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

2025. 8. 9. 오전 8: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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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일 일요일

[연중 제19주일]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32-48)

 


1독서

<주님께서는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지혜18,6-9)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화답송>시편33,112.18-19.2022(12)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2독서<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히브11,1-2.8-19)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복음<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32-4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1독서 (지혜서 18, 6-9)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해설) 

출애굽 사건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 밤에 일어난 일입니다. 구원의 주님께서 종살이 노예살이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신 사건입니다. 

출애굽 기적은 단순한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시간에 재현될 희망입니다. 출애굽의 꿈과 희망은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묵상

ㅡ출애굽 사건은 하느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던 날 밤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구원의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에서 자유와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출애굽의 희망은 모든 인간의 희망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들로 부터 해방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출애굽은 단순한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 다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인간의 희망입니다. 출애굽의 꿈과 희망은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간은 종살이 노예살이에서 풀려나기를 원하며 진정으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히브11,1-2.8-19)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2)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이란 무엇인가?'인지 믿음의 정의에 대한 서론적 설명이다.

'믿음은 ~이다'라는 표현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동사 '에스틴'(estin; is)은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시제는 항구적으로 항상 그러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라는 사실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11장에서 핵심어인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 faith)는 고전 희랍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혹은 신에 대하여 갖는 '신뢰' 또는 '진실성'이나  사업상의 '신용', '보증', '증명'등을 의미하여 다양하게 쓰였다.

 

원래 이 어군의 단어들은 '계약이나 약정을 존중하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헬레니즘 시대 회의론과 무신론이 난무하는 시기에는 '피스티스'가 신들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신념'(conviction)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고 번역된 '엘피조메논 휘포스타시스'(elpizomenon hypostasis) 에서 우리는 '보증'으로 번역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substance; realization; assurance; guarantee)에 주목해야 한다.

 

이 단어는 '밑에 놓다', '기초를 두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휘피스테미'(hyphistem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아래에(hypo; 휘포) 서 있는 것(stasis; 스타시스)',  '토대','기초'라는 의미이다.

이런 뜻 외에도 '본질', '실체', '확신', '확고성', '보증'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파피루스에서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는 '보증'이라는 의미에서    소유권을 입증하는 문맥에 쓰였다.

이런 차원에서 본문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권리 증서이다', 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천상의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즉 믿음이라는 보증물을 내보일 때 천상의 것들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초대 교회 몇몇 교부들은 이 단어를 '현실화'(realization)의 개념으로 보았다.  믿음이 장래의 바라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해준다고 본 것이다.

 

③ '실체', '실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믿음이란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바라는 것들을 실질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붙잡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초대 교회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부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하는 견해로서 '토대', '기초'(foundation)라고 보는 견해이다. 말하자면, 믿음이 없으면 희망('바라는 것들')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면, '믿음이란 희망을 지탱해 주는 토대로서 희망하는 것이 허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 주는 실체'라는 의미가 된다.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번역된 '프라그마톤 엘렝코스 우 블레포메논(pragmaton ellengchos u bllepomenon)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의 증거' 라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에 해당하는 '우 블레포메논'에서 '블레포메논'(bllepomenon)은 '보다'(see)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블레포'(bllepo)의 수동태 분사이다.

따라서 '우 블레포메논'은 인간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실체들의'로 번역된 '프라그마톤'(pragmaton)의 원형 '프라그마' (pragma)는 고전 희랍어에서는 '행위', '사물', '사업', '논쟁'등의 의미로 쓰였으며,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일'(사도5,4), '사실', '일'(루카1,1) 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란 '보이지 않는 사실들'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일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등은 믿음이라는 장치를 가져야만 신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확증'에 해당하는 '엘렝코스'(ellengchos)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납득시키다' 등을 뜻하는 동사 '엘렝코'(ellengch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고전 희랍어에서는 '증거', '확인'등의 의미를 지닌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겉으로 밝히 드러내주는 것, 확실하게 하는 것 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누가 못 믿는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을 누가 못 믿는가? 그리고 관찰, 실험, 검증에 의해 과학적으로 이미 사실(fact)로 밝혀진 것들을 누가 못 믿는가?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음의 어두운 차원을 뛰어넘어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태양이 어두운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두운 먹구름 넘어 태양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차원인 것이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

 

여기서 '옛 사람들'로 번역된 '호이 프레스뷔테로이'(hoi presbyteroi)에서 '프레스뷔테로이'의 원형 '프레스뷔테로스'(presbyteros)는 '늙은', '나이 많은'을 의미하는 '프레스뷔스'(presbys) 비교급으로서 '나이가 더 많은', '노인' 또는 '장로', '원로' 라는 의미이다(마태26,3; 사도2,19).

고전 희랍어에서는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더 늙은'(older) 이라는 뜻을 나타냈지만, 후에는 '더 존경받는'이라는 의미가 첨가되었다.

