '정해진 때'를 다시 '끝'(종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케츠'(qets)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사람의 죽음(창세6,13)이나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을 날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에제7,3).


본문은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한 것으로, 심판으로 인한 형벌 자체보다는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심판의 날이 '~을 향해 치닫는' 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해당하는 '웨야페아흐'(weyapeah)의 원형 '푸아흐'(puah)는 기본적으로 '숨을 급하게 내쉬다'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종말의 때가 아직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 때가 임박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즉 종말이 마치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종착지를 향하여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것처럼 긴박하게 닥쳐오고 있음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본문이 말하는 종말의 때가 구체적으로 역사의 어느 시점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 바빌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은 남부 유다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바빌론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선민 뿐만 아니라 바빌론도 선민에 대해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고, 하느님께 대한 교만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했던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으로 인해 모든 나라들이 무너지고, 하느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남부 유다 위정자들의 백성들에 대한, 또는 백성들 상호간에 행해지는 불의와 폭력에 대한 하바쿡 예언자의 고발을 기록하는 1장 2-4절의 내용을 고려하면, 이것은 남부 유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 바빌론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불의와 폭력, 잔인함, 교만을 고발하는 1장 12-17절의 내용을 고려하면 바빌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종말은 남부 유다나 바빌론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종말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때를 다윗왕이 통치할 때의 영광을 재현하는 정치적인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지만,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문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 그리고 그의 재림과 심판을 통해 도래할 세상의 종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본문은 종말이 반드시 올 것이며, 그 때가 더디지만 지체되지는 않을 것임을 내용으로 한다.

여기서 '늦어지는 듯하더라도'(더디다)하는 것은 '어떤 움직임이나 일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다'는 의미이고, '지체하다'라는 단어는 '때를 늦추거나 질질 끈다' 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종말의 때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금방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말의 날 자체가 연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종말의 때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확정하신 것으로 결코 바뀌거나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주어가 새 성경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으로 보면 '늦어지는 듯하더라도'에 해당하는 '이트마하마흐'(ythmahamah)나 '지체하지'에 해당하는 '예아헤르'(yeaher)가 남성 3인칭 단수 주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영역본들은 '그것'(it)이라는 주어를 번역에 포함시킨다.


그런데 본절의 내용을 인용하는 신약 성경에서는 이 주체를 인격으로 보아 본절이 단지 종말이 임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예표하는 내용으로 본다.

먼저 히브리서 10장 37절의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는 내용은 본문을 인용하면서도 종말의 때보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용한다.


이것을 감안하면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범죄한 선민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을 멸하고 압제한 바빌론과 같은 나라를 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장차 메시아 즉 구원자이시요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온전히 구원에 이르고, 하느님을 부인하는 세상의 모든 권세들이 멸망하며,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궁극적인 측면의 종말의 날이 도래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4)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악인은 교만하고 하느님 대전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언급되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의인의 면모를 묘사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이다.


그런데 본문의 '성실함'(믿음)에 해당하는 '에무나'(emunah)는 거짓이 없고, 진실하시고, 불의가 없으시며, 의로우시고 올곧으신(의인들의 참된 의지가 되시는) 하느님의 신실성을 묘사하는 표현이기도 하다(신명32,4).

그리고 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일차적으로 진실하신 하느님을 향한 강한 신뢰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느님을 향한 사람의 태도와 면모를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들에게 신실하며 진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잠언12,22).

사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신실하며 진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성실함'(믿음)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 대한 강한 신뢰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려고 애쓰며, 타인들에게도 결코 속임이나 거짓을 행치 않는 진실한 면모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본문은 의인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신실함과 진실한 태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선언은 당시 신흥 제국인 바빌론이 고대 근동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남부 유다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을 무너뜨리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극한 고통을 겪으며 절망 속에서 살아갈 것이지만, 오직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때를 기다리며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믿음을 근거한 신실한 삶, 진실한 삶을 살 것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이같은 메세지는 당시 남부 유다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면서 동시에 이웃의 것을 약탈하는 이중적 삶을 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변화된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의미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 바빌론의 불의와 폭력, 약탈 속에서도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의롭고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7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종과 주인에 관한 비유를 조금 각색해 보면 이렇습니다.

종은 아침 일찍 부터 주인의 밭으로 나가 일하거나, 들로 가서 주인이 아끼는 양들을 치며 온종일 그의 재산을 돌보고 관리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집에 와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서둘러 음식을 마련하여 주인을 식탁으로 모신 뒤 허리에 띠를 매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 시중을 들고 나서야 하루의 긴 일과가 마무리됩니다.

종은 그제야 비로소 편히 먹고 쉴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품삯으로 계약을 맺은 일꾼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 종으로서 그 일들을 수행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시중드는 일을 한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거나 마치 큰 빚을 진 것처럼 종을 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껏 해 온 일에 대해서 거들먹거리며 그에 걸맞은 대우와 보상을 요구한다면, 이는 우리의 처지를 망각한 것이 되고 맙니다.

임무를 마친 종이 주인에게 할 수 있는 바른 대답은 이러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맞는 말씀이기는 해도, 조금 서운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종을 함부로 부리는 주인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는 종과 주인의 관계를 잊지 말라는 경각심 차원의 말씀일 뿐, 예수님께서는 그 주인이 사실은 매우 관대하게 자기 종들을 대하는 분이심을 함께 가르쳐 주십니다.

혼인 잔치에 간 주인이, 자신을 기다리던 종들을 보고서 어떻게 그들을 대하는지를 전하는 루카 복음의 또 다른 비유도 함께 기억합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12,37).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7주일 복음 (루카17,5-10)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종의 위치에 두시면서 당신이 교훈하시고자 하는 핵심을 말씀하신다.