 

본절에서는 신약에서 흔히 쓰이는 '원로'의 의미가 아니라(1베드5,1), 히브리서 저자와 독자들의 공통된 조상, 즉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구약 시대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살았던 모든 조상들'을 말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11장 4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대별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며, 동시에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증거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인정을 받았습니다'로 번역된 '예마르튀레테산'(emartyrethesan; were well attested; were commended)은 '마르튀레오'(martyreo)의 과거 수동태이다.

 

이 '마르튀레오'동사의 뜻은 '증언하다', '어떤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다',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사실을 확증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동태로 쓰인 것은 거명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증인이 바로 하느님 자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하셔야만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속임을 당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는 진리의 근원이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직접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셔야만 진정한 신앙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연중 제19주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로마 제국에서 부유한 도시였던 폼페이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주인과 세 명의 종이 나옵니다.

종들은 서서 허리를 숙이고 주인의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한편 동방 교회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맨발의 예수님께서 식탁의 맨 끝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맨발은 종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오히려 맨 끝자리에서 그들을 섬기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구도의 그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현세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고 자기 집을 종들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몰랐습니다.

주인이 한밤중에 올지 새벽녘에 올지 몰랐기에 종들은 언제든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있어야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아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님을 만날 때를 준비하며 사는 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종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信者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깨어 있을 수가 없고,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깨어 있는 삶을 위하여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한 삶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고해성사는 신자도 사제도 깨어 있게 하는 삶의 좋은 방식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말씀은 그분의 제자인 우리가 언제나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수없이 오셨지만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깨어 삽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생명의 말씀(연중 제19주일)

 

깨어 준비하고 있는 신앙인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영원하신 하느님께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한한 세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로 시작된 이 세상은 언젠가는 끝납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 종말이 언제 올지 궁금히 여기고 나름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유다인들은 세상이 곧 끝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죄에 물들고 타락한 이 세상은 머지않아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새 세상이 오는데, 그때에 하느님의 심판도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죽은 이들 모두를 부활시켜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 심판하시면, 의인들은 구원받고 악인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죽은 모든 이가 부활하게 되는 세상의 종말이 한 사람의 부활, 곧 예수님의 부활로써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종말이 당대에 완결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종말의 완결이 예상과는 달리 계속 늦어지면서 신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혼란을 예상하신 듯 가르침을 주십니다.

밖에 나갔던 주인이 언제 돌아오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도둑이 예상치 않은 때에 오듯이 사람의 아들도 그렇게 올 것이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종말의 때에 연연하지 말고 착실히 준비하는 것, 매일 충실하게 하느님의뜻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다릅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분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한 하느님 약속의 실현이 아득히 멀게 보여도 굳게 믿고 기다렸습니다.(제2독서)

또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해방의날 밤”을 굳게 믿고 기다렸습니다.(제1독서)

예수님은 마지막 날과 시간은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마르13,33) 하고 당부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만 아시는 종말의 때가 언제 오든 상관하지 말고 지금 깨어 매 순간 충실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종말을 체험할 수 없더라도 우리 각자의 마지막 시간에 종말에 오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이 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이 오시는 때를 구원의 날로 고대하면서 “주님 오소서.”라는 뜻의 “마라나 타!”(1코린 16,22)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사랑 실천이란 띠를 허리에 매고, 믿음과 희망의 등불을 켜놓고 있는 신앙인, ‘깨어 준비하고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

 

 

 

 

 연중 제19주일 복음 (루카12,32-4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루카 복음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는 '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의 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여기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은 '에이미'(eimi; be) 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는 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는 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혼인 잔치의 집'은 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는 '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20250810일 일요일

[연중 제19주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믿음의 여정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극적인 결과를 보여 주지도 않지요. 그렇기에 믿음의 여정은 희망과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지혜서입니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인들의 여정, 다시 말하여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믿음으로 걸어온 해방과 구원의 여정을 간략히 그립니다.

2독서는 히브리서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라는 명제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야곱이 걸어온 길을 재조명합니다.

이를 통하여 구약의 성조들에게 믿음의 여정은 희망과 인내와 기다림의 여정이었음을 확인합니다.

복음은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는 결론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믿음의 여정을 희망과 인내와 기다림의 여정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러내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희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무엇으로 채워 가고 있나요?

희년의 여정이 다만 전대사와 은총을 받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희망하고 하느님 아드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세상을 하느님 뜻에 맞갖도록 채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이 겪고 있는 고통에 침묵하고 무관심하거나,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려 무미건조하게 되어 세상 속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면 믿음의 여정에 걸맞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쯤 계시나요, 여러분은?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19주일]

 

성령을 입지 않는 구원이 없다.

 

복음(루카12,32-4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두려워하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 그 나라, 앞 절에서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나라’다.

 

(루가12,28)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현세에 그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옷, 양식으로 정해져 오신분이 예수님이시다. (루가2,12)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본문 12장 시작인 바리사이들의 누룩이다. 곧 앞 10장41절 마르타가 곧 사라질 율법, 그 옛 계약으로 자기의 뜻, 의(義)를 위해 열심을 부리며 가졌던 ‘염려와 걱정’ 그 모두다. 그것을 탐욕이라 한다.

 

(루가12,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그런데 그것들을 어떻게 파나?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필요한 것 한 가지(10,42), 곧 ‘영원한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새로운 길인 새 계약의 그리스도께 선악의 ‘죄(罪)와 의(義)’ “염려(念慮)와 걱정” 그 옛 계약의 나를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종으로 구원자와 하나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자선(구원)을 베푸는 것이다. 땅의 죽을 것을 하늘의 생명이 삼키도록 말이다.

 

(골로3,2-3)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의’가 죽었음이다.

 

(요한3,3) 3 예수님께서 그(니코데모)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 성경을 공부(연구)하며 제사와 윤리로 철저하게 자기 의(義)를 위해 살아온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한3,5) 5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죄인이든, 의인이든 그 누구도 성령을 입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다.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믿게 해 주실,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 허리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띠는 진리(에페6,14), 등불, 등은 교회, 불은 성령, 빛이다. 곧 교회 안에 정해진 구원의 양식,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성령께 의탁하여 참 진리, 지혜로 거짓, 도둑, 그 어둠을 물리쳐 줄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시편18,29 119,105참조)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준비이며 깨어있음이다.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 주인, 주님의 재림이다.

 

37 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 시중을 들어 주시는 모습,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미리 보여 주셨다.

 

(요한13,4-5)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 제자들의 발, 곧 그들이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 갈, 발길의 모든 죄를 띠와 물, 곧 ‘진리의 영, 말씀으로 씻기심’ 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 생각 하지도 않은 때에 오시는 분을, 자주 졸고 잠드는 우리가 어떻게, 무슨 수로 기다리나? 깨닫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당신의 지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셨음을, 그래서 나의 집, 주인이심을 믿는 것이다. 곧 나를 내어 맡겨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졸지도 않고, 깨어 지켜주신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깨어있음이다.

 

(요한14,16-18) 16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시편121,1-3) 1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2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3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은총이신 보호자 진리의 성령님!

성령님으로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게 하소서하늘의 보물생명을 지키도록 늘 함께 하시며 깨어 있도록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루카 17,1-6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말씀묵상]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지혜 18,6-9 / 제2독서 히브리 11,1-2.8-19 / 루카 1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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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나는 나의 주님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이 질문은 활동 수도회인 예수회 회원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성찰해야 할 주제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느라,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길. 사람을 보느라, 하늘을 놓치는 일이 없길.” 우리는 하늘과 사람 안에서 하늘의 보물을 발견해야 하는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인스타그램 @baeyounggil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말씀의 첫 문장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인지 궁금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에 나오듯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일까요? 사실 성경을 보면 이 구절은 앞에 나오는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말씀은 세상 걱정을 그만두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루카 12,22)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31)

우리는 사실 일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걱정하기보다는 세상의 일들을 훨씬 더 많이 걱정합니다. 무엇을 먹고 입을까를 넘어서 어떤 가방을, 어떤 시계를, 어떤 차를 가지고 나갈지, 또 어떤 집에 살지를 걱정합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보물이 되면 그것이 우리 마음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실 것임을 믿게 되면 그보다 못한 것에 매여있던 마음이 해방됩니다. 가진 것을 팔아서 자선을 베풀고, 하늘에 우리의 보물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해방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는 잡념이 없어집니다. 세상 걱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 나라의 것을 희망하고 또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고 그분께 봉사하려는 일념으로 깨어 있습니다.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립니다. 띠를 매는 것은 일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것을 본 주인은 오히려 자신이 띠를 매고 시중을 듭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흡족하게 채워줍니다. 그는 그가 믿는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이미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독서들은 이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제1독서는 첫 번째 파스카를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용기를 내어 주님의 구원을 믿고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린 양을 잡고 피를 발랐습니다. 띠를 매고 지팡이를 들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떠나기 위해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예수님의 파스카에 미리 동참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구원의 부르심에 미리 응답하였습니다.

제2독서는 그보다도 앞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일흔다섯의 나이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땅으로 가족을 데리고 떠납니다. 주님께서는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였으므로,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형편이 되는대로 그 땅을 사서 알박기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그런 식으로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라가 죽고 나서야 그 무덤을 마련하기 위한 동굴과 밭을 샀을 뿐입니다. 그 자신도 그곳에 묻혔습니다.(창세 23; 25,7-10 참조)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그는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히브 11,9)

그는 땅에 대한 약속에 대해서도, 후손에 대한 약속에 대해서도 묻거나 보채지 않고 그저 주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심지어 늘그막에 얻은 외동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성조들의 믿음과 희망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로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으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세상 것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우리에게 아버지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그분을 믿음으로써, 우리도 두려움과 욕망을 넘어 주님의 나라로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보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깨어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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