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한 후에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다.


여기서 종은 루카 복음 17장 8절에 나오는 데로, 자신에게 맡겨진 바깥 일만을 끝마쳤다고 해서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일은 바깥 일일 뿐이며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는 집안일을 해야만 했던 노예였다.


특히 '허리에 띠를 매고'는 띠를 풀고 쉬는 상태와 반대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철저하고 겸손한 봉사와 전적인 헌신만이 제자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 제도에서 가장 하부 구조를 차지했던 종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신 것이다.


본절인 루카 복음 17장 10절에서 종을 수식하는 '쓸모없는'에 해당하는 '아크레이오이'(achreioi; unworthy; unprofitable)는 '무익하고 가치없음'을 의미한다.


왜 이 종은 자신에 대해 '쓸모없는 종'이라고 일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들에게 겸손하고 당연한 자세로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을 교훈하고, 또한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무조건적 순종이 따라야 함을 명확히 해 주시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봉사와 헌신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20251005일 일요일

[연중 제27주일] (이찬우 다두 신부)

 

백화점에 가면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비싼 물건이 많습니다.

어떤 것은 웬만한 월급쟁이의 일 년치 연봉과 맞먹는 가격입니다.

그래서인지 촌놈인 저는 백화점에 가면 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십여 년 전, 새로 생긴 백화점으로 구경을 나섰습니다.

돌아다니다 한 명품 매장 옆을 지나갔는데 가격표를 보고 , 이 정도구나.’ 생각하다가 다시 눈이 커졌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숫자 끝에 ‘0’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화점의 명품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엇갈렸습니다.

그러면서 비싼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논쟁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여기서 가지고 싶은 것을 공짜로 줄 테니 하나만 골라 보라고 하면 무엇을 고를까?’

다른 중요한 것도 많겠지만, 이왕이면 값비싼 명품을 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상품으로 가득 차 휘황찬란한 백화점은 도심 한복판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도 백화점입니다.

거기에는 슬픈 마음, 우울한 마음, 괴로운 마음도 있고, 욕심, , 어리석음도 있고, 행복한 마음,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요?

백화점에서 명품을 고르듯이 우리 마음속에서도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의 백화점에서 돈은 내지 않아도 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온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아주 크지 않아도,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디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여러분의 마음에서 가장 귀한 것을 고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2025년 10월 05일 [연중 제27주일]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복음(루카17,5-10)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 겨자씨 한 알의 믿음? 땅을 위해 씨가 땅속으로 들어와 썩어져 열매를 맺고는 “땅이 맺었다”해 주시는 하느님(창세1,11), 그리고 그 씨(후손-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믿음으로 용서받아 땅이 존재가 되는 구원의 믿음이다.

그 씨 한 알의 대속, 그 죽음을 진리로 깨달아 믿음으로 간직했다면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돌 무화과나무’, 그 옛 계약의 신앙, 곧 세상의 재물, 의로움, 명예, 영광을 위한 인간의 무성한 행위가 허무요 헛된 것임이 깨달아져 생명, 부활로 이끌지 못하는 그 인간의 행위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자기 버림, 부인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로 영광드리는 것이 신앙의 목적지다. 하느님께 영광이 먼저고 땅에 평화다.(루가2,14)

 

(시편78,47) 47 우박으로 저들(세상)의 포도나무를서리로 저들의 돌 무화과나무를 죽이셨다.

= 먼저 성경 말씀 안에 머물러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이 무엇인지, 곧 창조주 하느님께만 의로움, 생명이 있음을, 그래서 그분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의 의(義), 생명으로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알아, 믿어야 올바른 신앙을 살 수 있다.

 

(2마카9,12) 12 자기도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자기를 하느님과 동격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 인간의 의(義)와 하느님의 의(義)가 동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인간의 사랑을 나눈 그 인간의 의를 위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당연하다. 창조 주 앞에 흙인 피조물은 사실 쓸모없는 종(奴)일 뿐이다.

생각해보자,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적대하는 나를 구하셔야 하나?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죽이면서 까지 왜? 사실 그럴 필요가 없으신 것 아닌가? -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 자비로는 깨달을 수 없는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이타의 사랑’ 자비, 그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전지전능의 사랑, 자비를, 인간들의 변질되는 사랑, 자비와 동격하여 인간의 의가 진리인냥 신앙으로 살았던 그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자기 부인, 버림, 곧 작 의의 죽음, 육의 죽음이다. 그 육의 죽음으로 영원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쓸모없는 종임을 인정했을 때 할 수 있다.

 

⁜사제께서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회적인 이해집단 간의 이해나 정치집단 간의 갈등, 특히 노사간의 갈등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와 원인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답과 이를 해결하는 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사제께서는 여러 차례 복음 말씀을 교회 밖, 사회, 정치문제로 끌고 가 사회, 정치 지도자들을 질타하시는데, 평신도인 나는 먼저 세상화가 된 교회문제를 걱정하셨으면 한다.

곧 세상의 것을 위한 세상의 말, 지혜에 의한 종교 행위로, 교회 안에서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믿음의 갈등과 이해를 해결할 수 있는 길, 방법을 먼저 찾으셨으면, 그리고 복음 안에서 찾고자 하셨으면 좋겠다.

 

(시편78,47) 47 우박으로 저들(세상)의 포도나무를서리로 저들의 돌무화과나무를 죽이셨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티모1,9-10)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 거룩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다.(히브10,10)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

 

(1티모1,14)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 흘러넘치는 믿음, 사랑, 은총,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자유생명을 살 수 있도록하느님처럼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자기 버림부인(否認)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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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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